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 vs 이탄희’ 여의도행, 보수언론의 이상한 온도차

[신문읽기] 제목과 기사에서 ‘비판 강도’ 노골적으로 차별화…이중잣대

“박근혜 정부 시절 ‘사법부 독립’을 주장하며 ‘양승태 대법원’을 비판했던 판사들이 줄줄이 정치권으로 향하고 있다. 이른바 ‘사법 농단’을 폭로했던 판사들이 경쟁하듯 청와대와 여권(與圈)으로 향하자 법조계에선 ‘정치 검찰’ 욕하더니 ‘정치 판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조선일보 1월20일자 5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제목이 <‘양승태 사법부’ 공격 앞장선 이탄희, 민주당行>입니다. 

조선일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훼손 재판을 진행해온 장동혁 전 광주지법 부장판사”도 언급했지만, 기사의 상당 부분은 ‘양승태 대법원’을 비판했던 진보·개혁적 성향의 판사들을 ‘비난’하는데 할애했습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이탄희 전 판사 등 진보개혁 성향 민주당행 강도 높게 비난했던 조선일보 

사용한 언어, 인용한 문구 등을 보면 조선일보가 이들 전직 판사들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인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지 대략 알 수 있습니다. 한번 보실까요? 

“선배와 동료들을 ‘정치 판사’라고 비판했던 판사들의 정치권 러시를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도 ‘뻔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당내에서도 이렇게 막 데려오는 건 심하다, 여당이 오만해 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진중권 씨도 ‘판사가 정권의 애완견 노릇 하다 국회의원 되는 게 평범한 정의라고 한다’며 ‘공익 제보를 의원 자리랑 엿 바꿔 먹는 분을 인재라고 영입했으니, 지금 민주당 윤리 의식이 어떤 상태인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뻔뻔’ ‘정치 판사’ ‘정권의 애완견’ ‘엿 바꿔 먹는 분’ 등등. 자극적인 언어가 기사에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만큼 조선일보가 원칙을 중시하는 신문이라면 나름 이해할 대목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기준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가 하면 비판의 정도도 대상에 따라 달라집니다. 

다른 건 논외로 하고 ‘조선일보 출신 정치인’이 적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조선일보가 ‘이런 비난’을 이렇게 강도 높게 하는 게 온당한 태도인가 –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언론이 이탄희 전 판사를 비롯해 ‘양승태 대법원’ 비판에 앞장섰던 법조인들이 정치권으로 가는 것을 비판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구분없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비판을 하는 거라면 충분히 이해한다는 얘기입니다. 

너무 교과서적인 비판 아니냐-이런 반론도 제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는 경계해야 할 요소가 적지 않다고 봅니다. 원칙적이고 교과서적인 비판이라 해도 ‘귀담아들어야 할 부분’이 분명 있다는 얘기입니다. 

▲ 왼쪽부터 이탄희 전 판사와 김웅 전 부장검사 <사진제공=뉴시스>
▲ 왼쪽부터 이탄희 전 판사와 김웅 전 부장검사 <사진제공=뉴시스>

조선·중앙, 김웅 전 검사에 ‘온정적 잣대’ … 이탄희 전 판사 때와 판이하게 달라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보수언론의 이중잣대입니다. 이탄희 전 판사를 비롯한 진보개혁 성향 법조인에 대해서는 ‘거친 표현’을 인용하며 비난을 열을 올리더니 보수성향 법조인의 정치권행에 대해서는 매우 부드러운 논조의 기사를 내보냅니다. 

오늘(5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김웅 전 부장검사의 새로운보수당 영입 기사를 한번 볼까요? 이탄희 전 판사와는 ‘결’ 자체가 다릅니다. 

“김웅 전 부장은 지난달 더불어민주당과 범여 군소 정당의 합작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처리되자 이를 비판하며 사직했다. 그는 형사부 검사 시절 다룬 사건 이야기를 엮은 ‘검사내전’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이날 영입 행사에서 ‘친문(親文) 패권주의와 싸우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제가 권력·권세를 탐했다면 새보수당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조선일보 기사 제목은 <새보수 간 ‘검사내전’ 김웅… “사기 카르텔 때려잡겠다”>입니다. ‘검경 수사권 비판’ ‘검사내전’ ‘친문 패권주의와의 싸움이 과제’ 등의 키워드가 등장합니다. ‘뻔뻔’ ‘정치 판사’ ‘정권의 애완견’이라는 격한 표현이 등장했던 이탄희 전 판사 때와는 결도 다르고 비판의 날도 다릅니다. 

중앙일보도 비슷합니다. 길게 인용할 필요 없이 제목에서 얼마나 ‘결이 다른지’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중앙일보의 이탄희 전 판사 민주당행 기사 제목은 <사법농단 첫 제보 이탄희도 여당행…“법관의 정치화 우려”>(1월20일 12면)인 반면 김웅 전 검사 기사 제목은 <‘검사내전’ 김웅, 새보수당 입당 “최정점 사기꾼 때려잡겠다”>(2월5일 14면)입니다. 기사 내용도 무게중심과 방점이 전혀 다릅니다. 

중앙일보는 이탄희 전 판사 기사에선 “‘법관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법관의 정치성은 억제돼야 한다”는 법원 내부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반영했습니다. 하지만 김웅 전 검사 기사에선 ‘그간 행보의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기자 질문 하나가 전부입니다. 

비판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비판하려면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하라는 겁니다. 제목과 기사에서 ‘비판 강도’를 이런 식으로 차별화하는 게 이중잣대라는 건 요즘 어린이들도 아는 사실입니다.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중앙일보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중앙일보 홈페이지 캡처>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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