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연재] 내가 겪은 23년, 삼성을 고발한다(2)

프롤로그 - 삼성안에 숨겨진 내밀하고 기묘한 일들

냉장고 안에도 내 약이 없자 관리자들은 나를 사무실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나는 일어나서 작업복을 갈아입기 위해 갱의실(탈의실)로 걸어갔다. 그들은 그곳까지 따라와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솔직히 나는 폭력적으로 나를 쫓아내려는 회사의 행위를 어떻게든 동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기회만 된다면 동료들에게 달려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덩치 좋은 세 명의 경비원과 인사담당이 내 1미터 앞에서 방어막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중앙문을 향해 걸어갈 때도 계속 따라왔다. 내가 다른 곳으로 샐까 싶어 1미터 간격도 안 되게 바짝 붙은 채.

멀리 R3, R4 건물 옆에는 이제 막 짓기 시작한 R5 건물의 앙상한 뼈대가 보였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낡은 건물들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그 당시 백색가전과 더불어 IBM이나 제록스 등의 하청을 받아 OEM(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품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방식) 제품을 생산하던 회사는 이제는 핸드폰, 반도체 등 최첨단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성장했다. 삼성은 물건을 만드는 제조 분야보다는 R&D 기술개발 중심으로 변해가는 중이었고, 삼성의 많은 제품들은 헝가리, 슬로바키아,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중국, 멕시코, 러시아 등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23년 동안 내가 일했던 VD(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로 가기 위해 이 길을 무수히도 걸어 다녔다. 나는 제조그룹 라인파트에서 9년 가까이 일하고 제조그룹 간접 부서로 가서 8년동안 PRO-3M 생산향상 운동을 벌였다. 그 후 제조기술그룹으로 전배(전환배치)된 뒤 거기서 또 6년을 일했다. 아침이면 이 길을 걸어가서 TV를 만들고 모니터를 만들었다. 밤이 되면 또 이 길을 걸어 나와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23년을 하고 나니 내 청춘이 다 지나가버렸다. 회사가 성장하고 성장하여 거인이 되는 동안 나는 거의 지각 한 번 안 했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지금은 거인이 된 회사에서 쫓겨나고 있었다. 내가 키워놓은 회사가 나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자신의 회사에서 나올 때면 박수를 받고 환송을 받는 것이 정상 아닌가. 환송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요즘 삼성에서 환송받으며 회사를 나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나는 지독히 외롭게 중앙문을 걸어 나왔다. 나를 따라오던 인사담당과 경비원들은 중앙문에서 50미터를 더 나온 뒤에야 발길을 멈췄고, 내가 사라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해고된 지 2년이 넘은 지금도 가끔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현실과 꿈속에서 헷갈릴 때가 있다. 그만큼 회사 일은 내 몸에 깊이 박혀 하나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아침이면 ‘회사에 가야겠구나’ 하고 열심히 출근 준비를 하다가도 ‘아, 내가 해고되었구나’ 하며 현실로 되돌아오곤 했다.

아내는 17년 동안 쓰던 냉장고를 내가 해고된 뒤 바꿨다. 삼성에서 산 것이었다. 고장이 나서 바꿔야 하긴 했지만 ‘삼성’이란 단어가 아내에게는 깊은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아내는 핸드폰도 다른 회사 제품으로 바꿨다. 어떻게 보면 나에 대한 배려 같기도 했다. 삼성으로 인해 병을 얻을 정도로 큰 아픔을 당했으니 아내는 그 근원을 없애주려 한 것이다. 나도 내 노트북에 있는 삼성이란 글자를 푸른색 테이프로 가려놓았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상처가 치유되어 내가 삼성을 깊이 사랑한 그만큼 그 글자와 다시 마주하는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삼성을 상대로 해고 무효소송, 산재인정소송, 협의위원면직 박탈 무효 소송을 냈다. 미약한 내가 삼성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나 혼자 싸우는 소송에 삼성은 광장, 태평양 등 대형 로펌과 법무팀을 동원했고, 판결을 내리는 법관도 삼성 편이었다. 나 홀로 싸울 때 회사 측에서는 5~8명이 몰려와 나를 공격해댔다. 관직에서 물러난 몇몇 법관들이 삼성 법무팀으로 전직해갈 만큼 삼성은 법 위에 있는데 어떻게 일개 개인인 내가 이길 수 있겠는가. 어떻게 진실이 밝혀지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글이라도 남김으로써 성공에 가려진 삼성의 이면에 있는 진실들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다. 이미지가 아닌 현실의 삼성 이야기들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고,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삼성을, 23년 동안 삼성 안에서 내가 직접 보고 겪었던 이야기들을 말하고 싶었다. 그것을 통해 내 절망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되기를 바랐다.

사람은 큰 것을 잃으면 큰 것을 얻는다고 했던가. 삼성에서 겪은 고난은 내게 큰 것을 얻게 해주었다. 좋은 회사를 꿈꿀 수 있는 상상력이 바로 그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일하는 직장에서는 자유롭고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회사도 잘된다. 나는 삼성의 동료들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 삼성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회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나는 이 책에서 삼성의 재벌체제는 물론, 이건희 개인의 황제경영이 끼치는 폐해까지 세세히 쓸 것이다. 그것은 삼성 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다. 이건희 일가의 황제경영은 국민의 권리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삼성의 문제는 국민의 권리와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네덜란드에 출장 갔을 때 나와 함께 일하던 외국인 동료가 ‘삼성에는 노조가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없다고 대답하니 그는 있는 줄 알았다고 하며, 자신들은 노조가 없는 기업의 제품은 안 쓴다고 말했다. 제품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존재이며, 그 제품 안에는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권리까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무 제품이나 함부로 쓰지 않고 정당하게 만든 제품만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세상은 냉혈적인 현실 논리가 지배하기 때문에 상상이 끼어들 틈이 없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이 그런 논리로만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믿기에 나는 바보처럼 꿈을 꾼다. 삼성에 나를 지지하는 동료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 한, 나는 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제1부 - 현실의 삼성]이 다음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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