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공소장 비공개 논란…문제는 언론

[기자수첩] 검찰 공소장을 ‘사실 확인’으로 단정하는 언론이 바뀌어야

“‘무리한 기소 내용의 공개는 부당하다’는 일각의 주장도 옳지 않다. 수사의 잘못은 그것대로 따질 일이며, 공소장 비공개 이유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국민 알권리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추 장관은 공소장 국회 비공개 원칙을 철회하는 게 맞다.”

지난 6일 경향신문 사설 <이례적인 ‘청 선거개입’ 공소장 비공개, 수긍 안된다> 가운데 일부입니다. 이른바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 방침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경향신문 뿐만 아니라 상당수 언론이 법무부 방침을 비판했습니다. 사실 비판 받을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법무부의 방침을 나름 이해하는 입장이지만 ‘비판론자들’의 지적 – 이를테면 왜 굳이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 기소부터 공소장 공개를 금지한 것인가. 이 질문 앞에 마땅히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 <이미지 출처=경향신문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경향신문 홈페이지 캡처>

상당수 언론, ‘국민의 알 권리’ 주장하기 전에 … 

아마 상당수 언론이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 방침’에 대해 융단폭격식 비판 기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나름 이해는 합니다만 솔직히 좀 불편합니다. 최소한의 균형감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과연 ‘공소장 비공개’와 관련해 기성 언론이 그런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가 –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한겨레가 같은날(6일) 사설에서 언급한 대목 - “국민의 알권리와 피의자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충돌할 수밖에 없어 어느 쪽이 우선한다고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는 대목에 전폭 공감합니다. 

언론의 ‘공소장 비공개’ 방침에 대한 비판도 일정 부분 이해하지만 ‘피의자 역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서 법무부 방침을 나름 이해한다고 했는데 그 ‘이해’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당수 언론이 쏟아내고 있는 보도를 보면 ‘검찰 공소장 공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어떤 것인지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오늘(8일) 조선일보가 1면에 보도한 기사 제목이 <“대통령의 선거중립 특별히 더 요구된다” 검찰 공소장에 적시>인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청와대 민정·정무수석실 등 비서실의 일곱 조직이 2018년 6월 울산시장 선거에서 송철호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와 수사에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청와대 전·현직 수석·비서관 등에 대한 공소장에서 ‘대통령이나 대통령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다른 공무원보다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성이 특별히 더 요구된다’고 했다. 대통령까지 언급하며 청와대가 불법적으로 선거와 수사에 개입했다고 한 것이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검찰의 공소장을 ‘사실 확인’으로 단정하는 언론들 … 과연 확인된 사실인가 

여러분. 이게 온당한 보도라고 보시나요? 저는 ‘어처구니 없는 보도’라고 생각합니다. ‘검찰 공소장’은 검찰이 수사를 통해 내린 결론이지 ‘사실’이나 ‘진실’이 아닙니다. ‘검찰 공소장’이 사실인지 여부는 재판을 통해 가려야 할 ‘반쪽 사실’이지 ‘확정된 진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언론이 검찰 공소장을 근거로 보도할 때 기본으로 삼아야 할 원칙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밝혀졌다’ ‘청와대가 불법적을 개입했다고 한 것’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습니다. ‘검찰 공소장=사실확인’으로 보도하고 있는 겁니다. 

관련해서 저는 ‘공소장 비공개’를 두고 벌어진 논란을 보며 핵심적인 문제가 가려져 있다고 봅니다.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를 두고 마치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을 벌이는 것처럼 많은 언론이 보도하고 있지만 사실 문제의 핵심은 ‘언론보도’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검찰의 공소장과 관련해 언론이 ‘최소한의 균형감’을 갖춘 상태에서 보도를 해왔다면 지금과 같은 논란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많은 언론은 ‘검찰 공소장=사실 확인’으로 단정 지어 보도를 해왔고 이에 따른 ‘피의자 권리’가 침해돼 온 측면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늘(8일) 조선일보 1면 기사가 단적인 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가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는데 이 대목은 ‘검찰은 청와대가 개입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로 바뀌어야 온당합니다. 검찰이 그렇게 결론을 내린 것일 뿐, 아직 ‘밝혀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내린 결론이 사실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선 아직 많은 ‘절차와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에 의해 ‘검찰의 결론’은 ‘사실’로 둔갑합니다.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 방침이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언론의 공소장 비공개’에 대한 비판을 제가 온전히 수긍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방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방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공소장 공개가 문제가 아니라 그걸 ‘사실’로 단정해서 보도하는 언론이 문제 

저는 공소장 공개 여부보다는 그걸 ‘사실’로 단정해서 보도하는 언론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공소장 공개 혹은 비공개’ 논란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법무부가 ‘공소장을 비공개로 하는 방침’을 세우더라도 아마 공소장은 언론을 통해 계속 공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론이 공소장을 사전에 입수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검찰 공소장 보도 관행’이 바뀌지 않으면 이번 논란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기성 언론이 이번 ‘공소장 비공개’ 논란을 보도하는 행태를 보니 ‘보도 관행’에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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