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경찰 수사 이유로 ‘이태원 참사 원인조사 안 한다’ 결정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설 연휴가 시작된 지난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것을 두고 유가족들이 ‘도둑 조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공식 사과와 사퇴를 촉구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상민 장관은) 유가족들에게 어떠한 연락도 없이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를 찾았다”며 “‘의도적’으로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가장 없을 것 같은 날에 시민분향소를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유가족협의회는 “많은 유가족들이 설 연휴 기간 동안 사랑하는 이들이 안치된 봉안당 등을 방문할 계획으로 지역에 내려가고 있는 중”이라며 “이상민 장관이 진정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싶었다면 어떠한 소통도 없이, ‘설 연휴 전날’에 분향소를 몰래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상민 장관은 조문을 받고 있는 유가족 앞에서 ‘유가족들이 안 계시나요?’라며 보좌진들과 함께 분향소를 떠나려 했는데, 아무래도 ‘분향소에 왔으나 유가족이 없어서 유가족을 못 만났다’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의심했다.
유가족협의회는 “분향소를 떠나려던 이상민 장관은 유가족이 계시다는 시민들의 항의를 받고 뒤늦게 돌아와 조문을 받고 있는 유가족협의회 유가족과 대화를 했다”면서 “이상민 장관은 ‘뭘 할 수 있냐’고 물었던 유가족에게 ‘여러 번 말씀을 드렸는데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지난 11월 개별 유가족과의 비공식적 만남만을 요구하면서 유가족협의회의 전체 만남은 거부하기까지 했다. 더불어 이번 방문 이전 유가족협의회와의 공식적인 만남도 협의한 적 없다”고 꼬집고는 “마치 행안부와의 만남을 못하는 것의 책임이 유가족들에게 있는 듯 이야기한 이상민 장관의 발언에 실소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유가족협의회는 “시민분향소에 방문하는 대부분의 단체들과 종교 인사들은 유가족들에게 미리 조문 일정을 문의한다”며 “그러나 한덕수 국무총리에 이어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유가족들에게 어떠한 고지도 없이 분향소를 ‘도둑방문’한 것은 진정한 위로를, 책임지는 사과를 유가족들에게 전해주기보다는, 분향소를 방문했다는 알리바이 만들기에 급급해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이상민 장관의 이번 ‘도둑조문’은 어떠한 위로를 전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유가족들에게 더욱 고통과 실망감을 주었다”며 “이상민 장관이 진정으로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싶다면, 국정조사결과보고서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여 사퇴함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유가족협의회에게’, ‘직접’, ‘책임을 인정하며’ 사과한 뒤 조문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행정안전부가 ‘이태원 참사’ 재난원인조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24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행안부는 경찰 수사가 있었다는 이유로 이태원 참사에 대해 재난원인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복수의 기관에서 동시에 같은 건에 대해서 조사할 필요는 없다.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조사했기 때문에 별도의 조사는 불필요하다”며 “재난안전법에 의한 재난원인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별도의 재난원인조사가 실시된 셈”이라고 주장했다.
관련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서 전문가 위원으로 참석한 이동규 동아대 재난관리학과 교수는 한겨레에 “경찰 수사와 정부 차원의 재난원인조사는 성격이 다르다”며 “재난원인조사가 있어야 이행점검과 제도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복남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의 ‘10.29 이태원 참사 대응TF팀’ 단장은 “수사는 법적 책임만 확인하는 것”이라며 “재난안전관리법에 명시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정부의 행정적 책임 등은 따지지 않았다. 더구나 경찰 특수본은 행안부에 면죄부를 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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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런 상황에서 재난원인조사마저 하지 않겠다는 것은 참사 당시에도 책임지지 않았던 행안부가 참사 이후에도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참사, 물류창고 화재 등 대형 인명 피해가 있을 때마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했던 행안부가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는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냐”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재난 업무를 총괄하는 행안부가 계속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진상규명기구가 꾸려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유가족 피해 지원과 독립적 조사기구 구성을 포함한 특별법을 속히 만들 계획”이라며 “필요하면 특검법도 추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