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이등병의 엄마’들, 국군의 날에 눈물짓는 사연

“의무복무중 사망한 모든 이등병, 차별없이 국가유공자로 예우해야”

매년 10월 1일은 국군의 날입니다. 이날 정부는 군인의 노고를 위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군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한 여러 행사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일날, 또 다른 의미에서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있습니다. 바로 의무복무를 위해 아들을 군에 보냈으나 돌려받지 못한 <이등병의 엄마>들 입니다. 

▲ 군 의문사 문제를 다룬 연극 <이등병의 엄마> 중 한 장면.
▲ 군 의문사 문제를 다룬 연극 <이등병의 엄마> 중 한 장면.

2017년 5월, 저는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통해 이런 엄마들의 아픔에 대해 국민적 관심을 촉구했습니다. 국방부 공식 발표에 의하면 1948년 11월 30일 군 창설 이래 약 39,000여명의 군인들이 ‘복무중 사망했으나 아무런 예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아들과 남편을 잃은 군의문사 유족들은 국군의 생일인 이 날만 되면 ‘더 가슴 아파’ 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징병제 나라에서 국가의 명을 받아 입대한 아들이 ‘누구처럼 무사히 병역의무를 마치고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왜 내 아들은 돌아오지 못하나 하는 슬픔과 서러움의 눈물입니다.

과거에는 이를 국가의 잘못이 아닌 ‘그 가족과 부모 탓’으로 돌렸습니다. 집안이 가난해서, 부모가 이혼해서, 또는 대학을 못간 좌절감에 혹은 아픈 몸을 비관하여 자살했다는 것이 군 헌병대의 상투적인 처리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헌병대의 이런 수사 발표에 유족이 “우리 집은 가난하지도 않았고 부모가 이혼 하지도 않았으며 입대 전엔 건강한 아이였다”고 항변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정말 가난해서 죽었다면, 또 부모가 이혼하는 등 불우한 환경이라서 죽어 마땅한 집의 아이였다면 ‘그런 집 아이들을 왜 지금도 국가가 징병하여 강제로 끌고 갔냐’고요. 국민의 의무라며 징병할 때는 언제고, 막상 죽고 나면 원래부터 문제가 있는 가정이었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논리는 정말이지 너무하는 것 아닌가요?

‘누구처럼 군복무를 기피한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해외로 도망가지 않았던 아들이었다’고 그 엄마들은 외칩니다. 국가가 오라고 한 날, 스스로 머리 깎고 병무청이 지정해 준 보충대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간 아들이었습니다. ‘국가의 부름에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응했고,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군인이 되었는데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냐’며 엄마들은 울부짖습니다.

▲ <사진제공=뉴시스>
▲ <사진제공=뉴시스>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애국을 완료한 시점은?

그렇습니다. 그들의 ‘아들들’은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이런 애국에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 유공의 기준을 크게 두 가지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는 ‘희생’이고, 또 하나는 ‘공훈’입니다.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의무복무제도의 나라에서 ‘군인이 애국을 완료한 때는’ 언제라고 생각하는지요.

6.25전쟁 때처럼 총탄을 들고 탱크로 뛰어 들었을 때? 아니면 육탄 10용사처럼 적의 진지로 뛰어들어 백병전을 하다가 사망했을 때? 맞습니다. 그분들도 고귀한 희생이고 애국자입니다. 그러나 저는 더 넓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의무복무 군인’의 경우는 또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애국을 완료한 시점은 바로 의무복무 군인이 ‘스스로 입대를 위해 보충대로 들어선 순간’이 아닐까요. 기피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조국이 불러서 간 군대입니다. 어려서부터 벌레 한 마리 죽여 본 적 없고 누구와 다투지 말라는 말만 듣고 자란 착한 아들이 갑작스럽게 적을 죽이는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매일 총칼을 들고 뛰고, 외치고, 행동하라고 강요받습니다. 누구에게는 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겠지요. 하지만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28년 전 군에 입대했을 때 저의 경험입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입대 후 당시 보안사령부(현 안보지원사령부)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결국 애초 배치된 부대에서 다른 부대로 전출되었고 그곳에서 매일 강요받은 훈련이 ‘충정 훈련’이었습니다.

민주화 요구 시위가 격화되어 경찰만으로 진압이 어려울 때 군이 투입됩니다. 시위대를 진압하는 군 훈련, 그것이 바로 ‘충정 훈련’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적이 아닌 ‘또 다른 나를 공격하는’ 훈련을 강요받았습니다. 전두환과 함께 80년 광주를 피로 진압한 노태우 정권하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을 향해 곤봉을 휘둘러야 하는 것을 가상한 진압 훈련에 임하며 저는 말 그대로 매일 죽고 싶은 처절한 절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고 힘들 때 ‘바로 여기서 끝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 상황을 탈출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어느 날은 눈에 보이는 부대 내 ‘의무대’로 들어갔습니다. 정신적 고통 속에 죽고 싶은 마음과 살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하던 그때, 기댈 곳 없던 제 눈에 의무대가 보였던 것입니다. 저는 절박한 심정으로 무작정 그 문을 열고 의무대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해당 의무대에는 저와 비슷하게 의무복무중인 위생병 한 명이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저의 등장에 그 위생병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저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왔냐’고.

