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태의 와이드뷰] ‘채동욱 낙마’야말로 朴정부여당의 조직적 공격 아니었나
“그건 문재인 정부가 끝난 이후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지금 제거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나중에 당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고향 친구 윤석열’을 지켜내겠다.”
미래통합당 중진 정진석 의원이 2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윤석열 지키기’의 배경이다. 국회 부의장 자리를 거부하겠다고 밝히면서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를 “장악”한 것이 ‘윤석열 죽이기’로 귀결된다는 주장이었다.
참고로, 5선의 정 의원은 충남 공주·부여·청양이 지역구고, 서울 출신인 윤 총장은 부친이 충남 공주 출신이다. 아울러 정 의원은 이날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좀 더 과격한 주장을 펼쳤다.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공수처를 출범시켜, 윤석열 죽이기를 마무리하려고 결심했다”며 ‘윤석열 지키미’를 자처한 것이다.
“구속 수사해서 감옥에 처넣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온화한 얼굴 뒤에 숨겨진 ‘칼날’입니다. 야당과의 원구성 협상을 위해, 여당이 법사위를 내놓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습니다.
저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봅니다. 문재인과 집권세력은 ‘윤석열 제거’ ‘검찰 무력화’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총선 운동 기간 저는 ‘고향 친구 윤석열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 지키려고 합니다.”
통합당의 노골적인 ‘윤석열 구하기’
국회가 정상화됐다면 부의장을 맡았을 정 의원의 이러한 ‘윤석열 지키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석열 총장의 거취가 본인은 물론 ‘검찰개혁’을 둘러싼 통합당의 대여 압박 스탠스와도 고스란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23일 통합당이 내놓은 어이없는 딴죽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늘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사람과 지지세력을 향해서 말을 아끼지 않았었다. ‘마음의 빚을 졌다’는 조국 전 장관에 대해선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절제된 수사력’을 요구했고, 윤미향 사태 때는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보다 정의연 등의 ‘30년 노력’을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의 침묵을 여권은 ‘윤총장 길들이기 공식 인증’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당장 오늘도 더 험한 날이 오기 전에 자진 사퇴하라는 듯한 발언이 나왔다. 윤총장 일신을 겨누는 듯한 공수처 비수 또한 허공을 맴돌고 있다.”
<‘검찰총장 때리기’에도 계속되는 대통령의 침묵, 미필적 고의인가?>란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의 23일 논평 중 일부다. 앞서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 윤 총장과 대면한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의 거취와 관련해 ‘침묵’했다는 이유로 비판에 나선 것이다. 왜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게 한 것 처럼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았느냐는 신박한 논리라고 할까.
통합당의 이러한 뜬금포도 결국 정 의원이 노골적으로 천명한 ‘윤석열 지키기’와 맥이 닿아 있다. 어디 정 의원 뿐인가. 최근 극소수 여당 의원이 윤 총장의 거취를 거론한 것을 두고 통합당 전체가 ‘윤석열 지키기’에 뛰어든 모양새다. 결국 남는 장사란 판단이 선걸까.
그럴 수 있다. 통합당의 ‘윤석열 지키기’는 지속적으로 ‘조국 사태’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어찌됐든 보수와 중도층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윤 총장을 피해자로 만들 필요가 있다.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는 여당 법사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다.
비단 검찰개혁을 둘러싼 대여 압박만이 전부가 아니다. 거취 문제만 해도 그렇다. 당장은 윤 총장이 잠재적 대권주자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도, 향후 사퇴 이후 정치에 뛰어드는 것 역시 쓸 만한 ‘대권주자’를 찾아보기 힘든 보수야권으로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
4.15 총선 참패 이후 대권 레이스를 염두에 둔 보수야권의 윤 총장을 향한 장기포석. 누군가는 일석이조라 만족해하지 않겠는가. 흥미로운 것은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 또한 ‘윤석열 지키기’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응원가 부른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
“윤석열 총장에게 당부합니다. 살아 있는 권력에 저항해도 살아남는 새로운 총장의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살아 있는 권력에도 엄중하라’는 현 대통령의 당부를 끝까지 지키는 총장이 되길 바랍니다. 총장의 앞에는 자신들의 비리를 덮으려는 낡고 부패한 정치세력이 득실거리지만 뒤에는 이 땅의 정의가 지켜지기를 바라며 총장을 응원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있습니다.”
22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발언 중 일부다. 실로 절절한 당부요, ‘윤석열 지키기’에 뛰어든 안 대표의 솔직한 속내가 드러나는 ‘워딩’이 아닐 수 없었다. 최근 보수야당으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있는 국민의당과 안 대표의 ‘우클릭’을 상징하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자리에서 권은희 원내대표도 윤 총장의 거취 논란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기 중에 사퇴하라고 하는 역대 최악의 정치권력에 의한 검찰 흔들기”라 규정했고, 이태규 최고위원 역시 “윤석열 총장에 대한 정부 여당의 조직적인 공격은 한마디로 ‘정의와 공정 무너뜨리기’”라며 ‘윤석열 지키기’에 동참하기도 했다.
안 대표의 응원은 사적인 감정이라 치자. 하지만, 극히 일부 여당 의원의 발언을 두고 “정부여당의 조직적인 공격”이라거나 “역대 최악의 정치권력에 의한 검찰 흔들기”라 침소봉대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과 보수언론을 동원해 ‘채동욱 총장 혼외자 논란’을 일으키고 당시 채 총장을 낙마시킨 것이야말로 정부여당의 조직적인 공격이요, 역대 최악의 검찰흔들기 아니었던가.
문 대통령을 향해 ‘왜 침묵하느냐?’고 딴소리를 하는 통합당과 대놓고 ‘윤석열 응원가’를 부른 국민의당. 어떻게든 정부여당을 깎아 내리기 위한 안간힘에 현직 검찰총장의 거취 논란을 지극히 정치적으로 끌어다 쓰는 보수야권의 몸부림이 이제는 안쓰러울 지경이다.
하성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