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의성, 쌍용차 철탑위 30번째 ‘소리편지’

[인터뷰]“더많은 알림, 모두 내부자되면 폭넓음 깨져”

“고립 돼 있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건 내가 여기 있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모든 대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죽하면’이라는 생각 때문에 공감하는 거다.”

“더 많이 알게 되는 일이 굉장히 위험한 것 같다. 더 알게 돼 연대감이 생기고 내부자처럼 되는 순간, 폭넓음이 깨지게 된다.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
ⓒ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

설 연휴를 앞둔 8일 오전. 서울 이태원동의 한 조용한 카페에서 ‘go발뉴스’가 배우 김의성씨를 만났다. 약속 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그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오늘 엄청 춥네요”라며 첫 인사를 건넸다. 이날은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등 매서운 한파가 절정을 이뤘다.

최근에 그는 ‘철탑 위의 친구들’에게 소리편지를 띄우고 있다. 소리편지의 수신인은 ‘국정조사 실시’ ‘해고자 전원복직’을 외치며 80일이 넘도록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씨다.

그는 얼마 전 ‘남영동 1985’에서 고문 전문가 ‘이두한’(이경영)을 돕는 강 과장을, ‘26년’에서는 전 대통령 ‘그 사람’(장광)을 응징하려는 ‘곽진배’(진구) 등의 계획에 맞서는 최 계장을 연기했다.

그는 ‘남영동 1985’, ‘26년’을 찍으면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많은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장 기본적인 인권문제와 표현의 자유만큼은 내 문제라 생각해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소리 내서 책 읽는 걸 좋아한다. 동네 술집에서도 가끔 사람들 앞에서 책을 읽곤 한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했더니 변영주 감독이 김선우 시인을 소개해 줬다. 김선우 시인이 먼저 철탑에 소리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로 철탑 밑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줄 알았다. 진짜 옛날사람인거다.(웃음) 소리편지는 사운드 클라우드로 해서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 현재 30번째 소리편지가 올라가 있다.

- 30번째라니 그동안 어떤 책들을 읽었나.

처음에는 일본 작가 메도루마 슌의 소설집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이란 책을 읽었다. 단편 하나씩을 끊어서 읽었는데 하나를 읽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 이것저것 시도를 해봤다.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등을 읽었다. 그러다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겠다싶어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남쪽으로 튀어’를 읽게 됐다. 남쪽으로 튀어는 7~8번째 책인가 그렇다. 1권은 다 읽었다.

- 피드백은 있었나.

한 번도 못 받았다. 안 들으실 수도 있다. 하고 있는걸 아는지도 모르겠다.

- 소리편지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혹시 그분들이 듣지 않더라도 트위터에 올라오는 것만 봐도 바깥 세상과 연결 돼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느낌이 어쩌면 그 분들에게 가장 절실할 수도 있다. 고립 돼 있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건 내가 여기 있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생각하고 있다. 잘 되길 바라고 있다. 이런 마음을 전달해 주고 싶었다.

배우 김의성씨가 철탑위에 띄우는 ‘소리편지’ 사운드클라우드 화면캡처
배우 김의성씨가 철탑위에 띄우는 ‘소리편지’ 사운드클라우드 화면캡처

- 해고 노동자들이 한파에 철탑, 종탑, 콘크리트 바닥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자기를 괴롭게 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게 싫다. 내가 모든 대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죽하면’이라는 생각 때문에 공감하는 거다. 다 이해하고 똑같이 느낄 수는 없다. 그런데, ‘내가 저 사람이라면…’이라는 입장 한 번 바꿔보는 것을 우리가 다 하면 사회가 많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소리편지 보내는 일이)내가 입장 바꿔서 하는 일 인 것 같다.

- 평소에 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있었나.

노동 문제에 대해 잘 모른다. 전에는 모르는데 안다고 했었고, 지금은 모르니까 모른다고 할 수 있게 됐다. 나이를 먹어서 인 것 같다. (노동 문제)잘은 모르지만 사람들이 힘들고 아픈 것은 공감이 간다. 공감을 보이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노동문제를 대함에 있어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더 많이 알게 되는 일이 굉장히 위험한 것 같다. 더 알게 돼 연대감이 생기고 내부자처럼 되는 순간, 폭넓음이 깨지게 된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처음 쌍용자동차 문제를 접했을 때 ‘쌍차’라고 말하는 그 단어에 굉장히 거부감이 있었다. 쌍용차에서 한글자만 줄여도 자기들만의 언어가 돼 버린다. ‘쌍차’라는 말을 운동권의 말처럼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 안에서 힘이 날수록 한 편으로는 고립되는 경향이 있다. 철탑에 올라가 있는 분들 이름을 부르면서 (책을)읽지만 그 분들하고 친해지는 것에 경계심이 든다.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될까봐서다. 그러면 밖에 힘이 돼 주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밖의 힘이 중요하다.

- 소리편지 보내는 일은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

그 분들이 빨리 내려오셔서 가능하면 이렇게 읽는 거는 빨리 그만두고 싶다. 이 일이 다 해결이 되면 다 같이 카페에 앉아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책의 마지막 대목을 읽는 그 날을 생각하고 있다.

-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쌍용차 문제에)참여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멀리서 손을 잡는 사람이다. 그리고 배우라는 이름으로 이 일을 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읽는 걸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람들과 읽는 것으로 소통하면서 서로 연결되고 싶어 하는 한 개인일 뿐이다.

ⓒ 영화 '남영동 1985'
ⓒ 영화 '남영동 1985'

- 마지막으로 최근 영화 ‘관상’ 촬영을 하고 있다던데, 어떤 영화인가.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를 만든 한재림 감독 작품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기 전 최고의 정치세력인 김종서와 수양대군간의 정쟁 시기를 다룬 이야기로, 정치적 격변에 휘말린 한 관상쟁이 이야기다. 송강호, 이정재, 김혜수, 조정석, 백윤식 선배가 함께 출연한다.

- ‘관상’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았나.

비밀이다.(웃음) 비밀역할이다. 불행히도 거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역할이다. 유일하게 주인공이 관상을 보지 못하는 인물이다. 얼굴을 가려 주인공을 좌절시키는 역할이다. 이번 역할은 캐릭터가 굉장히 재미있다. 지금까지 맡은 배역 중 어쩌면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다 싶을 정도로 애착이 간다. 개봉은 올 추석쯤이 될 것 같다. 감독님이 워낙 심혈을 기울여 촬영하고 있어서...(웃음)

배우 김의성씨의 철탑위에 띄우는 ‘소리편지’ 들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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