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사회 온존.. 장학사는 전문가, 교사는 부하?”
“오늘 교육청에서 장학지도가 있을 예정입니다. 선생님들은 지금 즉시 담당구역에 가셔서 청소지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오는 날은 초비상이다. 아침부터 스피커를 통해 담임선생님의 임장지도를 당부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주번선생님이나 교장선생님까지 학교 구석구석 청소상태를 확인하고 수업시간에 평소 안 하던 학습목표를 흑판에 적는 쇼(?)도 마다하지 않는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자료실에 잠자든 괘도 한 가지라도 걸어놓고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공개 수업을 하는 반에는 학습지도 세안을 작성해 미리 결재를 받아야 한다. 어떤 반에는 수업공개를 하는 전날부터 예행연습까지 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1980년대 까지만 해도 교육청에서 ‘장학지도’를 오는 날에는 선생님들에게 복장까지 정장(?)을 요구한다. 잠바를 입거나 생활복을 입으면 교사답지 못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교사들의 교수용어도 평소 마음 편하게 진행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학생들에게 존댓말로 수업을 진행하는 웃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당연히 학교장의 강력한 주문이 있기 때문이다.
평상복에 편하게 입고 출근하는 선생님이 어쩌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출근 하는 날에는 학생들로부터 “선생님 오늘 장학사 오는 날입니까?” 하고 묻는 학생이 있을 정도다. 오전동안 수업이 끝나면 교장, 교감선생님과 식당에서 낮술까지 한잔 걸친 장학진은 오후 수업시자기 되면 학생들을 자습시켜놓고 전체 선생님들은 교무실에 불러 모은다. 장학지도라는 평가를 하기 위해서다. 평가래야 장학사들이 일장 훈시조의 연설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장학이란 ‘학생들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교사와 교장을 돕는..’ 게 고전적인 임무다. 그런데 당시의 장학이란 학무를 돕기는커녕 민폐(?)를 끼치는 행사요, 교사들에게 곤욕을 치르게 하는 연중 의례다. 이름은 장학이지만 장학지도는 전혀 장학적이지 못했다. 장학사 앞에서 학생들에게 비굴하게 이중적인 담임선생님의 모습을 보이는 건 또 그렇다 치고 수업시간에 자습까지 시켜놓고 평가회에 참석해야 한다.
교육청의 장학지도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학교는 ‘장학사’는 전문가요, 교사는 장학사가 되다만 장학사의 부하다. 교감, 교장, 장학사, 장학관이라는 계급사회가 그대로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학교라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대접받는 학교여야 하지만 교사보다 교감이나 교장이 또 행정관료가 된 장학사가 더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이런 풍토에서 유능한 교사는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고 무능한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게 학교다.
7차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교실은 그야말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수업이나 학생지도의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연금이 되는 햇수만 채우면 명예퇴직을 신청하거나 일찌감치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한 점수 따기 준비를 하는 선생님들이 많다. 나이가 들어 승진을 못하면 무능한 교사(?)로 보이는 이유 때문이다.
교사를 보는 학부모나 일반인들의 시각도 예외는 아니다. 교사보다는 교감이나 교장이 교장보다는 장학관이나 교육장이 권위가 있고 높은 사람으로 존경 받기 때문이다. 어쩌다 줄타기 능력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승승장구 장학관에서 시군 교육장으로 승진했다가 퇴임 후 교육감과 같은 선출직으로 까지 출세(?)하는 길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희망하는 사람들은 많고 승진의 길은 좁은 게 승진의 길이다. 아무나 원한다고 교장, 교감이 되는 게 아니다. 당연히 희소성의 원칙이 적용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전체 유·초·중등학교 수는 18.919개교다. 전체 35만 교원 중 교장은 한 학교 한사람뿐이니 승진의 길은 좁고도 험난(?)하다. 우리나라에서 평교사가 교장, 교감으로 승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한 번 살펴보자.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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