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정보공개 청구로 회의록 입수.. 10년 논란 50분 만에 ‘종지부’
‘재벌총수 특혜’ 논란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이건희 삼성 회장의 특별사면이 5년 만에 사면심사위원회의 회의록이 공개되면서 다시 입길에 오르고 있다.
지난 2009년 8월 이건희 회장은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4개월 만인 같은 해 12월 24일 이례적으로 이 회장만을 위한 ‘원 포인트’ 사면심사위가 열렸고, ‘국익’과 ‘경제살리기’라는 명분으로 사면이 결정됐다.
사면법에는 사면위원회 회의록의 공개 시한을 회의 후 ‘5년’으로 하고 있다. 이 회장에 대한 사면은 지난달 말을 기점으로 5년이 지나 당시 회의록이 공개로 전환됐다.
<한겨레>는 법무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당시 회의록을 입수했고, 6일 전문을 공개했다.
당시 회의에는 이귀남 법무부 장관, 황희철 법무부 차관,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 주철현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국민수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등 법무부 위원들과 유창종 변호사,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권영건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오영근 한양대 교수 등 민간위원이 참여했다.
당시 회의는 ‘감형 및 복권 상신의 적정성을 심사’하는, 이 회장에 대한 사면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였지만 회의록을 통해 본 실상은 이 회장의 사면을 결정해놓고 이를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를 고민하는 자리나 다름없었다.
회의는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2018년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라는 국가적 중대사를 앞두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이건희 IOC 위원에 대한 특별사면 상신의 적정성 여부를 심사해 달라”고 운을 띄우며 시작됐다. 이 장관은 2007년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 및 검사 로비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떡값 검사’로 지목한 3인 중 한 명이다.
이후 회의는 이 회장의 사면이 얼마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강조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법무부 내부위원들 뿐만 아니라 외부위원들까지 이 회장의 사면을 적극 찬성하고 나섰다.
최교일 검찰국장은 “이 회장에 대해서 안건으로 올려 심사하는 것은 결국 국익 차원에서 명목과 실리를, 실용을 중시하는 (측면)”이라며 “현재 여러 가지 사정상 이건희 회장이 자격을 잃으면 우리나라는 IOC 위원이 없게 된다. 그러면 세계 외교관계라든지 스포츠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국력이 급격히 약해질 수 있다는 그런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유창종 변호사는 “내년 2월 (IOC) 제명이 임박해 있으면 우리가 빨리 포기하던지 아니면 구제해 주게 되면 보다 신속히 해주어야 되는데 그러면 대외적으로 설명할 때 빨리 사면 해 주는 이유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 2년 정도 파견 나간 경험이 있는데, IOC 위원이 하나하나씩 사라지는 것이 얼마나 국익에 손실인가를 잘 알고 있다”고 강조한 뒤 “IOC가 아니더라도 삼성이라는 기업이 세계무대에서 상처를 덜 받고 빨리 주전선수로 뛸 수 있도록 적절히 풀어주는 것이 옳다”며 사면을 적극 찬성했다.
황희철 법무부차관은 “지금 우리가 경제적으로 전쟁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전쟁을 하는데 우리가 장수의 발목을 묶는 게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다”며 “경제인이 국익을 위해서 열심히 하다가 문제가 되면 처벌을 하고, 전쟁을 하는데 아예 전쟁을 못하도록 해 가지고 국익에 위배가 되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이 “(이 회장의 사면이) 전례에 비해 조금 빠르다는 느낌을 국민들이 받을 수도 있겠다”고 하자 권익한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은 “판결 확정 직후에 사면했던 사례들도 몇 번 있고, 작년 8.15 사면 같은 경우도 판결이 확정되고 6개월 이내였던 분들이 열 분 가까이 된다”고 설명했다.
곽 소장은 이후 “이건희라는 개인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닌 적법한 특별사면 절차에 의해 사면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게 국민들이 납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언했고, 유 변호사는 “일반 국민에게는 (IOC가) 마음이 확 닿지 않을 수 있으니, 일단 용서해주는 기본적은 명분은 경제적인 면에 두고, ‘왜 이렇게 빨리 해주느냐’하면 ‘이왕 해 줄 거면 당장 IOC 위원 자격을 유지하느냐 않느냐는 것이 내년 초에 결정된다는데 빨리 해주는 것이 낫지 않느냐’ 이렇게 정리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황 차관은 “많은 토론과 신중 검토 의견도 있었으나 대부분 좋은 쪽으로 의견을 내셨다고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는 이 회장의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에 대해 적정 의견으로 의결된 것으로 정리됐고, 5일 후인 29일 이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을 발표했다.
이날 오전 10시 20분에 시작한 회의는 50분 만인 11시 10분에 종료됐다. <한겨레>는 “10년 가까운 검찰의 봐주기 수사와 형식적인 논리로 죗값을 덜어준 법원을 상대로 시민단체와 국민들이 힘겹게 얻어낸 결과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데 고작 50분 걸렸다”고 탄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