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박정권 비판낙서’에 수천명 신상자료 요구

낙서 공간의 정권 비판 낙서, 재물손괴죄?.. 과잉수사 논란

경찰이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낙서를 한 용의자를 잡기 위해 수천명에 달하는 신상자료를 요구해 과잉수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24일 오전 광주광역시 5개 구청에 1965년부터 1985년 사이에 출생한 남성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인적사항과 사진 등 관련자료를 오후까지 제공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는 지난 15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설현장과 가톨릭 센터, 충장로 등 16곳에 현 정권을 비판한 내용의 낙서가 발견돼, 최근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CCTV화면을 확보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3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용의자는 빨간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독재정권 물러나라”,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12·19 부정선거는 박근ㅎ”, “자유의 적에게 자유는 없다” 등 현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낙서를 광주 도심 곳곳에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 광주지방경찰청
ⓒ 광주지방경찰청

경찰은 흐릿한 CCTV 화면을 캡쳐한 사진을 뽑아 탐문수사를 하던 중 누군가로부터 해당 남성이 “기초생활수급증을 가지고 다닌다”는 제보를 받자 용의자를 기초생활 수급자로 한정해 구청에 관련 자료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이 구청에 요구한 나이대의 기초생활 수급자가 광주 모 구청 한 곳에만 1000명이 훌쩍 넘는 등 모두 합해 최소 4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제보가 정확한지 확인조차 안 된 상황에서 광범위하게 자료를 요구해 과잉수사 및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광주광역시 한 구청의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경찰이 광범위한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자료를 요구해 대상자들의 동의 없이 제공해도 되는지 곤혹스럽다”며 “현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 탓에 경찰이 무리하게 수사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의 무리한 수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낙서 발견 당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비판하는 광주 시국회의 명의의 유인물이 있었던 점 등을 근거로 관할 경찰서인 광주 동부경찰서 외에도 광주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가 함께 용의자 검거에 나섰다.

광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용의자가 낙서한 내용이 대부분 현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비판한 내용인 탓에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점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 보안수사대가 사건 초기부터 관할 경찰서와 함께 수사에 착수했다.

관할 경찰서도 재물손괴죄로 입건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주된 수사부서를 형사과가 아닌 집회·시위사범들을 수사하는 지능팀에 사건을 맡겼다.

결국 공공장소에서 가끔씩 발견되는 낙서사건이지만 ‘정권비판’ 내용인 탓에 공안수사 인력을 투입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낙서의 내용만 놓고 보면 전혀 국가보안법위반 혐의점이 없는 정권비판 내용인데 이를 두고 낙서를 한 세력 등을 미리 유추해 공안몰이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또 신고가 없어도 처벌이 가능한 재죄물손괴죄 적용도 문제다. 용의자가 낙서한 공간은 사유지인 광주 동구의 구 가톨릭센터 부지 공사현장과 공공장소인 충장로 골목 등 2곳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신축 부지의 외벽에 집중됐다.

철제 조립식 담으로 세워진 문화전당 공사현장 외벽은 처음 만들어질 당시부터 시민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적고 그릴 수 있는 낙서(Graffiti·그라피티)의 공간으로 기획, 조성된 곳이어서 해당 공간에는 무수히 많은 시민의 낙서가 적혀 있다.

따라서 낙서의 공간에 낙서를 한 이를 재물손괴죄로 처벌한다는 경찰의 방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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