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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은 미용실의 ‘대목’이다. 오전 9시에 출근한 A씨는 12시간을 꼬박 일했다. 너무 바쁜 날이라 쉴 틈도 없었다. 따로 없는 점심시간 탓에 늘상 그렇듯 오후 6시가 되어서야 끼니를 간신히 때웠다. 그나마 20분도 안되게 앉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해 다리는 퉁퉁 부었다. 막노동도 이런 막노동이 따로 없었다.

A씨는 국내에만 50여개 매장이 있는 C프랜차이즈 업체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일한다. 경력이 15년이 넘는 고참급이다. A씨의 월급은 약 200만원. 평일에는 10시간 조금 넘게 일한다. 그나마 월 100만원도 안 되는 스태프(인턴)보다는 낫다. 디자이너는 ‘특수고용 근로자’로 업체와의 수익 배분 형태(인센티브)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A씨가 일하는 C 헤어샵은 ‘계약 조건’이 이상했다. 그냥 미용실과는 달리 프랜차이즈들은 정식 근로계약서가 아닌 자체 계약서를 썼다. 계약서에는 ‘결근․지각 벌금제’가 명시되어 있었다. A씨가 사정상 이틀 결근을 하자 원장은 20만원을 제하고 월급을 줬다. 게다가 휴무까지 반납됐다. 쉬는 건 쉬는 대로 반납하고 월급은 월급대로 까였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C 헤어샵은 복지는커녕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도 없었다. 가위에 손을 베여도, 화학약품 중독으로 손바닥이 쩍쩍 갈라져도 개인 사비로 치료를 해야 했다. 일을 하다 다쳐도 쉴 수 없다. 휴가를 내면 급여도 없고 벌금제로 월급이 깎이기 때문이다. 상처가 난 손에 물이 묻고 약품이 묻어나 눈물이 고일만큼 쓰라리지만 어쩔 수 없다.

▲ ⓒKBS 캡처

“업주들, 어떻게 하면 하인처럼 굴려먹을까 연구 중”

헤어디자이너 A씨는 “업주들은 어떻게 하인처럼 굴려먹을까 연구 중이고 어떡하면 편법으로 급여 세금을 더 뗄까 고민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신고하면 되지 않느냐고 남들은 말하지만 이 업계에서 그랬다간 소문과 멸시를 받기 때문에 두려움에 신고조차 못 한다”고 호소했다.

A씨처럼 헤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3년 정도의 보조인턴, 이른바 스태프 생활을 거쳐야 한다. 이들은 더 열악하다. C 업체에서는 3년 정도가 되어야 월 평균 100만원을 받아간다고 한다. 디자이너와 똑같이 근무하고 잡다한 일은 더 많이 한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이유는 헤어 디자이너가 되면 조금은 다를 거라는 기대 때문.

A씨의 말에 따르면 디자이너나 스태프나 결국 업체의 고용인으로 나아지는 건 전혀 없다고 한다. 급여의 차이는 그냥 경력에 따른 수당일 뿐이라는 것이다.

▲ 청년유니온이 2012년 10월부터 2013녀 2월까지 전국 미용실 198개를 대상으로 자체 전화 조사한 브랜드별 평균 통계 ⓒ청년유니온

최저임금도 못 받는 스태프는 휴무도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운영하는 교육 실습에 반납하고 있다. 업체만의 독특한 ‘계약 조건’이다. 원장은 스태프에게도 당연히 ‘벌금제’를 운영한다. 대기업의 ‘갑의 횡포’에 이어 미용실에도 또 다른 ‘갑’이 존재하고 있었다.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지난 2월 실시한 미용실 스태프 근로조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종사자들의 평균 시급은 2,971원에 주당 평균 64.9시간에 달했다. 미용업계의 최저임금 위반 비율은 100%였다. 또, 5개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예상 체불임금액은 534억 4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장시간 서서 일하는 미용업계 종사자들은 하지정맥류, 피부질환, 허리디스크 등 업무 상 재해를 빈번하게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제대로 된 산업재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자비 부담으로 치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산업재해에 대해 치료·요양비·휴업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은 사업주는 2년 이하의 징역,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당시 청년유니온은 이 같은 실태조사를 근거로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임금을 체불한 프랜차이즈 본사를 검찰에 고발하고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 청년유니온 김병철 조직팀장은 ‘go발뉴스’에 “검찰 고발이 장기전으로 들어갈 것 같다”며 “미용실들이 산업화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을 하고 있던 스태프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불가능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디자이너, 스태프는 법적 근로 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고 노동하는 형태다. 사실상 현실을 보자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무방한 노동 형태를 띠고 있다”며 “디자이너 위에 또 관리자(원장)가 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착취 구조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 ⓒKBS 캡처

지난 14일 고용노동부는 미용실에 대한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오는 20일부터 수시감독을 실시할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국내 7대 브랜드(박승철·리안·이철·박준·이가자·미랑컬·준오)에 대해서만 감독할 것을 발표한데다 노동부의 실태조사가 현실과는 다른 최저임금·노동시간을 보여 제대로 된 조사였나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관련기사 보러가기)

노동력 착취, 임금 체불을 일삼는 또 다른 ‘갑’에 대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강자’ 중심의 사회를 구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go발뉴스’에 “일을 배우러 오는 것을 업주들이 약점으로 삼고 활용해 자기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처우로 갑질을 하는 것”이라며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공익을 대변하는 장치가 취약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강자가 설치는 일들이 방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최근 남양유업 사태를 거론하며 대기업들이 불공정 거래를 해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대로 문제 삼지 못해 약자들의 대변이 안 되고 있어,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 시킨다는 게 규범처럼 됐다고 말했다. 이익 창출을 위해 약자를 ‘골탕’ 먹이는 횡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교수는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제대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민주화 거론되는 것이 불평등한 질서에 많은 사람들이 종처럼 지내고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비민주적인 시장경제 실상을 바로 세우려면 정부의 역할이 커야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기업들이 강자로써 혜택을 누리는 위치에 있다 보니 개혁을 하지 않고 이런 일들이 방치가 돼서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며 “정부는 시장에 분명한 시그널을 주어야 한다. 한국시장에서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 이런 인식을 주면 그것이 곧 기업에게 학습처럼 전파되며 물갈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제도들과 더불어 시장의 의지를 보일 수 있는 가시적 조치가 정부의 정책에서 비롯돼야 한다”며 “결국 미용업계 문제도 ‘갑을 관계’에 대한 정부의 시그널이 강하게 시장에 들어갈 때 나아질 수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