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태의 와이드뷰] ‘정치적 중립’ 깨버린 尹에 환호하는 언론, 공포영화 수준
“윤석열의 행위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검찰의 기득권을 지키고 공수처 출범을 막는 것입니다. 검찰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코스프레를 연출합니다. 모든 기득권세력과 적폐세력, 개혁저항세력의 중심을 자임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윤석열의 정치행위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야권의 중심인물로 부상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공수처는 검찰이 누려왔던 기득권을 내려놓도록 강제합니다. 때문에 윤 총장은 자신의 직을 걸고 투쟁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 욕망은 문재인 정부를 무조건 반대하는 야당과 만나 야권대선후보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윤 총장이 야권대선후보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터무니없습니다.”
27일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한 주장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맹비난한 김 의원은 “윤석열 검찰총장, 우리시대 마지막 정치검찰로 기록 될 것”이라며 아래와 같이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윤총장은 더 이상 검찰집단의 이익을 위해 몽니를 부리지 말고 사퇴해야 합니다. 이제 당신의 정치적 수명은 여기까지입니다. 시대의 흐름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윤 총장을 향한 여권의 맹공이 연일 이어지는 형국이다.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같은 당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송기헌 의원도 2019년 ‘옵티머스 수사’ 무혐의 처분과 관련해 윤 총장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해임 건의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전날(26일) 같은 당 신동근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망론’을 과거 ‘황교안 대망론’과 비교하며 이렇게 주문했다.
“보수 일간지 회장과 회동이나 거침없는 평소 언행 등에 더해 이번 국감은 윤석열 태도나 정치적 행보 발언을 통해 보수언론이 정치인 윤석열의 모습을 각인시키고 증폭시킨 계기가 된 듯합니다. 검찰총장의 역할보다 정치에 더 뜻이 있다면 본인이나 검찰을 위해서도 결단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보수세력에서 황교안 대망론의 새로운 버전으로 윤석열 대망론이 일고 있나 봅니다. 대망이든 소망이든 그거야 생각하는 이들의 자유입니다. 윤석열 총장이 임기를 마친 후 사회 봉사를 하든, 정치를 하든 윤 총장의 자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말합니다.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지만 만일 그런 상황이 온다면 ‘윤나땡’(윤석열 나오면 땡큐)이라 말하겠습니다.”
언론이 부추긴 ‘윤석열 대망론’
이날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추미애 법무부장관 역시 윤 총장이 국감장에 출석, 정치를 할 것이냐는 물음에 확답을 피한 것에 대해 “상당히 적절하지 못한,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라며 윤 총장을 대신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추 장관은 “소신이나 개인의 앞날 준비에 제가 뭐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현재 그의 직책이 검찰을 중립적으로 이끌 수장이기 때문에 지휘감독자로서 의견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다”며 “(총장이) 발언에 좀더 신중하도록 하겠다”며 자세를 낮췄다. 아울러 추 장관은 이날 ‘옵티머스 사건 무혐의 처리’와 관련해 윤 총장에 대한 감찰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윤석열 국감’ 직후 ‘윤석열 대망론’이 여의도를 들썩이는 분위기다. 헌데, 그 전개 과정이 상당히 괴이하다. 보수언론이 띄우고, 윤 총장 본인이 모호한 듯 선명한 행보를 보이는 반면 야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스탠스라 할 수 있다.
먼저 언론의 경우, ‘윤석열 국감’ 이후 부쩍 ‘대망론’을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역대 검찰총장과 비교해 전무후무한 ‘자세 논란’을 일으킨 것도 부족해 퇴임 후 “사회와 국민에 봉사할 것”이란 발언으로 정계 진출 가능성을 열어둔 윤 총장을 향해 ‘정치검찰’이라 비판한 언론은 극소수였다. ‘윤석열의 소신’으로 그를 치장하기 바쁜 언론이 다수였고, ‘검찰의 중립성’을 비판하기는커녕 ‘윤석열 대망론’의 현실성을 점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언론이 이렇게 ‘윤석열 대망론’을 띄우는 사이, 여당이 견제에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예비 정치인 윤석열’에 대한 경계라기 보단 전무후무한 검찰총장에 대한 문책이 먼저라고 할까.
일각에서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에 대한 방어인 한편 취임 직후 ‘조국 일가족 수사’에 이어 ‘청와대 수사’로 전선을 확대하며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과제인 ‘검찰개혁’에 온 몸으로 저항해 온 윤 총장. 그는 국감장에도 여당의 맹공을 역대급 자세 논란으로 돌파하며 정면승부를 벌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윤 총장을 향해 여권이 맹공에 나선 것은 비단 청와대를 대신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윤석열 때리기’가 부각되면 될수록 이렇다 할 대선주자 한 명 없는 국민의힘은 난처할 수밖에 없다. 윤 총장이 당장 사퇴를 하고 정치에 뛰어들 가능성은 전무하다. 장모와 아내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 아닌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 스스로 깬 윤석열
“저는 일관되게 윤석열 총장 우리 당이 영입해야 된다, 정치할 것이다, 여기에 반대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23일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한 발언이다. 주 원내대표는 “만약에 정치 한다면 국민의힘과 하는 거 아닌가요”라는 진행자의 물음에 “민주당과 저렇게 척을 졌으니까. 정치를 한다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라면서도 “정치를 오래 경험한 사람이 해야 실패가 적다”는 이유로 국민의힘의 윤 총장 영입 가능성엔 선을 그었다.
주호영 원내대표 뿐이 아니다. 실제로 ‘윤석열 대망론’을 적극 환영한 보수야당 인사는 장제원 의원 정도로 손에 꼽을 수준이다. 장삿속이 빤히 보이는 보수언론들이 ‘윤석열 대망론’을 키우는 것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답보상태인 보수야권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이 바로 이 ‘윤석열 대망론’의 근간인 셈이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며 ‘조국 일가족 수사’ 이후 ‘윤석열 검찰’의 행보에 면죄부를 쥐어준 언론들이 스스로 ‘정치검찰’을 자임하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깨버린 윤 총장에게 환호를 보내는 현실. 블랙코미디라기보다 한 편의 공포영화 수준 아닌가.
하성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