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선생님, 헬기 추락사고 희생자에 손편지

가거도 초교 교사 “어린 아이 한 명 살리기 위한 숭고한 사랑, 본 받겠다”

지난 13일 아픈 제자를 이송하러 왔던 헬기가 추락하자, 제자와 함께 해군함정을 타고 240km 떨어진 목포의 병원까지 갔던 교사가 헬기사고 희생자를 위로하는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주인공은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박준현 씨. 그는 18일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헬기추락 사고로 아픔을 겪은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글을 올렸다.

편지에 따르면 박 교사는 사고 당시 학교에서 야근 중이었다. 복통을 호소하던 제자가 “헬기를 타고 잘 갔겠지”라고 생각하며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자를 이송하려 왔던 헬기가 이송 중 추락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박 교사는 한 걸음에 방파제로 뛰어나왔다.

오후 11시 15분. 사고의 충격을 뒤로 한 채 그는 가거도항에 도착한 해군 함문식함에 제자와 함께 올라탔다. 배는 다음날 새벽 2시 30분까지 목포에 도착했다. 제자의 아버지는 다른 섬에 있어 동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런 준비가 없이 나선 뱃길이었다. 제자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초등학교 교사 박준현씨가 쓴 손편지. 박씨의 편지는 18일 청와대, 국민안전처 자유게시판에 올랐다. ©트위터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초등학교 교사 박준현씨가 쓴 손편지. 박씨의 편지는 18일 청와대, 국민안전처 자유게시판에 올랐다. ©트위터
박 교사는 이날 실종자 수색에 애쓰는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교실에서 눈물로 편지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복통을 호소하는 어린 제자와 함께 군함으로 이동하면서 거친 파도와 싸우며 현장을 수습하고 계시는 많은 해양경찰대원과 해군을 보았다”며 “고생하시는 분들 덕분에 아이는 무사히 병원으로 이송돼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적었다.

이어 “마을 높은 곳에 있는 교실에서 바라보며 지금도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 해경, 119, 해군 등 수많은 분의 노고가 짙은 해무 사이로 시야에 들어 온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박씨의 편지에는 가거도 어린이들의 사연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지역적인 특성으로 유난히 해양경찰과 아이들의 사연이 많다고 소개했다.

그는 “응급헬기에 탔던 부모님의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한 아이, 어머니가 경비정에서 출산해 배가 고향인 아이 등 멀고도 아득한 섬마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과 사연이 곳곳에 묻어 있다”며 “이곳 초등학교에는 해경이 꿈인 아이도 자라고 있다”고 밝혔다.

전교생 10명의 가거도 초등학교에는 해양경찰이 꿈인 아이도 있다고도 전했다. 현재 4학년인 남해우리군은 지난 2005년 11월 목포해경 207함(해우리)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은혜에 보답하고자 배 이름을 따 지었다고 한다.

박 교사는 편지 말미에 “숭고한 희생을 곁에서 겪고 보니 지금도 제자 사랑에 더 많은 열정을 쏟아 붓지 못하는 저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게 여겨진다”면서 “어린 아이 한 명을 살리기 위한 숭고한 열정. 본받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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