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디자이너․김미연씨 “항상 보살펴, 외롭지않길”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는 단발머리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맨발의 소녀가 앉아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 1000회(2011년 12월 14일) 기념으로 세워진 ‘평화비 소녀상’이다. 소녀상은 웃지도, 울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없이 일본대사관을 응시한다.
아픔의 상징이 된 소녀상에 시민들은 한 해가 넘도록 꽃다발과 인형 등 평화비 주변을 채우며 뜨거운 애정을 보내왔다. 특히 이번 설날을 맞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소녀상은 6일 있었던 1060회 수요집회에서 단연 돋보였다.
소녀상에 한복을 입힌 사람은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다. 그는 소녀상 앞을 지나다닐 때 마다 언젠가는 꼭 예쁜 한복 한 벌을 직접 입히고 싶었다고 한다.
이영희 디자이너 “무작정 끌려갔던 분들… 같은 여자로써 가슴 아파”
이영희 디자이너는 ‘go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늘 생각하고 있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만큼 어릴 때 무작정 끌려간 분들이 많았다”며 “일제시대에 그렇게 끌려가 고통을 당했다는 생각을 하면 같은 여자로써 가슴이 굉장히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소녀상을 만든 조각가는 (할머니들의) 혼을 담아 조각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소녀상을 볼 때마다 애처롭고 가슴 아프다”고 덧붙였다.
한복이 참 곱다는 말에 “비바람이 많아 일부러 실크를 하지 않았다. 화학섬유 재질로 만들었다”며 “겨울이라 두툼하게 저고리에 솜도 넣었다”고 말했다.
그는 모자가 마치 군고구마 장사 같다는 기자의 소감에 “(모자의)의미가 많다. 예전 B-29 폭격기가 하늘을 날면 위에서 볼 때 (모자) 색깔이 드러나면 안됐었다”며 “방한용이라고 하지만 까만 모자에 무명과 솜을 넣고 두툼하게 쓰고 다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만들어 주셔서 쓰고 다녔다”며 “현대 모자보다 훨씬 옛스러울 것 같아 이 모자를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디자이너는 “복이 많이 들어오라고 복주머니도 만들었다”며 “소녀상에 기부한 한복이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면 다시 기증하려 한다”고 밝혔다.
김미연씨 “할머니에겐 본인과 다름없는 소녀상…외롭지 않게 할 것”
소녀상에게 평상복을 챙겨주는 또 다른 ‘소녀상 지킴이’도 있다. 소녀상 근처가 직장이라는 김미연씨는 지난 해 9월께부터 소녀상의 평상복을 책임지고 있다.
김 씨는 ‘go발뉴스’에 “원래 주변 여고생이 옷 입히는 걸을 도와준 걸로 아는데 그 학생이 일본으로 유학가게 되면서 마땅히 할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며 “소녀상이 회사 근처라 일찍 출근해서 트위터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그 때 미디어몽구 김정환씨가 비가 그쳤으니 우비를 좀 벗겨 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고 아마 그 즈음부터 (환복을)시작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뜨개질 한 옷도 직접 만들었냐는 질문에 “뜨개질은 내가 한 게 아니라 타 지방 대학생들이 가끔 해서 가져오는 걸로 알고 있다. 안철수 전 후보 부인도 모자와 목도리를 직접 뜨개질 해 줬다”며 “나는 사서 입힌다. 지하상가 같은 곳에서 살 때도 있고 길 가다 예쁜 게 있으면 구입한다”고 설명했다.
소녀상은 평소에도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의 옷을 많이 입어왔다. 이에 대해 그는 “소녀상 색이 동색이어서 아주 하얀색을 어울리지 않고 황금색 계열이 잘 받는다”며 “화려한 색상이 소녀상 이미지에 어울린다. 김정환씨가 누가 항상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매일 출퇴근 때 들려보려 노력 한다”며 “보통 2~3일에 한 번씩 모자와 목도리를 갈아입혀주고 양말은 일주일 정도 입힌다”고 말했다. 이어 “이영희 디자이너가 설날 때까지 한복을 입혀 달라 하셔서 지금은 눈이나 비 올 때 우의만 입히고 벗기고 한다”며 “벌써 커다란 이불보따리로 2개 정도 양이 되었다”고 답했다.
김 씨는 “직접 가져와 빨고 어울리는 색깔을 맞춰서 가져간다”며 “할머니들이 수요집회 외에 소녀상이 혼자 있는 걸 많이 신경 쓰신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본인들을 상징해서 만들어 놓은 거라 마음이 많이 쓰이시는 것 같아 늘 보살핌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좋은 기부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 김 씨는 “그 전까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잘 몰랐다. 나는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냥 어쩌다 하고 있는 것”이라며 “예전에 해오시던 걸 그대로 하고 있는 거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go발뉴스’가 함께 추진하고 있는 평화비 건립을 위한 ‘나비프로젝트’에 대해 김씨는 “나도 티셔츠를 구매했다”며 “싱가포르 답사가 불허돼 안타깝다. 곧 좋은 소식이 있길 기대한다”고 응원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위안부 소녀상’ 세우기인 ‘나비 프로젝트’의 답사가 싱가포르 정부의 불허로 무산됐다. 정대협과 ‘go발뉴스’팀은 “현재 다른 후보지를 찾고 있는 중”이라며 “프로젝트는 중단된 게 아니라 잠시 보류됐다”고 밝혔다.
‘나비 프로젝트’는 시민들의 자발적 기금으로 진행, 다양한 기부 상품 구매로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수익금 전액은 ‘나비 프로젝트’에 기부된다(☞ ‘나비 프로젝트’ 함께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