[거리의 시/ 서해성] 마지막 해병

채수근 상병과 박정훈 대령

채수근 해병은 홍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다가 물에 떠내려가서 돌아오지 못했다. 귀신 잡는 해병들은 자기 부하를 물귀신으로 떠나보내고도 정작 귀신처럼 숨어서 말이 없다. 이것으로 미국 종군기자가 한국전쟁 때 붙여준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은 허언이 되었다. 자신들 스스로가 귀신이 되었으므로.

귀신 잡는 해병 중 살아있는 이는 겨우 한 사람이 보인다. 채수근 해병 사망사건 수사단장에서 해임된 박정훈 대령이다. 이 해병을 지키지 못하면 이 땅에 더 이상 귀신 잡을 진짜 해병은 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가 마지막 해병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뜨거운 전우애를 자랑하던 해병들이여, 더는 숨지만 말고 떳떳하게 나서서 말을 하라. 해병 전우의 죽음과 이를 둘러싼 수사단장 해임 등 일련의 사태는 결코 위장과 은닉 활동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대들이 즐겨 부르는 ‘라이 라이 라이 라이 차차차’가 ‘Lie Lie Lie Lie 차차차’가 될 수도 있는 위기가 눈 앞에 닥쳐오고 있다. 이는 해병 역사 자체를 더럽히는 일이다.

귀신 잡는 해병을 이렇게 귀신으로 전락시키는 일을 권력이 요구한다고 해서 고스란히 굴종한다면 해병과 해병전우회가 그 동안 보여준 용기란 골목을 얼쩡거리는 한낱 동네 협객들과 다르지 않게 된다. 진짜 용기란 불의 앞에 말하고 행동하는 일이다. 늘 외쳐왔던 ‘악으로!’ ‘깡으로!’를 보여줄 차례다. 불명예스런 해병대와 고난에 처한 해병 전우 박정훈을 위하여.

▲ 서해성 작가
▲ 서해성 작가

해병 채수근의 넋이라도 지켜내고자 하는 해병 박정훈을 ‘돌아오지 않는 해병’으로 만든다면 싱그러웠던 청년의 죽음도, 국민 해병대도, 정의도 깃들 곳이 없으리라. 대신 그 자리에는 불의, 억압, 은폐, 왜곡, 또 반인륜이라는 귀신만이 창궐할 터이다. 귀신을 잡을 것인가. 귀신이 될 것인가. 한 번 더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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