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진실과 정의 승리한 날”.. 심상정 “김기춘 사과해야”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 씨가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지 23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07년 진실화해위가 “강 씨가 아닌 김 씨가 유서를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정을 내려 2008년 재심을 청구한지 6년만이다.
<뉴시스>에 따르면 13일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자살방조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이 확정돼 만기 복역한 강 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당시 국과수 감정인은 유서의 글씨에서 나타나는 희소성있는 필적이 강 씨의 필적과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을 근거로 강 씨를 유서 작성자라고 판단했다”며 “그러나 그 필적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으로 보기 어려운 사정 등을 종합하면 강 씨를 유서 작성자라고 판단한 감정결과는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유서의 필적이 김기설의 필적이 아니라 강 씨의 필적이라고 판단한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는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어 “감정인은 또 정자체로 이뤄진 김기설의 기존 필적과 속필체로 된 유서를 단순 비교·판단해 김기설의 필적이 아니라고 감정한 점도 신빙성이 없는 부분”이라며 “오히려 관련자들의 진술을 통해 김기설이 분신자살 전에 보였던 당심에서 새로 감정한 감정결과를 종합하면 유서는 강 씨가 아니라 김 씨가 작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조작된 증거라고 주장했던 김기설의 전민련 수첩과 메모장 등에 대해서는 “관련 증인들의 증언이나 기재됐던 형상 등에 비춰보면 조작된 것이라고 단정하기 부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서대필 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총무부장인 강기훈씨가 ‘후배 김기설(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씨에게 분신할 것을 사주하고 유서를 대신 써준 혐의’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건으로 당시 노태우 정권은 명지대 1학년생이던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는 사건으로 대학생들의 항의 분신이 잇따르자 국면전환용 사건이 필요했다.
이에 노태우 정권은 1991년 5월8일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분신한 뒤 투신해 숨진 김씨의 배후로 강씨를 지목, 국과수 필적 분석 결과를 내세우며 강씨를 구속기소했다. 법원 역시 '유서의 필적은 김씨가 아닌 강씨의 필적'이라는 국과수 감정 결과를 근거로 강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 강씨는 1994년 8월 17일 만기출소했다.
강 씨에 대한 무죄가 선고에 민주당 허영일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오늘은 진실과 정의가 승리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허 부대변인은 “진실을 규명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이라도 재심을 통해 잘못된 사실이 바로잡힌 것은 다행스런 일”며 “이제 국가기관의 공식적이고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하다. 다시는 국가폭력과 사건 조작에 의해 개인이 희생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검찰 등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변인도 “‘유서대필 사건’처럼 권력자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국가권력을 반대세력에게 멋대로 휘두르는 폭거는 절대로 다시는 없어야 한다”며 “불의한 과거를 그리워하며 끊임없이 돌아가려 하는 지금의 권력자들에게 오늘이야말로 크나큰 경종을 울리는 날”이라 평했다.
故 김근태 의장의 부인인 민주당 인재근 의원은(@JGT_forever) “오늘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의 당사자인 기훈이가 23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기훈아! 축하한다. 그리고 건강 잘 살피고...... 저는 국가폭력의 부당한 행위에 의해 개인이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도(@JINSUK_85) “23년 만에 무죄판결 받은 강기훈씨는 암투병 중이라 하고,33년 만에 무죄판결 받은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환갑에 이르렀는데 그들의 인생은 뭘로 보상해주나. 가족들 앞에서도 맘 놓고 울지 못했을 그 억울함은 누가 달래주나. 굴절되고 피멍든 영혼은 어떻게 풀어주나”라고 안타까워했다.
김 지도위원은 이어 “독재 정권은 대학생을 곤봉으로 때려죽였고, 다음 날 박창수 위원장이 의문의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후 연달아 몸을 살라 독재타도를 외치던 이들을, 유서나 대필하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았던 세력과 검찰. 이제 그들이 유죄가 돼야 할 차례”라고 강조했다.
특히 강 씨에 대한 무죄판결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당시 법무부장관이 김 비서실장이었기 때문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논평을 통해 “희대의 조작극을 벌여 지난 세월 강씨를 지옥 속에 살게 만든 당시 수사검사와 검찰 수뇌부는 그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다”며 “당시 수사를 총지휘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은 지금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막후권력을 행사하고 있고, 당시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곽상도 씨는 박근혜 정부의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에까지 올랐다”고지적했다.
심 대표는 이어 “강씨의 무죄가 사법부에 의해 명명백백히 밝혀진 만큼, 희대의 공안조작극을 총지휘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김기춘 비서실장은 강 씨에게 사과하고, 이번 판결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