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대동소이 ‘尹방명록’…‘순대국 먹는 3초 영상’ 줄줄이 기사화, 가치 있나
“조국에 헌신하신 선열의 뜻을 받들어 바른 검찰을 만들겠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참배를 마친 후 남긴 방명록 내용이다. 4일 하루 윤 총장의 이 현충원 방명록 내용 자체가 뉴스가 됐다. 현직 검찰총장의 현충원 방명록에 쓴 글의 내용이 뉴스가 된 것도 이례적이다. 하지만 눈에 더 띄는 것은 언론의 보도 양태였다.
“작년 현충원 방명록에 들어 있던 ‘국민과 함께’ 문구가 올해 현충원 방명록에서 빠진 것을 제외하면 전체 문장은 똑같다. 법조계에서는 여권의 정치적 중립 의무 비판을 의식해 윤 총장이 ‘국민’ 단어를 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4일 <조선일보>의 <같은듯 다른...윤석열 현충원 방명록, 1년 전과 비교해보니> 기사 중 일부다. 지난해 방명록에서 ‘국민과 함께’란 문구만 빼고 판박이와 같은 내용을 ‘정치적 중립’ 운운하며 ‘선해’하는 <조선일보>의 윤 총장을 향한 ‘선의’가 눈물겨울 지경이다.
반면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이를 두고 5일 페이스북에 윤 총장의 두 방명록을 비교하며 “암기 위주 사시의 폐해”라고 꼬집었다. 어느 쪽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가. 총장 취임 직후였던 2019년 7월 25일, 윤 총장은 같은 방명록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말 그대로 ‘오십보 백보’다. 이쯤 되면, ‘암기왕’이라는 별칭보다 현충원 참배에 별 의미를 두지 않거나 방명록 작성 자체를 귀찮아하는 무성의의 일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조국 보위에 헌신하신 뜻을 받들어 국민의 검찰을 만들겠습니다.”
‘조선’의 눈에 띄는 ‘선해’
4일 윤석열 총장의 방명록을 주시한 것은 물론 <조선일보>뿐 만이 아니었다. 이처럼 윤 총장의 무성의를 선의로 둔갑시킨 언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쓰니 우리도 쓴다’는 언론의 양태 또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런 <조선일보>가 5일 또 한 건 성과를 적립했다. 역시나 ‘대권행보’(?)를 이어가는 윤 총장 관련 기사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원들과 함께 순대국집에서 밥을 먹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유튜브에는 한 네티즌이 ‘순대국집에서 만난. 윤석열 검찰총장!’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21초짜리 이 영상에서는 옆 자리에서 윤 총장이 중앙지검 간부들과 자신의 운전기사, 수행비서 등과 순대국을 먹는 모습이 담겼다. 기관장이 운전기사와 함께 밥을 먹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5일 <조선일보>의 <운전기사와 함께 순대국 먹는 윤석열... 유튜브 영상 화제> 기사 중 일부다. 해당 기사 속 유튜브 영상은 구독자 10만의 보수유투버 ‘영우 TV’의 <순대국집에서 만난. 윤석열 검찰총장!>이란 21초 분량의 짧은 영상으로, 윤 총장이 등장하는 분량은 채 3초도 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일보>의 해석이었다. 해당 유튜버는 영상 설명에 “윤석열 총장이 중앙지검장 당시 어느날 흑석동 시장 허름한 순대국집....”이라며 촬영 시점이 현재가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한 윤 총장을 동석인 지인이 “개X끼”라고 욕을 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이 유튜버는 “작금에라도 박근혜 대통령 형집행 정지 시키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용서를 구하고 문정권의 비리를 낱낱히 까발리면 국민적 영웅이 될 텐데”라며 “앞으로 그리되기를 기대해보면서 오늘도 윤석열의 서민적인 모습과 함께 윤석열 힘내라!!! 외쳐봅니다”라며 윤 총장에 대한 달라진 평가를 적었다.
풀이하자면, 여기에 <조선일보>가 “윤 총장이 중앙지검 간부들과 자신의 운전기사, 수행비서 등과 순대국을 먹는 모습이 담겼다”라고 주석을 단 뒤, “기관장이 운전기사와 함께 밥을 먹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일”이라며 역시나 기사에 ‘선의’를 투영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날 <TV조선> 관계자는 해당 영상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TV조선 <사건파일24>팀입니다. 혹시 해당 영상 저희 방송에 사용가능할지 문의드립니다.”
‘순대국 먹는 윤석열’, 기사화 가치가 있나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시점도 아닌 이 영상이 기사화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윤 총장이 채 3초도 등장하지 않는 이 영상을 두고 “기관장이 운전기사와 함께 밥을 먹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해석’한 이 기사는 소설인가, 기사인가.
더 큰 문제는 <조선일보>의 1보(?) 직후 이를 받아쓴 다른 매체의 보도 행태다. 2시간 뒤 <조선비즈>는 <‘역대급 리더’라는 윤석열, 이번엔 비서·기사와 순대국 ‘먹방’>이란 제목을 달았고, <파이낸셜뉴스>, <매일경제>, <매일신문>, <아이뉴스> 등도 줄줄이 이를 기사화했다. 해당 언론들은 네이버 상에서 해당 기사를 ‘언론사가 픽한 뉴스’로 송고됐다.
이는 윤석열의 현충원 방명록 내용이 줄줄이 기사화된 것과 같으면서도 다른 맥락이라 할 수 있다. 현직 검찰총장의 현충원 방명록 내용이, 그것도 3년 째 엇비슷한 내용을 언론들이 줄줄이 ‘선해’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 나아가 적어도 3년 전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윤 총장이 순대국을 먹는 21초, 아니 정확히는 3초 짜리 영상을 ‘선의’로 기사화하는 언론들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그들에겐 이런 기사가 현재 여론조사상 1, 2위를 다투는 유력 보수 대권주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일상적인 보도 행위이지 않겠는가.
‘정치적 중립성 위반’에 따른 ‘공무원의 품위 손상’은 윤 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징계 사유 중 하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언론들은 열심히 윤 총장을 유력 ‘대권주자’로 부각시키는 중이다. 검찰총장의 ‘신년사’를 대통령급으로 추켜 세우고, 3년째 대동소이한 현충원 방명록을 ‘선해’하며, MB의 전매특허였던 ‘순대국 먹는 리더’로 만들면서. 한국 언론의 ‘윤석열 사랑’의 끝이 어디일지 궁금해진다.
하성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