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청와대-해경 ‘녹취록’ 공개되자 국조 무력화 속내 드러내”
지난 5월 16일 박 대통령은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유가족들에게 중요한 몇 가지 약속을 한다. 특검 도입, 국정조사,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진상규명이 되도록 할 것이며 낱낱이 조사해 유족들에게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다짐했다.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유족 한 없도록 하겠다” 이러더니...
유가족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재차 요구하자 “무엇보다도 진상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해 깊은 상처가 치유되도록 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3일 후엔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말한 뒤 “국민 여러분이 분노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국정조사는 대통령이 약속한 ‘철저한 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엉망이다. 여당 의원들의 안일하고 불성실한 태도 때문이다. 기관보고가 진행되든 말든 단잠을 자는 의원도 있다. 상투적인 질문을 던져 맥 빠지게 만들거나, 핵심을 비켜가는 짜고 치는 식의 질문이 거반이다. 어떤 여당 의원은 방청석에 있는 유가족을 향해 호통을 치기도 했다.
그러더니 아예 국정조사를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고 당일 청와대와 해경이 핫라인을 통해 주고받은 전화 통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부터다. 녹취록 내용은 너무 황당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 새누리당도 녹취록의 내용이 이 정도일 줄 몰랐던 모양이다.
청와대-해경 ‘녹취록’ 공개되자 국조 무력화 속내 드러내
사고 당일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관심사는 오직 VIP(대통령)의 심기였다. 청와대가 해경에 줄곧 요구한 것은 VIP에게 보고할 자료였다. 사고 현장 상황이 어떤지, 구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묻지도 않았다. 침몰하는 배에 갇힌 국민들의 생명과 안위를 걱정하는 얘기는 단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는다.
청와대가 해경에게 현장 상황을 담은 특정 영상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장면이 나오자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은 “VIP가 좋아하는 영상을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 (해경이) 다른 일(구조) 할 수 없게 만든 것 아니냐”고 일갈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김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고 나섰다. 즉시 기자회견을 열고 “김광진 의원이 특위위원직 사퇴를 하지 않을 경우 회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국조 일정을 보이콧했다.
김 의원이 녹취록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앞뒤 문맥을 짚어보면 청와대가 사태 수습보다는 ‘VIP 보고용 영상’ 확보에 더 신경을 썼다는 건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회의를 중단시켜야 할 만큼 그런 수위의 발언은 아니었다. 발언을 트집 잡아 국조를 무력화시키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청와대의 참담한 행태가 드러나니 어떻게든 회의를 중단시키고 싶었나 보다. 김기춘 실장이 참석하는 청와대 기관보고를 앞두고 야당의 기세를 다소 누그러뜨리려는 수작일 수도 있다. VIP와 김기춘 실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녹취록이 말하는 것 ‘재난콘트롤타워는 청와대였다’
국조를 무력화시키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유가 있다. 청와대가 해경과 주고 받은 대화 녹취록 때문이다. 사고 당일과 다음날(4월 16~17일) 녹취분 내용을 보면 “청와대가 재난 콘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반박한 김장수 안보실장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게 확연히 드러난다.
모든 보고를 꼼꼼하게 받았고 지시까지 했다.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라는 엉터리 보고까지 시시각각 청와대 국가안보실로 올라갔다. “구조자 370명”이라고 해경이 보고하자 청와대는 느긋한 반응까지 보였다. 소방본부가 생존자수를 354명이라고 하자 해경은 이것도 지체 없이 청와대에 보고했다.
‘190명 추가구조는 오보’로 밝혀지며 구조자가 166명으로 확인되자 해경은 청와대에 정정보고를 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반응이 가관이다. “큰일 났다. 대통령까지 보고 다 끝났다”며 크게 당황해 했다. 물속에 300여명이 갇혀 있는데도 이들의 생사보다 대통령 한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게 우선이었다.
새누리 특위위원들, ‘피의자 해경청장’ 비밀리에 회동
청와대는 사고 당일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나머지 310명이 배 안에 있을 가능성 높은 거 아니냐”며 침몰한 배 안에 갇힌 불쌍한 국민들을 생각해 낸다. 너무 참담해서 말문이 막힌다. 사실상의 콘트롤타워 권한을 가지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보다 더한 이가 있다. 최종 책임자인 박 대통령이 바로 그다. 사고 8시간이 지나도록 단원고 학생 태반이 침몰한 배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녹취록이 공개되며 사고 당일 재난콘트롤타워가 사실상 청와대였다는 게 드러나자 새누리당이 안절부절 못하는 거다. 청와대의 무기력하고 참담한 대응이 속속 밝혀지자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새누리당에 확산된 것이다.
야당과 유가족 몰래 김석균 해경청장을 만나려다 들통 나기도 했다. 국조를 중단시킨 새누리당 심재철 위원장과 조원진 간사는 피조사기관인 해경청장을 불러 면담을 가졌다. 앞서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먼저 해경청장을 만나려 했다가 이를 눈치 챈 유가족들의 항의로 무산된 바 있다.
청와대 만신창이 돼도 세월호 진상 규명돼야
녹취록이 공개되자 국조를 중단시키고 ‘피의자’나 다름없는 해경청장을 비밀리에 만나려 했다면 왜 그랬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청와대가 김재원 수석부대표에게 모종의 지시를 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VIP와 청와대’에 더 이상 불똥이 튀지 않도록 사수하라는 명령이 하달됐을 수 있다.
국조가 일시 중단되고 여당이 해경과 뭔가를 꾸미기 시작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자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진상규명 철저히 해 유가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약속이 떠올라 배신감에 치를 떨며 흘린 눈물일 것이다.
또 국민을 속이려는가. 청와대의 체통이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세월호 진상은 규명돼야 한다. 유가족과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한 가닥 의자라도 있지 묻고 싶다. 있다면 박 대통령이 나서 여당에게 소리쳐야 한다. ‘국조 무력화 시도 당장 중단하라’고. (☞국민리포터 ‘오주르디’ 블로그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