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과 선주가 참사 책임? 그럼 대통령 책임은?”
명절 직전 국무회의. 대통령의 명절 덕담이 나오는 게 관례다. 그 덕담에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언급이 반드시 포함될 줄 알았다. 그러나 단 한마디도 없었다. 참 비정하고 뻔뻔하다. 유족들의 슬픔과 절망이 안타깝지도 않은가보다.
세월호 유족 위로는커녕 경찰 병력 풀어 유족 막아
늘 함께 했던 명절날 아들 딸이 앉아 있던 자리가 졸지에 텅 빈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유족들의 피눈물이 대통령에게는 대수롭지 않은가보다. 아직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은 실종자 10명의 가족들에게는 명절이 아니라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 될 것이다.
외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경찰을 동원해 유족들의 삼보일배를 막았다.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2차 국민 서명용지 135만장을 35개 상자에 담아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향했지만 경찰은 병력을 풀어 벽을 쌓았다. 유족들은 통곡을 했다.
세월호 가족은 이제 국민도 아니란 말인가. 박 대통령은 “가정에서부터 각 사업체에서, 단체에서 서로 용기와 희망을 나누는 따뜻한 추석이 되기 바란다”라며 덕담을 건네면서도 ‘연안 여객선 안전관리 대책’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조차 세월호 유족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선장과 선주가 참사 책임? 대통령 책임은?
유족들의 눈물도 거의 말라간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참사의 최종책임자라고 말했던 박 대통령은 이제 당당한 기세로 모든 책임을 선장과 승무원 그리고 선주회사에게 돌린다. “선장이면 선장이 자기 책임을 다하고 인명을 최고 가치로 알고 빨리 갑판위로 올라가라는 이 말 한마디를 하지 않은 것이 엄청난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며 “그 말 한마디만 했으면 많은 인명이 구조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 희생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회사에서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는 문을 닫는다, 망한다는 것이 확실하게 돼 있어야 한다”며 “안 지켰을 때는 굉장히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 8시간 지나서까지 학생들이 배 안에 갇힌 게 아니라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든 것으로 상황을 오인하고 있던 대통령의 책임 또한 ‘굉장히’ 무겁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최종책임자에서 최종심판자로 변신한 박 대통령. 그의 안중에는 광장과 길거리에서 추석을 보낼 유족들이 없다. 특별법 제정을 주장하며 자신을 귀찮게 만드는 불한당 취급하는 건가.
박 대통령이 그 국무회의에서 청와대 담장 너머 울부짖는 유족들을 외면한 채 자랑스럽게 발표한 게 있다. 17개 시도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대기업과 매칭시켜 1대 1 전담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자랑스럽게 발표한 창조센터 업체와 대기업 매칭 정책
‘창조센터’와 대기업를 매칭시키는 이유에 대해 “대기업이 지역 내 창업·벤처기업에 아이디어와 기술을 구체화하고 사업 모델 및 상품 개발, 판로 확보 및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한편, 우수 기술을 직접 매입하거나 해당 기업의 지분투자 등을 시행함으로써 전 단계에 걸쳐서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매칭의 결과로는 “창업·벤처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대기업 입장에서도 상생경제에 기여하는 윈윈의 관계가 형설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설 같은 얘기다. 어떻게 대기업으로 하여금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도록 유도할 건가. 권력으로 윽박지르고 겁주며 강제할 건가. 아니면 재벌기업들의 자발적 선의와 자비를 기대할 텐가. 방법은 딱 두 가지 뿐이다. 지원의 대가를 챙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주든가, 아니면 그러도록 눈 감아 주는 것이다.
소설 같은 정책...강제? 협박? 재벌기업의 선의와 자비 기대?
경제논리에서 공짜는 없다. 비즈니스와 관련해 기업에게 공짜 행위를 기대하는 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수 있는 확률보다 적을 것이다. 대기업이 창조센터 기업 지원에 참여한다면 공짜 지원일 리 없다. 반대급부를 보장 받았을 거라고 봐야 한다.
정부의 ‘창조센터’와 관련있는 업체들은 기술집약적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대기업이 반대급부로 노리는 것 중 하나가 기술탈취일 것이다. 중소기업의 22% 이상이 대기업으로부터 보유기술 공개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기술탈취 건당 피해액은 평균 15억원. LG유플러스와 12년째 소송을 진행해 온 ‘서오텔레콤’의 경우 피해액은 80억원이 넘는다.
대기업들의 기술탈취 수법은 다양하다. 핵심기술을 빼간 뒤 일방적으로 기술 이전계약을 파기하거나 제3자를 통해 제품을 상용화한다. 기술자료를 넘겨받아 다른 경쟁업체에게 그 기술을 제공해 가격 경쟁을 유발시기도 한다. 공동개발을 제안해 기술을 빼낸 뒤 자체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거나, 하도급 중소기업이 가지고 있는 기술의 일부를 수정해 특허를 선출원하는 수법이 동원된다.
기술임치제도, 중소기업기술보호법,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대기업의 기술탈취를 막는 장치가 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깝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맞서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기술공개 요구를 거절할 경우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협박하고, 보유기술을 먼저 공개해야 거래가 가능하다는 조건을 내세우는 경우가 잦다.
중소기업 기술탈취에 눈 벌건 대기업, 고양이에게 생선을?
소송에서도 대기업이 유리하다. 4~5년 걸리는 소송 비용을 감당 못해 도산한 중소업체도 있다. 대기업은 법무팀을 통해 대형 로펌을 선임하지만 중소업체의 경우 형편상 그럴 수 없다. 대형 로펌을 선임하고 싶어도 거절당하기 십상이다. 대기업을 상대하는 소송을 대형 로펌이 꺼리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보복이 두려워 처벌을 요구하지도 못한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중소기업 기술탈취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이후에도 단 한 건의 신고도 없다”며 “대기업의 보복이 두려워서 신고를 못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매칭 정책’이 현실화되면 대기업들은 정책적 지원을 명분 삼아 중소벤처기업의 기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된다. 아이디어 구체화를 돕겠다는 구실로 기술개발 단계부터 개입해 자신이 개발한 기술로 둔갑시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 진다. 돈 잘 버는 대기업에게 중소업체 기술을 보태줘 더 큰 돈을 벌게 하겠다는 꼼수다.
추석이 목전이다. 책임은 회피하고 고통 받는 국민을 외면하는 ‘최종책임자’와 대기업 배 불리기 위해 알뜰살들 배려하는 대통령을 봐야 한다는 게 답답할 뿐이다. (☞국민리포터 ‘오주르디’ 블로그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