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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연재] 내가 겪은 23년, 삼성을 고발한다(1)프롤로그 - 이미지가 아닌 현실의 삼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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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태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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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28  10:37:36
수정 2013.05.19  10: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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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삶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상황이 가장 현실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2010년 11월 26일,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오후 1시 점심 휴식을 막 끝내고 현장 라인으로 돌아오는데 과장이 나를 불렀다. 처음에는 자신의 사무실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뭔가 지시를 받고서는 현장과 동떨어진 교육장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얼굴을 에이는 날카로운 찬바람과 투명하게 빛나는 밝은 햇빛이 창문을 통해 동시에 들어왔다. 얼음 같은 추위와 투명한 햇빛은 선이 명확하고 길쭉한 빛과 어둠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현실의 내 삶처럼 약간 환상적이면서도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내 주위에는 과장, 부장을 비롯해 덩치 좋은 관리자와 인사 차장 등 몇 명이 위압적으로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내 앞에 해고통지서를 던지며 차갑게 말했다.

“이 시간부로 당신은 이 회사 직원이 아니다.”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얼음 같은 그 말투가 내 마음을 강하게 파고들었다. 비록 관리자들이긴 했지만 입사 때부터 20년을 함께 일해온 동료들이었다. 함께 놀러도 가고 술도 한잔씩 기울이는 사이였고, 관리자들이라 다른 동료들처럼 긴밀한 사이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삼성전자 안에서 삶의 많은 부분을 함께 나눠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말투는 이미 동료가 아닌, 국정원 요원들에게서나 들을 만한 것이었다. 때로는 인간 사이에 악령이 깃드는 순간이 있다는데 그들과 나 사이가 그랬다. 묘한 슬픔이 일었다.

“사원증 내놔!”

전혀 예기치 않게 닥친 상황이라 이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힘이 센 관리자들은 내 몸을 뒤져 사원증을 강제로 빼앗아 갔다. 부장 앞에 놓인 내 사원증에는 머리숱이 제법 많은, 젊은 내가 웃고 있었다.

‘사원번호 87031467.’

파란빛을 띠고 있는 사원증은 오랜 세월 손을 타서 귀퉁이가 헤져 있었다. 아침마다 나는 그 사원증으로 검색대를 통과해 회사에 들어오곤 했다. 사원증은 IC카드여서 내가 움직일 때마다 동선이 체크되는 감시 장치이기도 했지만, 회사 내에서 내 안전성과 신분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물건이기도 했다.

사원증이 없으면 아예 회사를 들어올 수 없을 만큼 회사 출입은 엄격히 관리되었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다니는 하청업체 사원도 사원증만큼은 발급받을 수 없었다. 그들이 발급받을 수 있는 것은 ‘1일 출입증’(한 달 방문일 수가 12일을 넘을 경우에는 장기 출입증)이 전부였다. 이제 내 모든 것이 무장해제되었다. 이 회사에 내가 있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은 23년 동안 익숙하게 만졌던 TV, 모니터, 기계, 홈시어터 등과도 접촉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른 것은 두렵지 않았으나 마음의 준비도 없이 이렇게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아무리 강제로 쫓겨나는 상황이라 해도 그동안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인사만큼은 하고 떠나고 싶었다. 그들은 그 단순한 인간적인 청조차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쇠처럼 강한 수천 개의 벽돌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회사와 나 사이에 길고 높은 장벽을 세운 것 같았다. 그것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차갑고 단단한 장벽이자 다시는 이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없게 하겠다는 배제의 장벽이었다.

‘아, 내가 그동안 다녔던 회사가 이토록 차갑고 잔인한 곳이었구나.’

나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또 하나의 강을 건너고 있었다. 관리자들과 인사담당, 경비원들은 큰 충격으로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건물 밖으로 내쫓으려 했다.

