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은행 번호표 받듯 줄서 들어가”…“풀기자단 외 질문하면 찍힌다”
검찰과 출입기자단의 유착관계와 관련 기자가 자사 회장 사건을 차장 검사에게 청탁하는 등 사건 브로커 역할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MBC ‘PD수첩’은 3일 ‘검찰 기자단’편에서 검찰과 언론사 출입기자들의 유착 관계와 카르텔, 검찰 기자단의 폐쇄적인 운영 방식 등의 문제를 집중조명했다.
2015년 한 언론사 회장과 지인 2명이 배임혐의로 고발됐다. 언론사 회장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지인 2명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자 해당 언론사의 사회부장은 회장의 지인 2명도 불기소 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1차장 검사를 찾아가 청탁하라고 지시했다.
A 검찰출입기자는 “(검찰 출입기자) 팀장이 1차장검사나 3차장검사 찾아가서 얘기를 하면 돼. 네가 직접 가서 얘기해”이러더라”며 “며칠 후 ○○○ 검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A 기자는 “‘잘 처리 됐다. 나머지 두 사람도 불기소하는 거로 했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PD수첩 제작진이 ‘기자가 직접 브로커 역할을 했다는 얘기인가’라고 묻자 A 기자는 “그렇다. 내가 한 것이다”고 인정했다.
사건 청탁을 하면 검찰이 들어주는 비율에 대해 A 기자는 “2/3는 들어준다. 적어도 60% 이상은 들어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 기자는 “해보니까 간단한 건데 버릇이 된다”며 “나를 영입하는 사람들이 저에게 똑같은 역할을 요구한다”고 털어놨다.
C 전 출입기자는 “검사에게 빚을 지게 되는 것”이라며 “나중에 (검사의) 필요가 있을 때 (기자가) 요구를 안 들어줄 수 없는 선을 넘는 관계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양승태 사법농단 수사’ 당시 검찰을 출입했던 MBC 임현주 전 검찰출입기자는 매일 오후 3~4시경이 되면 서울중앙지검 차장 검사실 앞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했다.
임 기자는 “은행에 번호표를 하나씩 뽑듯이 기자들이 줄을 서서 방으로 들어갔다”며 “이후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됐다”고 말했다.
임 기자는 “포털 메인에 저녁 6시 정도 되면 똑같은 내용의 기사가 뜬다”면서 “매체 이름은 다 다르고 기사 제목은 똑같고 앞에는 다 단독이 붙어 있었다”고 했다.
임 기자는 “검찰이 언론을 경주마처럼 다룬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건을 복사해서 준다든지 전화로 불러준다든지”라며 조서를 보면서 그 내용을 쭉 불러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임 기자는 “그런데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을 불러주는 것은 사실상 공수처가 생기면 처벌대상 1호”라고 지적했다.
이같이 조서 내용을 실시간으로 불러주는 등 피의내용 유출이 비일비재했지만 기자가 검찰의 공소장 내용을 요약해 보도하자 출입기자단은 징계를 했다. 또 기자단의 양해를 받지 않는 질문은 철저히 막았다.
2016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당시 경향신문은 검찰의 공소장을 요약 발췌해 분석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해당 기사로 경향신문은 기자단에게 ‘3개월간 기자실 출입금지와 자료제공 일체 불가’라는 징계를 받았다. 출입처에서 공소장 전문을 공개하지 말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향신문측이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이후에는 피의사실 공표죄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기자단의 선처를 부탁했다.
그러자 기자단 간사는 “팀장님들의 이의제기가 없으셔서 만장일치로 가석방을 결정하겠다”며 “경향법조팀도 가석방이니만큼 엠바고 파기 등에 각별히 유의해주시기 바란다”고 문자를 보냈다.
포토라인 취재나 검찰 브리핑 때 기자단의 양해를 구하지 않는 취재진의 질문은 철저히 배척됐다.
‘민중의 소리’ 강경훈 검찰취재 팀장은 “기자단이 구성한 풀단, 마이크를 들고 있는 분들만 피의자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기자는 “기자단이 아닌 사람들은 뒤에서 보는 것이다. 질문할 수 없다. 찍히니까”라며 “감히 불문율을 깨고 마이크를 들이대긴 힘들다”고 했다.
MBC 김재영 PD는 지난 9월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가 전현직 검찰 고위인사들을 고발한 사건과 관련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했을 당시 순서를 기다렸다가 마지막에 질문을 했다. 그러자 검찰기자단이 인터뷰 후 김 PD에게 ‘왜 미리 우리에게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다.
지난 6월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 기소 관련 김범기 서울남부지방검찰청 2차장 검사가 브리핑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김재영 PD가 질문을 하자 김범기 검사는 답변을 한 뒤 “그런데 처음 보는데 소속이 어디냐”고 물었다. 이후 기자단은 PD가 질문했다는 이유로 MBC 기자에게 엄중 경고를 내렸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검찰청의 기자실은 국민 재산이고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인데 어떤 권한도 없는 집단이 와서 ‘너는 여기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어떤 사람은 아예 출입을 못 해, 어떤 사람은 아예 취재를 할 수 없어’ 한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그게 한국에서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