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다룬 연극 ‘해피투게더’

‘개장’서 만난 제작자 장영승.. “생존자, 여전히 생지옥서 살아”

국내 최대 부랑자 수용시설이었던 형제복지원은,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린 믿기 힘든 역사의 ‘수용소’다. 생존자들은 26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곳을 생지옥이라 표현하며 국가가 낳은 희대의 인권유린 사건의 피해자로 여전히 지옥 속에 살고 있다.

 
 

지난해 11월 형제복지원의 참상과 생생한 증언이 담긴 책 ‘살아남은 아이’의 출간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이 재조명 되면서, 형제복지원이 폐쇄된 지 26년 만에 피해자들이 입을 열고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세상 밖으로 나오려 피해자들이 힘겨운 발걸음을 떼는 가운데, 오는 15일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연극 ‘해피투게더’가 무대에 오른다.

2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해피투게더’ 제작자 장영승 서촌갤러리 관장은 뜻밖의 장소에서 기자를 반겼다. 다름 아닌 대학로 한복판 ‘개장’에서였다. 오전부터 내린 비로 축축히 젖은 창살 안에서 장 관장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어서오라”고 입을 뗐다.

ⓒ'go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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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관장은 ‘해피투게더’의 홍보를 위해 개장에 갇힌 퍼포먼스를 계획했다고 전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창살 안에 인권을 가두고 지옥 같은 생활을 겪게 만든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나 연극처럼 문화적으로 접근해야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시작하게 되었다. 영화는 혼자서 힘들 거라는 판단에 연극으로 알려보면 어떨까 해서 무대에 올리게 된 것”이라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장 관장은 올해 초, 12살에 형제복지원에 수감됐던 한종선씨의 증언이 담긴 ‘살아남은 아이’를 접하면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됐다. 당시 그는 SNS 등으로 형제복지원 이야기를 알렸었는데, 주위의 많은 이들이 이 ‘엄청난 사건’을 모르고 있음을 알게 되어 연극 제작에 적극 나서게 됐다.

1975년 박정희 독재정권이 내무부훈령 410호(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사무처리 지침)를 시행하며 설립된 형제복지원은 전국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로, 전두환 정권으로까지 이어지며 거리로 내몰린 고아, 장애인, 부랑자들을 마구잡이로 끌고 와 감금했다.

형제복지원의 자체적 기록에만 따르더라도 1975년부터 폐쇄된 1987년까지 총 513명이 이곳에서 숨졌다. 피해자들은 부랑인들을 선도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길거리에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을 데려가 형제복지원에 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키는 등 심한 구타와 성폭행 등의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go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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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1987년 3월 감금당했던 원생 1명이 구타로 목숨을 잃고 35명이 시설을 탈출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형제복지원의 원장은 당시 횡령죄 등으로 고작 2년6개월의 형을 받았고 폭행, 살인미수, 감금 등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인 김용원 변호사는 외압이 있었음을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검사장을 대신해서 지휘하는데 ‘너 완전히 미친놈 아냐? 당장 돌아가. 어디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는 말을 윗선에서 듣고 사건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장영승 관장은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들은 정당한 자기의 권리조차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걸 봤는데도 ‘제 자리입니다’라는 말조차 못하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며 “이들에게는 국가가 자행한 엄청난 인권탄압에 대한 최소한의 명예회복이 필요하고 국가에 그것을 요구함이 마땅하다. 문화적 컨텐츠를 통해 이 사건을 알리고 많은 이들이 알게 되면 그늘에 가려졌던 피해자들도 서서히 나오지 않겠나”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해피투게더’라는 제목에 대해 묻자, 장 관장은 이수인 연출가의 뜻을 적극 반영했다고 전했다.

그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가 희생된 것 아닌가. ‘해피투게더’는 소수의 입장에서 우리가 같이 행복해보자는 의미가 담긴 이야기다”라며 “소위 돈 많고 다수인 이들도 자신의 행복이 남의 불행으로부터 시작되면 행복할까? 같이 행복해야 그들도 행복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같이 모두가 행복해지자는 뜻의 제목이다”고 밝혔다.

장 관장은 이어 “사람들이 역사라는 것은 잊으면 되풀이 된다는 말을 요즘 하더라. 과거를 회상하고 정리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일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 경각심을 가지고 잊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관심과 복지에 대한 틀을 제대로 갖춰야만 형제복지원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인권유린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본다. 지금도 분명 어딘가에는 약자들이 모여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이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해피투게더’는 오는 15일부터 한달 간 서울 대학로 아트센터K 동그라미 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연극 ‘해피투게더’ 공식 사이트 바로가기)

<‘해피투게더’ 홍보용 티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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