저는 머뭇거리다 재차 질문을 받고서야 이렇게 내 뱉었습니다. 그 한마디는 지금 생각해봐도 황당한 말이었습니다.

“저.. 자살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국가의 강요로 내가 할 수 없는 행위를 하고, 내 양심을 저버리는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어이없고 황당한 제 말에 그 의무병이 내려준 처방은 무엇이었을까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위생병은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여기서 그냥 1시간만 자다가 가세요.”

그리고 그는 쫓기듯 의무대를 빠져나갔습니다.

군에 간 아이들이 왜 목숨을 끊으려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28년 전 저의 경험입니다. 죽고 싶지 않지만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끝없는 절망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 1일 국군의 날을 맞아 대구 공군기지(제11전투비행단)에서 열린 '제71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각군 장병들이 멋진 의장행사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1일 국군의 날을 맞아 대구 공군기지(제11전투비행단)에서 열린 '제71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각군 장병들이 멋진 의장행사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국군의 날, ‘또 다른 애국자’ 차별없이 예우해야

오늘도 국군의 날을 맞아 많은 기념행사가 열릴 것입니다. 대구에서는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어느 곳에서는 전투기가 하늘을 수놓으며 날아다닐 것이고, 또 다른 곳에서는 우수한 군인에게 상도 줄 것입니다. 제 아들이 군 복무하던 2014년 당시에 저도 국군의 날을 맞아 수십 종류의 과자를 소대원들과 함께 나눠 먹으라고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 주십시오. ‘기쁜’ 이날 한 편에서는 눈물 흘리는 대한민국의 엄마들이 있다는 것을요. 못나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너무도 착해서, 너무도 성실해서, 남들처럼 버틸 자신이 없어서 선택한 그 죽음은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팔, 다리만 성하면 무조건 군인으로 강제 징병하는, 또 다른 야만이 빚어낸 죽음입니다.

모든 사람이 수학을 잘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수학을 잘하지만 영어는 못하고, 또 국영수를 못해도 체육은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각각이 가진 재능이 다를 뿐입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대한민국 징병제입니다. 국민의 의무라는 미명하에 개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채 ‘군인다움’만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군인이 꿈인 사람도 있었겠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을 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의무복무 군인으로 입대한 순간부터 전역하는 날까지, 그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또 다른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국가가 군인들의 명예를 책임져줄 때, 비로소 대한민국에서 병역은 진정 숭고한 의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구합니다. 적어도 의무복무중 사망한 이등병은 국가유공자로 예우해야 마땅합니다. 데려갈 때는 조국의 아들이고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 야만을 이제는 멈춰야 합니다. 신체 조건이 우수하다며 국가가 징병한 군인인데, 만약 결과적으로 잘못된 징병이었다면 그들의 가정적 문제 요인을 찾아내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완전한 책임을 인정해야합니다.

더구나 얼마 전 병무청은 입대할 자원이 부족하다며 현역 징병 신체 조건을 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금도 15년 전 기준으로, 절대 현역에 입대할 수 없는 조건임에도 강제 징병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조건을 더 완화한다면, 앞으로 군에 입대할 우리의 아들들은 얼마나 더 많은 한계에 부딪히며 좌절하게 될지 걱정이 앞섭니다.

2011년, 시력이 나빠 200미터 사격 표적지를 볼 수 없었던 한 군인이 서른 발째 사격을 마치고 서른 한 발째 사격에서 총부리를 자신을 향해 겨누고 만 그 비극이 다시 또 시작될까봐 저는 너무도 두렵습니다.

의무복무 군인의 사망시 ‘차별없는’ 유공자 예우, 그리고 그 부모 형제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건넬 시작점이 되는 71주년 국군의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앞으로 또 아들을 군에 보내야 할 부모에게 ‘대한민국 군인의 명예는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국가가 해 준다면, 한해 27만 여명의 청년이 입대하는 이 나라에서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들을 군대 보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 날을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오늘은 국군의 날입니다. 어딘가에서 ‘또 다른’ 눈물을 흘리는 <이등병의 엄마>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또 다른 애국자’로 그 엄마의 아들들을 기억해 주실 것을 여러분들께 청합니다.

그리고 모든 대한민국 군인에게 고맙습니다.

고상만 국방‧인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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