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성추행’ 정당, ‘여성혐오 클릭장사’ 매체들이 ‘호칭 논란’이라니
“하지만 이제는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사실만 알려진 상황과는 달리 피해자 측에서 피해여성 지원 단체와 법률대리인을 통해 고소사실의 일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지금부턴 ‘피해호소인’이 아닌 ‘피해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17일 더불어민주당 당 최고위회의에서 김해영 최고위원이 한 발언 중 일부다. 김 최고위원은 “故 박원순 시장에 대한 고소건과 관련하여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두고 논란이 있다. 저도 사건 초기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며 “이번 사건과 관련한 우리당의 일련의 대처과정에서 피해자 보호에 부족한 점이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보호를 강조하는 한편 미래통합당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책임 있는 공당으로서 약자를 보호하는 것을 주요가치로 삼는 정당으로서 고인에 대한 추모와 피해자 보호라는 두 지점에서 일의 경중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피해자 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당에서는 향후 진상규명을 포함해 피해자 보호를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미래통합당에서도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발생시킬 수 있는 자극적이고 부적절한 표현을 삼가야 할 것이고 이번 사건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같은 날 허윤정 대변인 역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호칭 통일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전날 여성가족부도 “피해자가 맞다”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여가부와 민주당의 이러한 확인과 당부에도, 통합당 및 보수야당과 적지 않은 언론이 이번 사건을 정쟁의 대상을 넘어 세대간, 젠더 간 대결로 부추기는 양상이다.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서울시 전 직원을 ‘피해 호소인’이라 칭한 여당에 쏟아진 질타도 그 중 하나다.
앞서 지난 15일 당 최고위에서 이해찬 대표가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 다시 한 번 통렬한 사과를 말씀드린다”는 공식 사과에도 불구하고 ‘피해 호소인’이란 표현이 도마에 올랐다.
사과도 늦었지만 ‘피해호소인’이란 명칭도 맞지 않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17일 이 최고위원이 호칭에 대한 교통정리에 나선 배경이라 할 수 있다. 헌데 의아한 사실은 박 전 시장의 극단적인 선택 이후 피해 호소인이란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이 민주당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국여기자협의 액션과 민주당의 혼란
“한국여기자협회는 피해호소인과 연대의 의지를 밝히며, 이번 사안이 미투 운동의 동력을 훼손하거나, 피해자들의 용기를 위축시키는 일이 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다 시 한번 강조한다.”
박 시장의 장례가 한창이던 지난 12일, 여기자협회가 내놓은 성명 중 일부다. 여기자협회는 해당 성명에서 박 전 시장의 공과를 짚은 뒤 “현행 법체계는 이번 의혹 사건에 공소권 없음을 결정했지만, 진상을 규명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면제한 것은 아니다. 법적 차원을 떠난 사회적 정의의 문제”라며 이렇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피해호소인이 무차별적 2차 가해에 노출된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공인으로부터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국민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피해호소인의 고통을 무시하며 고인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정치인 및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공적 언급에 강력한 유감을 밝힌다. 언론은 이번 사건을 보도하면서 성인지 감수성을 거듭 점검하는 등의 언론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피해호소인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적인 용어도, 언론에서 주요하게 활용해온 용어도 아니었다. 사실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미투’와 달리, 사건 피해자인 서울시 전 직원을 어떻게 칭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던 것도 사실이다.
