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이적 표현물 아닌데도 요구…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군내 사이버 관련 부대들이 민간인의 게시물에 삭제를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며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18일 <이데일리>에 따르면 군이 온라인상의 친북·이적 표현물 감시를 위해 설립한 군내 사이버 관련 부대들이 군 관련 부정적 내용이 담긴 민간인 게시물까지 검열, 삭제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대들은 사이버기강 통합관리 훈령 중 ‘군 기강 저해정보 유통통제’ 조항을 근거로 사이트 운영자 등에게 게시물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데일리>에 따르면 김씨(24·여)는 남자친구의 가족으로부터 작년 12월 전화를 받았다. 육군의 한 부대에서 “군에 대한 불신이 우려되니 김씨의 게시물을 삭제해달라”고 가족에게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김씨가 군복무 중 자살한 남자친구의 사연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 문제였다.
또한,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회원은 지난해 10월 ‘군대 내 왕따 문제’에 대한 의견을 올렸다가 운영자로부터 쪽지를 받았다. ‘육군 사이버수사대가 대군 불신을 이유로 게시글 삭제를 요청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군이 삭제 요청을 한 내용은 대부분 전역자들이 경험한 구타·가혹행위 등이다. 문제는 이 훈령이 민간인에 대해서는 법적인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이트 운영자나 이용자들은 ‘국방부 훈령 위반’ 엄포에 게시글을 삭제 조치하고 있다.
‘go발뉴스’ 취재 결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군대 얘기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 등의 내용의 글들이 게시됐다.
지난해 말에 작성된 이 게시글에는 “운영자에게 ‘「국방부 훈령 제1197조 국방 사이버기강 통합관리 훈령 제 11조 (군 기강 저해정보) 유통 통제」에 해당, 군 기강 문란성 게시글로 판단되며, 대군불신이 우려되므로 권리침해신고를 요청하오니 삭제 등 적극적인 조치 부탁드립니다’는 쪽지가 왔다”며 “한 달 전에 쓴 글이었다. 무섭다”라고 글을 올렸다.
이 커뮤니티에는 지난달에도 “국방부에서 쪽지가 왔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된 바 있다. 게시된 글에 따르면, 삭제된 게시글의 제목은 “군대 있을 때...”였다.
작성자는 “조심해야겠다. 다 모니터링 하나보다”며 국방부 사이버수사대가 보낸 쪽지 내용을 함께 올렸다.
이 글을 본 네티즌들은 “솔직히 군에서 저런 짓 하는 자체가 이 사회가 아직까지 감시를 받고 살아야 된다는 그런 사회라는 것. 기무대가 민간인 사찰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무슨 중요한 군사 기밀을 써 놓은 것도 아닐텐데”(울**), “내 싸이 기무에서 뒤져서 연락 왔던데”(제이**), “뭐가 무서울 게 있나. 문 잠그고 골프연습 중인 군인들부터 기무 들어가야 함”(탐**), “다른 사이트도 이런 거 와요. 지워달라고” (냥이******), “몇몇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군 관련 글을 쓰지 말라고도 하더라구요”(pet******), “게시글 때문에 대군불신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군대를 갔다 오면 대군불신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음”(쿠**) 등 불만의 댓글이 이어졌다.
이와 관련, 군 인권센터의 임태훈 소장은 ‘go발뉴스’에 “군이 무슨 권한으로 삭제를 요구하냐”며 “군은 민간인 글에 대한 권한이 일체 없다. 불법이다”고 강조했다.
임 소장은 이어 “온라인상의 민간인 글이 문제가 있다면 정보통신망법 등 해당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며 “군은 법적으로 민간인에 대해 아무런 해당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SNS 상에서도 “우리나라가 점점 80년대로 회귀하는 것 같네요. 군도 민간인 사찰을 대놓고 하고 있습니다”(fzr****), “국방부 훈령이면 행정규칙인데, 공무원이나 군인 이외에는 적용대상이 아니고 법규성이 없다. 그걸 근거로 지우라니 어이없네”(col*******), “여전히 7,80년대 사고방식인 군대가 이러니 발전할 수 있겠나. 독재자 사진 폰걸이 하고 다니는 이가 국방장관 되면 더 할텐데”(bbu***) 등의 비난 의견이 잇따랐다.
지난 2009년 8월 국방부가 출범시킨 사이버순찰대는 온라인상에서 친북·이적표현물 등 군 기강을 해치는 정보가 유통되지 않도록 단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육군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010년 1~3월까지 3개월동안 군기강 저해·명예훼손 우려 게시물 601건을 적발해 297건을 삭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