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권‧수사권 보장 촛불문화제.. “지겹다 마시고 도와 달라” 호소
기소권과 수사권을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촛불 문화제가 2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문화제에는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뿐만 아니라 지난 2년 동안 광화문 광장에서 장애인 등급 폐지 및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 중인 장애인들도 참석했다.
또한 광화문과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정의당 천호선 대표, 심상정 의원, 박원석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 이학영 의원 등도 자리를 함께 했다.
유가족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단원고 희생자 故 김시연 학생의 어머니 윤경희 씨는 “저희 아이는 사고 당시 침착하게 배 안에서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렸다. 구조되고 나서 전화한다고 했다”며 “그런 아이가 6일 만에 80번이라는 이름으로 전화기를 꼭 쥐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엄마아빠는 정말 기다렸다. 팽목항에서 울부짖으며 매달리고 매달렸다. 하지만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고 거짓말만 했고 언론에서조차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며 “그렇게 힘이 없었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와서는 전국으로 서명운동을 다녔다. 지금은 청와대로, 국회로, 광화문으로 나갔고 유민아버님은 단식까지 했다. 팽목항에서는 힘이 없던 부모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저희 엄마아빠들도 생존한 아이들도 많이 힘들지만 같이 자란 형제자매들도 트라우마로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다”면서도 “그런 아이들을 집에 두고 저희 엄마아빠가 밖에서 특별법 제정해달라며 돌아다니고 있다. 여러분도 지겹다, 지겹다 하지 마시고, 제대로 된 수사권과 기소권 있는 특별법 제정될 수 있도록 많이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용산참사 희생자 故 이상림 씨 부인인 전재숙 씨도 함께 했다. 전 씨는 “정부와 싸우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저희는 지금까지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소리치고 싸우고 있다”며 “세월호 유가족들은 힘내시기 바란다. 저희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여러분과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팽목항에서 돌아오지 못한 열 분과 그 가족들, 지금 여기의 어머니 아버지들에게 함께 힘을 모아주시고 안아주시고 목소리 높여주시면 감사하겠다”며 시민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문학인들은 시와 편지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작가회의의 황규관 시인은 <지금은 서정시를 써야 할 시간>이라는 시에서 “이제 나는 기적을 바라지 않도록 했다. 그런 낭만으로 슬픔을 더 이상 치장하고 싶지 않구나”라며 “기도 따위로 시퍼런 절망이 아문다는 건 너희를 삼킨 파도에 대한 모멸일 뿐”이라고 노래했다.
또 “그 갑갑한 교복 차림으로 살아오지 말거라”라며 “서정시 한 편으로 와서 새 울음 같은 음악이 된 다음에 떠나거라 우리와 함께 영영 떠나거라”라며 자신의 시를 낭송했다.
황 시인의 이 시는 세월호 참사가 난 4월 16일 밤 진도 앞 바다의 파도가 다시 높아진다는 뉴스를 듣고 쓴 걸로 알려졌다.
소설가 이시백 씨는 자신이 직접 써온 편지를 낭독했다. 편지에서 이 씨는 “가만히 있던 너희들에게 어느 어른 한 사람만이라도 가만히 있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고 외치기만 했더라면 너는 지금 차가운 물에 있지 않아도 되었으리”라며 “네가 가라앉던 배 안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던 이 시간에 이 나라는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철문을 손톱이 닳도록 긁어대던 그 시간에 이 나라의 대통령과 어른들은 무엇을 했단 말이냐”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대학생들은 이날 문화제에 함께 했다. 서울대 이경환 총학생회장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가능한 특별법을 대통령이 결단하고 여야도 이 마음을 받아주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이것이 유가족만의 요구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마음이라는 의미에서, 우리가 함께하고 있단 걸 보여주기 위해 정문에서부터 청와대까지 행진을 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와 경희대 등 대학생들은 오는 25일 서울대를 출발해 4시간에 걸쳐 청와대로의 행진할 예정이다.
한편 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답변을 요구하며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행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행진 대열은 50미터도 못가고 경찰에 막혔다. 1시간 정도 대치하던 시민들은 이후 해산해 개인적으로 청운동사무소 앞으로 이동해 유가족들을 응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