휴게실 냉장고에 있던 약봉지가 생각났다. 그동안 나는 회사와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몸이 많이 나빠졌다. 내 산재신청을 맡아주었던 권동희 노무사가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가리켜 ‘전쟁을 겪은 사람이 받은 것과 비슷하다’고 했을 정도로 내 몸과 정신은 힘든 상태였다. 나는 나를 끌어내려는 그들에게 잠시 냉장고에 가서 약을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내가 있던 곳에서 냉장고까지는 2분이면 충분히 갔다 올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부장과 과장 등 관리자들과 인사담당자, 경비원들은 그 작은 부탁마저 거절했다. 내가 현장에 있는 동료들에게 해고 사실을 알릴까 두려웠던 것이다. 대신 그들은 냉장고 안에 있던 온갖 물건들을 꺼내와 유리 자동문 앞에 내던졌다. 그 유리문은 현장 동료들에게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는데, 내가 그들에게 가지 못하도록 그 앞에 물건들을 던져버린 것이다. 사원들이 먹으려고 넣어두었던 빵, 우유, 반찬통들은 물론 여사원들이 퇴근 후 집에 가서 아기에게 먹이려고 짜놓았던 모유통과 한약재들까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 사이로 내 약봉지는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 들어가서 동료들을 만나지 않겠다, 그러니 나를 들여보내달라, 다시 부탁했다. 그 약은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가서 냉장고 통째로 들고 와!”

부장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설마 800리터가 넘는 대형 냉장고를 들고 오기야 하겠는가. 정말 그렇게까지 하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했다. 젊은 관리자 네댓 명이서 문이 두 개 달린 홈바 냉장고를 끙끙거리며 떠메고 오더니 조금 전 내던진 물건들 위에 세워놓았다. 직원들의 간식과 약봉지가 찌그러지고 터진 캔 음료들에서는 액체가 흘러나왔다. 상상이 가는가. 나를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냉장고를 직접 들고 온 것이다. 직원들의 물건을 짓밟고 서 있는 대형 냉장고를 보니 이게 현실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내가 삼성에서 겪은 많은 일들처럼, 찌그러진 물건들과 코끼리 같은 대형 냉장고 그리고 그것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관리자들의 얼굴이 비현실적으로 춤을 춰댔다. 기괴함을 넘어 엽기적이기까지 했던 그 광경은 삼성 안에서 내가 겪었던 비현실적인 모습의 결정판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불러 취조하는 하얀 방이 있는 회사. 하루 아침이면 동료들을 사라지게 하는 회사, 많은 여직원들이 유산을 해도 생산량 뽑는 것을 중요시하는 회사. 살빼기를 강요하며 돈까지 걷는 회사. 직원들을 위해 뽑은 협의위원임에도 회사 편을 들지 않는다고 쫓아내는 회사, 화장실에 갈 때도 부서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회사. 아침 6시 반, 빵을 먹으면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전담 감시자가 있는 회사……. 그동안 삼성에서 얼마나 많은 기괴한 모습들을 경험했던가.

냉장고를 통째로 떠메고 오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처음과 끝’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누군가를 깊이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와 헤어졌을 때를 보라’고 하셨다. 아버지 말씀대로 나는 처음과 끝을 보며 사람을 판단하곤 했다. 삼성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삼성과의 첫 만남은 환희에 가까울 정도로 기쁨이었지만 마지막 모습은 나를 당황하게 할 정도로 그들이 선전해온 ‘글로벌 삼성’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삼성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광고에 나오는 김연아의 삼성만을 생각했다. 김연아가 삼성 제품을 선전하면 사람들은 그 이미지만으로 삼성을 떠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하나의 데커레이션decoration(장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23년 동안 겪은 삼성은 모든 게 뒤엉켜 있는 현실의 삼성, 싱그러움과 아름다움보다는 눈물과 고통이 더 많은 삼성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여느 평범한 아이들처럼 TV를 좋아했다. 그토록 재미나는 많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전해주는 그 기계가 나는 정말 신기했다. 지금처럼 컴퓨터나 닌텐도 같은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그 시절에 TV는 우리의 최고 놀잇감이었다. 튼튼한 다리 네 개 위에 놓인 흑백 화면은 언제나 나를 유혹했다. 하지만 동네에 TV는 한두 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마음껏 TV를 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는 TV가 있는 집의 일을 대신 해주고 그 대가로 TV를 보곤 했다. 마당에 널려 있는 보리나 벼 등을 가마니에 담아주기도 하고, 콩을 타작할 때 흙 속에 박혀 있는 콩도 주워줬으며, 추수하고 난 다음에 그 집 논의 벼이삭들을 주워주기도 했다.