피해자 측 변호인인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기자회견에 나서기 직전 나온 여기자협회의 이 같은 성명은 협회가 지닌 상징성과 함께 사건 피해자에 대한 호칭 중 하나로 인식됐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자협회조차 피해호소인이란 명칭을 공식화했을 만큼 혼란스런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김해영 최고위원은 해당 성명이 나온 다음 날 당 최고위원회에서 “피해 호소인에 대한 비난이나 2차 가해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반면 이형석 최고위원은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고소인이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무분별한 신상털기, 가짜뉴스 양산 등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도록 자제해주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 통일이 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17일 김부겸 전 의원 역시 피해자 호칭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이 전 의원은 대전시의회에서 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과거에 여성학자들이나 혹은 관련단체에서 언급했던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제 나름대로 고민해 표현한 것”이라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확정된 용어가 없어서 제가 이렇게 표현한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호칭을 정쟁화 도구로 삼는 이들
앞서 16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소셜미디어에 “정의당도 초기에 언론을 통해서만 사건을 접했을 때는 ‘피해호소인’이라는 말을 잠시 쓴 적이 있습니다만, 이후로는 '피해자'로 정정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해명하며 “더불어민주당은 무한책임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진상규명과 성폭력 근절을 위한 재발방지 대책을 신속히, 책임 있게 내놓기 바란다”고 촉구한 바 있다. 이날까지도 ‘피해호소인’ 명칭을 고수하던 민주당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이를 두고 같은 날 <연합뉴스>는 <‘피해호소인’인가 ‘피해자’인가…박원순 고소인 지칭 논란>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놨고, 이 최고위원의 정정 직후 <중앙일보>는 <‘피해호소인’ 논란에 두손 든 민주당 “피해자로 호칭 통일”> 기사 제목을 뽑기도 했다.
해당 사안에 민주당이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 것은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왜 통상적으로 쓰이는 피해자란 호칭을 자신있게 쓰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너무 늦었단 쓴소리 역시 가능하다. 하지만, ‘2차 가해’란 전가의 보도를 무기로 해당 논란을 키우고 정쟁화의 도구로 삼는 것은 사회적 피로감만 가중시키는,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피해자의 고통에 연대하겠다는 이들이 경계하는 것 역시 이러한 정쟁화라 할 수 있다. 과연 숱한 성추행 논란에도, 문제제기에도 끄떡없던 보수야당이, 여성혐오로 점철된 헤드라인을 클릭 장사에 이용하던 적잖은 매체가 고작 ‘피해호소인’이란 호칭 하나로 논란을 키워도 되냐는 반문이었다. 물론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늦었지만 호칭을 통일한 민주당 역시 피해자란 호칭 정리와 함께 사건 해결과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는 일에 매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고.
조금 길지만, 2012년 서울대 대책위 사건에서 피해호소인이란 호칭을 처음 썼다고 주장하는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생회장 출신 류한수진씨의 입장문 중 일부를 인용한다. 진상 규명과 사건 해결, 향후 재발방지 책과 관련해 우선돼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주장이 담겨 있는 글이다.
“원론적으로 보아 시당국이나 정당의 대표로서는 피해호소인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겠으나, 시민으로서 저는 이 시점에서는 고발자분은 피해자라고 칭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더구나 대한민국 국가가 성폭력 문제 해결에서 내내 보여온 극단적인 무능과 남성 중심적 편향, 민주당이 이 문제에 대해 보여온 어정쩡하고 보수적인 자세, 서울시가 이미 문제제기를 묵살했다는 해당 여성의 고발을 고려할 때 사실 이 문제에 회칙의 '원론'을 적용할 수 있긴 한지도 의문입니다.
절차 이전에 가피해를 확정짓지 않는다는 것은 성인지적인 의미에서 객관적이며 공정한 절차가 이루어진다는 전제 위에 도입된 원칙인데, 이 사건의 그 어디에도 그러한 절차를 기대할 만한 기관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미투’를 비롯한 근래의 국면에서 고발자들이 하나같이 절차 없이 피해자로 칭해지는 것은 여성에 대한 일종의 ‘국가 부재’ 상태에서 여성들 사이에 일반적인 경험과 상식이 절차를 사실상 대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서 공식 기관의 대표들이 ‘피해 호소인’이라는 대체어를 고집하는 것은, 정말 유감스럽게도, 실제로 보수 언론과 야당, 논객들의 말대로 사건 자체를 무화하거나 최소한 가해자의 불명예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비치고, 또 의도와 상관없이 그런 효과를 어느 정도 발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겁니다. 여성 연대는 말을 지우기 전에, 남성 연대는 말을 가져다 쓰기 전에 말한 사람의 목소리를 제발 좀 듣고 제발 일말의 고민이라도 좀 해달라는 것입니다. 담론 권력을 아예 못 가진 것도 아닌 당사자들이 시퍼렇게 눈 뜨고 보고 있는데 이따위로 하위주체화를 하시면, 더 빈곤하고 발언권 없는 사람들의 말을 당신들이 어떻게 취급할지 저는 정말 깜깜하고 무섭습니다.”
하성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