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공을 들였지만 여야정당과 국회의원들이 협조해주지 않았다. 야당은  무조건 반대했고, 검찰은 조직의 총역량을 동원해 국회에 로비를 했다. 털어서 먼지나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 정치인이라 그런지 여당 국회의원들도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검찰은 임기 내내 청와대 참모들과 대통령의 친인척들 후원자와 측근들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추진한 대가로 생각하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정치적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다른 문제였다. 검찰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 주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후 1주기에 출간된 자서전 <운명이다> 중 검찰개혁과 관련된 대목이다. 취임 초기 ‘검사와의 대화’에 나서고 비검찰 출신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장관에 임명하는 파격을 선보였던 노 전 대통령의 개혁 노선에 검찰이, 또 기득권 정치인들이 어떻게 저항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12주기 추도식이 열린 23일,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페이스북에 “봉하 가는 길입니다”라며 운을 뗀 뒤 “착잡합니다. 헌법가치를 들먹이며 스스로 정치권력이 되려는 오늘의 정치검찰을 보면서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말씀을 떠올립니다”라며 이 <운명이다>의 한 대목을 길어 올렸다. 

▲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그러면서 추 전 장관은 “안타깝게도 (노무현) 대통령님의 우려는 오늘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라며 권위주의 정부에서의 말 잘 듣는 검찰과 민주정부에서의 “정치적 중립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독재라고 비난하며 검찰정치를 하는 정치검찰”을 비교한 뒤 그간 검찰이 저지른 굵직한 검찰정치를 한달음에 읊어 내려갔다. 바로 이렇게.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증거도 조작해가며 언론에 흘리고 욕보이기를 했던 검찰이 이명박 BBK 특검에서 꼬리곰탕 한 그릇을 함께 먹은 후 수사를 덮어주었습니다. 유력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의 비리를 덮은 것은 검찰의 대선개입이었습니다. 당시 특검팀에 윤석열 검사가 있었습니다. 

그때처럼 검찰왕국의 수사은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대선개입 목적이라는 점에서도 닮은  꼴입니다. 최근 검찰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억지 기소하여 지휘권을 흔들어 힘을 빼는 수법으로 유력 대선후보가 된 윤석열 부인 김건희씨의 수사를 미적거리며 보위하고 있습니다. 최측근 한동훈의 이동재 채널A기자와 강요미수 공모혐의에 대한 수사방해와 수사검사에 대한 고소와 소송남발, 허위 증언 등으로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추미애 대 한동훈’ 프레임 이용하는 언론들 

연일 검찰정치의 행태를 고발하고 검찰개혁의 목소리를 높여 온 추 전 장관이 ‘노무현 12주기’ 당일 “검찰은 유력한 차기 정치세력에 기생하는 정치검찰에서 진화해, 스스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정치검찰이 되었습니다”라며 “그날이 더디 오더라도 검찰개혁의 사명을 다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한 것은 분명 무게감이 남달랐다. 

특히 일부 언론이 조만간 추 전 장관의 대권도전 선언을 가시화하는 예측 보도를 내보낸 시점이라 그 의미가 더했다. 물론 그 의미를 폄훼하려는 이들은 차고 넘쳤다. 이날 추 전 장관이 콕 짚어 지목한 한동훈 검사장의 주장을 대등하게 보도한 언론이 부지기수였다. 

<한동훈, 추미애 주장 재반박 “사실 왜곡한 허위 주장”> (머니투데이)
<한동훈 “추미애, 매번 사실 왜곡하는 허위주장...유감”> (YTN)
<한동훈, 추미애 향해 “입맛대로 사실 왜곡…유감”> (세계일보)
<추미애 “‘법정 증언’ 사실 아니다”에…한동훈 “매번 허위 주장 유감, 정치적 수사”> (동아일보)
<한동훈 “추미애, 매번 자기 입맛에 맞게 사실 왜곡”> (SBS)
<한동훈 “내가 허위 증언? 추미애, 매번 입맛대로 사실 왜곡”> (조선일보)
<한동훈, 추미애 전 장관 향해 “매번 사실 왜곡” 비판> (국민일보)
<추미애·한동훈 “거짓말 하지 마라”… 장외 공방> (경향신문)
<전직 법무장관·현직 검사장, ‘검언유착’ 수사 놓고 장외 설전> (한국일보)

▲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사진제공=뉴시스>

이날 <서울신문>에 따르면, 추 전 장관은 김해 봉하마을에서 12주기 추도식이 끝난 직후 윤 전 총장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정치 검찰, 검찰 정치는 민주주의의 독초”라고 꼬집은 뒤 “모든 개혁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검찰”이라며 “사람들이 언론개혁도 많이 주문하는데 여론을 움직이는 것은 언론이고 언론을 움직이는 시장 지배 세력을 편파적으로 봐주는 게 검찰 권력”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언론개혁에 앞서 검찰개혁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를 지적한 추 전 장관. 일부 언론이 이런 추 전 장관의 발언을 기사화하긴 했다. 하지만 한 검사장의 입장문을 기사화한 언론사 숫자를 비교해 보시라. 

기계적 균형이라는 이름, 또 권력감시란 명목으로 검찰의 편에선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또 그 언론사의 이름을 소위 ‘검찰 기자단’과 비교해 보시기를. 그 교집합이야말로 작금의 검찰정치와 그에 장단을 맞추며 제 이익을 추구하는 언론사들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 서거 12주기의 교훈 

“가장 막강한 권력은 언론이다. 선출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며 교체될 수도 없다. 언론은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며 여론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진실도 거짓이 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언론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 된다.”

역시나 <운명이다>의 한 대목이다. 서거 12주기를 맞아 ‘노무현 정신’을 앞세운 이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 중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고 싸워왔던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에 동참 중인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해 보시길. 

지역주의 타파를 비롯해 ‘노무현 정신’으로 대변되는 다수의 개혁 노선 중 으뜸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 당일 검찰개혁을 되짚은 추 전 장관과 이에 대해 허위 운운한 한동훈 검사장이나 그에 부화뇌동한 보도행태는 노무현의 개혁이 계속돼야 함을 역설하는 역사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