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모략 이제 중단해주십시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합작해서, 입을 맞춰서 저를 헐뜯는 것을 방어하기도 참 힘이 듭니다. 제 장인은 좌익 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해방되는 해에 실명해서 앞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제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 됐습니까?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계속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한 장면

지난 23일 서거 12주기를 맞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성이다. 언제, 어디였을까.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던 ‘기호 2번’ 노무현 후보는 그해 4월 열린 인천 경선에서 위와 같이 스스로 ‘대통령의 자격’을 물었다. ‘기호 1번’ 이인제 후보를 비롯한 경쟁 후보들이 보수언론의 ‘색깔론’을 이어 받아 노 후보를 공격했던 것이 도화선이 됐다. 

“여러분,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서 심판해주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아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신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 두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당시 민주당 경선을 주요 소재로 삼은 다큐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통해 재조명되기도 했던 해당 연설은 ‘정치인 노무현’은 물론 ‘인간 노무현’의 매력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됐다. 12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위와 같이 훗날 명연설로 회자된 ‘남편 노무현’의 선택을 길어 올린 것은. 

2022년 3월 치러지는 20대 대선을 10개월여 앞둔 지금, 20년 전 노무현 후보처럼 대선 후보로 각광받는 인물의 처가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짐작했다시피, 그 주인공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아내와 장모다. 

헌데, ‘색깔론’으로 고통 받았던 노 전 대통령과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윤 전 총장의 장모 최모씨가 사기죄로 감옥에 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최모씨의 ‘사기 혐의’ 재판이 처음 열렸다. 지상파 3사 및 JTBC 중 메인뉴스에서 이 소식을 다룬 곳은 MBC <뉴스데스크>가 유일했다.    

유일하게 MBC만 전한 윤 전 총장 장모 최씨의 사기 사건 재판   

“최 씨는 지난 2013년부터 이른바 ‘사무장 병원’을 운영하며 23억원에 달하는 요양급여비를 부정수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법정에선 검찰의 공소사실이 공개됐습니다. 검찰은 ‘최씨가 의사가 아닌데도 동업자와 공모해 영리 목적의 의료기관을 설립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3억 원 가량을 편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최 씨가 병원 건물 인수 작업을 위해 17억 원을 대출받았는데, 검찰은 이를 병원 운영에 관여한 증거로 봤습니다. 지난해 MBC가 최 씨의 17억 원 대출 사실을 보도했지만, 최씨는 줄곧 병원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해 왔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최 씨가 동업자인 주 모씨의 요청을 받아 직원 급여 명목 등으로 2억 여원을 송금했고, 사위 유 모 씨를 요양병원에서 근무하게 해 운영 상황 보고받았다고 밝혔습니다.”

▲ <이미지 출처=MBC 화면 캡처>

이날 MBC가 보도한 <‘혼자만 무죄’라던 장모…검찰 “17억 대출 받은 운영자”> 리포트 중 일부다. 통장잔고증명서를 위조한 혐의(사문서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 부동산실명법 위반) 재판에 이어 요양급여 편취 사기 혐의 재판에 얼굴을 드러냈다는 최모씨. 

최씨 사건의 수사를 지휘한 차장검사가 사의를 표명하는 등 수사에 난항을 겪었던 서울중앙지검의 공소사실은 첫 재판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근 ‘이성윤 공소장’ 유출 의혹에 대한 ‘친검찰’ 언론의 행태가 얼마나 위선적인지, 그간 검찰의 선택적 ‘언론 플레이’가 어떤 의미인지를 드러내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애초 최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 자체가 여론에 떠밀린 인상이 강했다. 편취나 액수가 다를지언정 최씨의 동업자 3명은 지난 2015년 파주경찰서가 수사, 이후 모두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최씨에 대한 기소 자체가 예외적으로 보일 정도라 할 수 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왜 검찰의 ‘공공의 적’이 됐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 최씨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엔 그간 알려지지 않은 정황도 담겨있었다. MBC 보도를 더 보자. 

“이 과정에서 윤석열 전 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의 지인이 개입한 정황도 처음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지인은, 당초 잔고증명서 위조 사건에만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 씨의 지시에 따라 이른바 '돈심부름'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겁니다. 이 지인은, 당초 잔고증명서 위조 사건에만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 씨의 지시에 따라 이른바 ‘돈심부름’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겁니다. 

해당 지인은 ‘최 씨가 송금을 부탁하면 자신의 계좌로 돈을 받아 최 씨가 지시한 곳으로 입금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면서 ‘김건희 씨와 같은 대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최씨가 자신을 믿고 돈을 맡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최 씨는 법정에서 ‘공소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운영했다는 부분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이제, 윤석열 차례다  

윤 전 총장의 아내인 김건희씨의 지인이 통장 잔고 위조사건에 이어 요양급여 편취 사건에도 개입했다는 정황은 그간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나지 않았다. 본인 또한 ‘대가성 기업 협찬’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장본인인 김씨가 모친의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또 다시 제기될 만한 상황인 것이다. 

최씨의 재판은 이제 시작이다. 지난 3월 통장잔고 위조사건 재판이 처음 열렸고, 어제 요양급여 편취 등 사기 사건 첫 재판이 열렸다. 윤 전 총장의 대권 도전 선언이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최씨 재판이 손꼽히기도 한다. 재판이 계속될수록 윤 전 총장의 부담 또한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다수 언론이 침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파가 이 정도다. 사필귀정일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은 고작(?) 법무부장관 후보자인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일가족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장관의 자격’을 물었다. 전 언론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검증에 나섰다. 적어도 보수 경제지를 비롯한 유력 언론이 ‘친검찰’ 딱지를 떼려면 적어도 다가올 ‘검증의 시간’에 언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제 보수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오른 윤 전 총장 차례다. 20년 전 노무현 후보는 ‘색깔론’에 밀려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라며 후보의 자격을 물었다. 갖가지 범죄 의혹에 휩싸인 채 검찰의 기소를 통해 재판에 넘겨진 장모 최씨와 또 다른 의혹을 받고 있는 김건희씨를 두고, 윤 전 총장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제 윤석열 전 총장 차례다.  

▲ <이미지 출처=MBC 화면 캡처>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