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자살, 경제적 이유”.. 표창원 “죽음 폄훼 작태에 분노”
‘박근혜 대통령 사퇴, 국가정보원 사건 특검 실시’를 요구하며 분신한 40대 남성이 끝내 숨을 거뒀다.
1일 <한겨레>와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31일 오후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병원으로 옮겨진 이모씨(40)는 1일 오전 7시55분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전신화상으로 숨졌다.
이씨는 쇠사슬로 손 등을 묶은 채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라고 적힌 펼침막 2개를 고가도로 아래로 내걸고 시위를 벌이다 분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서 발견된 이씨의 수첩에는 이씨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의 글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글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17줄 분량으로 작성됐으며 최근 대학가에 붙은 ‘안녕들’ 대자보와 유사한 글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발표한 수사상황 자료에서 “동생의 진술에 의하면, 이씨가 일주일 전 동생에게 전화를 해 이씨가 가입한 보험의 수급자를 동생 명의로 바꿔 놓으라고 했고, 이씨가 신용불량 상태에서 빚 독촉으로 많이 힘들어 했다면서 경제적인 이유 말고는 분신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언론과 경찰이 이씨의 분신을 개인의 금전적 어려움에 따른 일탈로 몰아가는 듯한 인상을 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고인의 죽음과 부채는 전혀 무관하다’며 경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박 변호사는 1일 고인의 친형과 함께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고인의 죽음에 빚이 영향을 줬다는 고인 동생의 진술은 사고 소식을 접한 뒤 경향이 없었을 때 나온 것”이라며 “빚을 진 게 7~8년 전이고 현재 수입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는데 지금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이어 “이씨가 가족에게 3통, 도움 받은 분들에게 2통, 국민에게 2통의 유서를 각각 남겼다”며 “유서에는 정부 실정을 비판하고 ‘국민이 느끼는 두려움과 주저함을 내가 다 안고 갈 테니까 일어나십시오’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공지영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부채 때문에 고민한다고 정권퇴진 플랜카드 걸고 분신한다면 이 나라 인구 몇이 남겠나? 나도 대출금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다. 가난한 한 노동자의 죽음을 제발이지 욕되게는 하지 말기를”이라고 비난했다.
서주호 정의당 서울시당 사무처장도 “‘특검실시! 박근혜 퇴진!’ 경찰은 고인을 두 번 죽이지 말라!”고 비판했다.
언론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사람의 목숨이 쓰러졌다. 결코 이 분의 행동을 지지하거나 옹호하고 싶지 않다”면서 “그러나 이 분의 사망을 이용해 선동하는 행동에도 반대한다. 같은 마음으로 이 분의 삶과 죽음을 폄훼하고 그 명예를 훼손하는 작태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특히 가족의 동의 없이 이 분의 경제 사정이나 부채, 개인 사생활 관련 내용을 마구 공개 유포하고 보도하며 애써 이 분이 죽음으로 주장하려던 박근혜 대통령 사퇴와 국정원 사건 특검 도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막고 돌리려는 한심한 작태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박대용 춘천MBC기자는 “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면 철도파업을 했을까...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면 40대 남성이 분신했을까...”라고 꼬집었고, 성균관대 류승완 박사는 “이렇게 열사의 뜻까지 왜곡하다니, 언론사는 썩어도 기자는 최소한 양심이 있어야지”라는 글을 게시했다.
배우 한정수 씨도 “서울역 분신…. 결국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건 어느 뉴스에도 이 사건은 보도되지 않는다는 것.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밖에도 SNS상에는 “부정선거 특검을 요구하며 시민이 분신하는 현실... 도대체 뭐하는가? 민주시민들이 더 죽어나가야 정신 차릴 것인가?”(kub******), “지금 우리는 사람들이 분신해도 뉴스에 나오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국가가 지켜주지 않는 불쌍한 국민들의 목숨이 더이상 헛되이 버려지면 안 되겠지요. 불행한 역사의 반복됨이 우려되는 새해 첫날밤입니다”(his****), “분신, 여전히 표현하기 힘든 말입니다. 부디 편히 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can****)라는 등의 글들이 올라왔다.
한편, 국정원 시국회의는 “장례는 오늘부터(1일)부터 4일간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4일 서울역 광장에서 영결식을 하고 고인은 광주 망월동 구묘역에 안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