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지지하는 전문가 포럼이 21일 발족한다. 창립 기념 토론회에는 윤 전 총장의 석사 논문을 지도한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강연자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기조발제자로 각각 나선다.”

지난 19일 <윤석열 지지 33인 포럼 발족, 진중권 기조발제자 나선다>란 <중앙일보> 단독 보도의 서두다. <중앙일보>는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공정과 상식)’ 포럼의 상임대표를 맡은 정용상 동국대 법학과 명예교수와의 18일 통화 내용을 소개하며 “각 분야 교수와 전문가 33명이 모여 포럼을 발족한다”며 “무너진 공정과 상식, 법치 시스템을 바로 세워 정상적인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절박한 마음으로 모임을 조직하게 됐다”며 모임의 결성 배경 등을 소개했다.  

▲ 진중권(왼쪽 두번째) 전 동양대학교 교수가 2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 창립식 및 윤석열, 대통령 가능성과 한계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실로 장대하다. 모임 성격을 설명하는 문구가 ‘무너진 나라 정상화 프로젝트’와 ‘정권교체 지성인 포럼’ 등이다. 일단 성격 자체가 모호하게 다가오지만 ‘반문재인 연대’라는 점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해 보인다. 또 하나, <중앙일보>가 제목으로 뽑은 것처럼 ‘윤석열 지지’를 공개 천명한 모임이라는 사실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섭외를 받을 당시에는 모임의 성격에 대해서는 듣지 못 했습니다.  물론 들었다고 해서 못 갈 것도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어느 모임에서 ‘공정’을 주제로 발제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수락한 것뿐입니다. 아직 출마 선언도 안 했고, 출마한다면 어떤 식으로 할지, 어떤 정책과 공약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 모든 것이 유동적이니,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침부터 한 기자가 전화를 해서 잠을 깨우길래...”

이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해당 <중앙일보>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부연한 모임 성격은 이랬다. 모임 성격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기조 발제 의뢰를 수락한 진 전 교수나 섭외한 모임 모두 의아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21일, 해당 포럼의 개최 소식이 전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의 호들갑을 등에 업은 ‘윤석열을 위한, 윤석열에 대한’ 모임이라 할 만했다. 

무용담만 나열하면 당장 진퇴양난도 상관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과거 자신의 은사인 송상현 전 국제사법재판소장에게 정치 참여에 관한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송 전 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공정과상식) 출범식 기조강연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이날 <뉴스1>이 보도한 <윤석열 “정치 하면 어떨까요”..옛 은사 송상현 “네가 알아서 해라”> 기사의 서두다. 포털 메인을 장식한 해당 기사의 수준이 가히 ‘무협 소설’급이다. 비유하자면, 지금은 유명 칼잡이로 거듭한 제자와의 추억을 되짚는 스승의 허세 섞인, 그러나 알맹이 없는 회고담 수준이랄까. 해당 기사 속 이어지는 무용담을 좀 더 보자.    

“윤 전 총장이 서울대 법학과 대학원을 다닐 때 석사논문을 지도한 인연이 있는 송 전 소장은 ‘(윤 전 총장이) 옛날에 정치를 하면 어떠냐고 물어봤다’면서 ‘네가 알아서 하라고 그랬다’고 웃으며 답했다. 지난 3월 검찰을 떠난 이후 정계 입문을 고심했다고 알려진 윤 전 총장이 자신의 옛 은사에게도 조언을 구하며 장고를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은 총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지난 3월 19일 ‘101세 철학자’로 불리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찾아간 자리에서도 사회 현안에 관한 조언을 구한 한편 자신의 정치 참여에 대한 질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송상현 전 국제사법재판소장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 창립식 및 윤석열, 대통령 가능성과 한계 토론회에서 '국제질서의 변동과 우리의 과제'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여기서 방점은 ‘장고’에 찍힌다. 그러니까 기사의 의도대로라면, 윤 전 총장이 대선출마를 갑작스레 결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옛 은사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오랜 전부터 숙고를 해왔다는 것이 된다. 

윤 전 총장의 대선 의지 및 대선주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함을 지원사격하려는 기사였겠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윤 전 총장이 실제로 대선 출마에 장고에 장고를 거듭했다면 총장 재임 시절 본인이 지휘한 수사의 정치적 의도들을 재차 따져 물을 수밖에 없다. 

조국 일가족 수사 및 청와대 수사 등 ‘윤석열 검찰’이 대대적으로 벌인 수사 모두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게 되는 것이요,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검찰 수사 전부에 먹칠을 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장고를 했어도 문제, 검찰총장 퇴임 후 정계 입문을 결정했어도 문제인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할까. 

‘민족대표 33명’ 그대로 받아쓴 SBS 

“발기인은 총 33명인데, 정 교수는 1919년 민족대표 33명이 3·1 독립선언을 한 것에 착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모임이 분과·전공·지역별로 구성돼 있다고 전했다. 공정과상식 발기인 33인에는 정 교수를 포함해 김종욱 전 한국체대 총장, 박상진 국악학원 이사장, 황희만 전 MBC 부사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21일 <머니투데이>의 <‘윤석열 지지’ 전문가 포럼 오늘 출범..‘尹 대통령 가능성’ 토론> 기사 중 일부다. 해당 모임은 보도자료를 통해 ‘민족 대표 33명의 3.1 독립선언을 한 것에 착안’이라고 모임 인원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런 설명을 고스란히 보도에 반영한 언론사는 SBS를 비롯해 이른바 ‘친검’ 언론이라 부를 만한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대다수 언론들은 아직 대선출마 선언을 직접 하지 않은 윤 전 총장이 대외적으론 해당 모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들 언론도 모르는 바 아닐 터다. 이들도 직간접적으로 윤 전 총장 측이 해당 모임과 결부도 있을 거라 짐작만 하고 있지 않을까. 

진 전 교수는 모임 성격도 모르고 기조 발제를 승낙했다고 밝혔다. 맞다. 모임 성격은 중요치 않을 것이다. 핵심 인물이 누군지도 언론의 관심사가 아닌 듯 보인다. 그저 ‘윤석열 지지 모임’이 발족했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 해당 모임에 참여한 이들의 주장을 받아쓰기 바빠 보인다. 윤 전 총장의 무용담이 그랬고, ‘민족 대표 33명’ 비교가 딱 그랬다. 오늘도 언론의 굉장히 낯뜨겁고 민망한 ‘윤석열 용비어천가’는 계속되는 중이다.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