그 당시 유행했던 TV 프로그램은 <타잔>과 <마징가 제트>였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넋을 놓은 채 보곤 했다. 줄을 탄 타잔이 “워~워워~~워워워워” 소리 지르며 정글 속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면 우리도 함께 정글을 누비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또 마징가 제트가 로봇주먹으로 나쁜 악당을 때려 부수면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그러다가 너무 시끄럽게 하는 날에는 그 집 주인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지만.

그렇게 TV를 좋아했던 내가 1987년, 친척의 소개로 TV를 만드는 회사인 삼성전자에 들어간 것이다. 그날은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모집 인원이 300명이었는데 지원자는 무려 1,000여 명에 달했으니, 그 300명에 내가 든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내 마음은 여기저기로 날아다녔다. 경사가 난 것이다. 무엇보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경제적인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힘들게 농사짓는 부모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내 일상이었다. 지금도 시골에 계신 어머니는 삼성전자가 엄청나게 좋은 회사라고 믿으신다. 당신의 아들이 2분 거리에 있는 냉장고 안의 약봉지도 자유롭게 꺼낼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또 그 좋은 회사에서 해고당했다는 것을 어머니는 모르시는 것이다. 어머니께는 그런 삼성의 모습들을 말씀드리고 싶지 않았다. 팔순이 다 된 노모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가슴에 좋은 회사로 남아 있는 삼성의 이미지를 깨고 싶지 않았다. 슬프고 모순적인 감정이지만 내가 일한 삼성은 이건희 일가의 삼성이기도 하지만 몸 바쳐 일한 우리들의 삼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음편에 계속)

※ 외부기고는 ‘go발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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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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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hrwk 2013-05-27 04:29:49

    전설의 팀장님, 감정을 극적으로 드러낸 표현인데
    그게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네요.
    글구 글은 전체를 읽고 파악해야죠...신고 | 삭제

    • 전설의팀장 2013-05-19 21:42:56

      가슴 아픈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전해주세요!

      " 투명한 햇빛은 선이 명확하고 길쭉한 빛과 어둠을 만들어냈고"
      "관리자들의 얼굴이 비현실적으로 춤을 춰댔다"

      소설 쓰십니까?
      칼날위에 섰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사람이
      저런 순간에 참...

      괜히 글만 길어지고 읽다 포기하게 만들어 뭐하자는겁니까?신고 | 삭제

      • 김주원 2013-05-02 09:41:00

        냉장고 들고온 관리자들 집에서 지자식들한테는 정의롭게 살라고 가르치겟지... 썩은나라다.신고 | 삭제

        • gw 2013-04-29 09:26:03

          아. 진짜 기대됩니다. 연재, 끝나지 않고 꾸준히 지속되어 많은 사람들이 삼성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게 되었음 좋겠네요!!신고 | 삭제

          • tlals 2013-04-28 20:46:33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네요.신고 | 삭제

            • 좋은생각 2013-04-28 12:23:53

              좋은글 기대 됩니다.신고 | 삭제

              • 아메리카노 2013-04-28 12:22:18

                재미있을 것 같은 연재입니다 기대되네요!신고 | 삭제

                • 고발화이팅 2013-04-28 11:35:16

                  정말 기대되는 글입니다. 전문 르뽀작가의 필치가 더해져서 더욱 리얼한 느낌이구요. 삼성의 맨얼굴을 목격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거 같아요. 책도 대~박 났으면 좋겠습니다. 고발뉴스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연재.. 고맙습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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