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신공항 ‘10년 전쟁’의 허무한 종말과 민심 폭발

‘신공항 사기극’, 박근혜의 이명박 따라 하기

박근혜의 이명박 따라 하기
영남신공항 TK·PK ‘10년 전쟁’의 허무한 종말

영남신공항을 가덕도에 세울 것인지 밀양에 건설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부산이 대구·경북을 상대로 이판사판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권 시기 때였다. 이명박은 2006년 12월 영남신공항 건설을 ‘30대 국책사업’으로 정하고 추진하다가 대구·경북과 부산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자 2011년 4월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환경 훼손과 경제성 미흡’을 이유로 ‘백지화’를 선언한 뒤 사과했다.

박근혜는 2012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때 공약에 신공항사업을 포함시킨 뒤 2013년 국토교통부를 통해 신공항사업 재추진을 발표했다. 이유는 “수요가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10조원이라는 거액이 투입될 뿐 아니라 대형 국제공항에서 파생될 경제적 수입 때문에 부산과 대구·경북·경남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경쟁을 벌인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부산 시민 대다수와 지역구 의원들은 신공항이 밀양으로 가버리면 박근혜 정권 배제투쟁이라도 벌일 듯한 기세였다. 그런데 6월 21일 정부가 프랑스 전문업체를 통해 발표시킨 결과는 ‘김해공항 확장’이었다. 7년 동안 전쟁이나 다름없는 경쟁을 벌여온 양쪽 진영 사람들은 헛심만 쓰다가 제풀에 넘어진 꼴이 되었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 중대한 사안에 대해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약속을 뒤엎는 방식은 이명박과 판박이였지만 어떤 형식으로건 사과도 하지 않은 것이 박근혜의 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제 국민들은 이런 정부가 하는 일들 가운데 무엇을 믿어야 할까? 부산과 대구·경북·경남의 당사자들은 그 긴 세월동안 물적·심적으로 쏟아 부은 비용과 노력에 대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도 청구하지 못한 채 냉가슴만 쓸어내리게 되었을 테니 참으로 안쓰러운 일이다.

 

‘신공항 사기극’과 영남 민심의 폭발
‘대구의 조선일보’라는 매일신문, 1면을 백지로 발행

대구·경북·경남과 부산이 맞서 치열하게 유치 경쟁을 벌였던 영남신공항이 기존의 김해공항 확장으로 발표되자 박근혜에 대한 분노로 TK와 PK의 민심이 폭발해버렸다. 두 군데 가운데 한 곳으로 결정했더라면 다른 한 곳에서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겠지만, ‘김해공항 확장’을 ‘김해신공항’이라고 포장하는 정권의 작태에 대한 격렬한 비판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수준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23일 발표한 조사결과를 보면 박근혜에 대한 국정 수행 지지도는 지난주에 비해 2.3% 떨어진 35.1%이지만, TK에서는 무려 8.3%포인트, PK에서는 5.1%포인트나 곤두박질 쳤다. TK에서는 긍정평가가 43.9%, 부정평가가 51.6%이니 이제 그 지역은 ‘박근혜의 정치적 아성’이라고 부를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PK도 긍정평가가 38.7%, 부정평가가 55.6%로 박근혜에 대한 거부감이 TK보다 훨씬 높다.

박근혜의 정치적 아성 가운데서도 핵심을 이루던 대구에서 일어난 한 사건은 박근혜 자신은 물론이고 새누리당의 ‘친박’이 소름이 돋아 오싹 떨게 만들었을 것이다. ‘대구의 조선일보’라는 매일신문이 신공항 백지화에 반발해 6월 22일자 1면 전체를 백지로 발행한 것이 바로 그 사건이다. 그 신문은 1면 한가운데에 ‘신공항 백지화, 정부는 지방을 버렸다’라는 단 한 문장만 실었다. 매일신문 23일자 사설 내용은 박근혜에 대한 융단폭격이었다. 청와대가 22일 “(대통령의) 공약 파기가 아니다. 약속을 지켰다고 본다”고 주장한 데 대해 사설은 “궤변 정도가 아니라, 정말 후안무치한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사설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영남권 신공항 무산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도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거나 말장난을 하는 것보다 국민에게 허심탄회하게 다가서는 것이 그나마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나는 이번에 영남에서 박근혜에 대한 지지율이 폭락한 것이 우발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특정 지역의 압도적 지지에 기대어 공약을 멋대로 깨트리는 모든 정치인들에 대한 준엄한 경고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자유언론실천재단(http://www.kopf.kr)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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