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을 위로하지 못한 종교 지도자의 아쉬운 행보’
그런 교황의 방문은 세월호 참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한국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자 희망의 불빛이었다. 오란 말 하지 않았어도 찾아왔던 대통령은 이제 만나달라고 해도 유족들을 멀리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은 여전히 침몰을 목전에 두고 표류하고 있다. 유민아빠는 목숨을 건 아니 목숨을 이미 버린 듯이 단식을 하고 있다. 거기에 가수 김장훈이 24일간이나 동참했고, 보다 못한 이승환마저 짧지만 사흘간의 동조단식으로 세월호의 아픔에 마음을 보탰다.
그런 차에 듣고도 믿지 못할 말이 전해졌다.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염수정 추기경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세월호 유족의 아픔을 이용해서는 안 되며, 유가족들도 일부 양보해야한다”는 의미의 말을 한 것이었다.
추기경은 세월호 해법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아픔을 해결할 때 누가 그 아픔을 이용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이어 “정의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에 빠져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다면서도 그걸 이용할 수 있다며 정의를 이루는 건 하느님”이라고 부언했다.
누군가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추기경이 준 고통보다 크지는 않을 것 같다. 유가족도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는 지극히 여당 측에 치우친 발언으로 유가족 아니 교황방문으로 정의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던 국민들에게 고통과 배신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교황이 준 희망을 추기경은 고통으로 바꿔버렸다.
추기경의 발언이 보도되면서 교황의 방문으로 천주교 붐이 일 것만 같았던 민심에 찬바람이 쌩하고 불었다. 딱히 종교생활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거나 혹은 냉담자들에게 일요일에 성당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던 것이 교황의 방문이었다면 엄추기경의 이번 발언은 그런 마음을 싹 돌려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럴 정도로 희망 후에 찾아온 고통과 분노가 크다는 의미다.
도대체 자식들을 잃은 부모가 그 이유를 알고자 하고,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고자 하는 심정과 요구에서 무엇을 양보할 것이 있다는 것인가. 가수 이승환이 그랬다. 우리 국민은 참 불쌍하다고. 종교마저도 우리 국민을 불쌍하게 만들려는 것인지 답답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