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자료 확보로 피해·위법성 입증 가능성 높아
흡연 피해자와 가족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담배소송’이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예정대로 담배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겨레>에 따르면 11일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공단의 흡연 피해 소송을 대리할 법무법인 모집이 마감되면 곧바로 심사를 거쳐 소송 대리인을 선정해 이르면 14일 법원에 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 법무지원실 안선영 변호사도 “흡연 피해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예상보다 빨리 나왔지만, 공단의 소송은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흡연 피해자들의 패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공단이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개인이 담배회사의 책임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대규모 건강검진 및 진료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건보공단은 흡연 피해 및 담배회사의 위법성을 입증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건강보험공단의 소송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선 공단 쪽은 이미 예상한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국외 사례에서도 나타났듯 흡연 피해자 개개인이 거대한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은 거의 대부분 패소했다. 한국에서도 고등법원까지는 흡연으로 폐암이 발생됐음을 일부 인정했지만 담배회사의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아 대법원에서도 패소할 것으로 봤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개인이 제기한 소송은 대부분 패소했지만 주정부가 나서면서 담배회사가 배상을 하게 하는 등 사실상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며 “ 공단은 흡연과 관련된 질환 및 진료 자료와 함께 대규모의 검진자료를 통해 흡연 피해를 입증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건강보험공단은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소송가액을 검토한 안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537억 원으로 잠정 결정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537억원은 2001~2010년 흡연과 가장 관련이 큰 폐암이나 후두암을 진단받은 암 환자 가운데 담배를 30년 넘게 피웠다고 답한 3484명의 치료비 중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 돈이다.
반면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공단의 소송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리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은 “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흡연 피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하자 대법원이 일주일 전에 갑자기 선고를 하겠다고 결정했다”며 “우연히 벌어진 일일지라도 흡연 피해와 관련해 담배회사가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여론을 통해 알려지면 공단의 소송에 김을 빼는 효과가 있다”고 우려했다.
담배 소송에 신중론을 제기해 온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 가능성도 있다. 담배 소송에서 사실상 피고로 돼 있는 기재부는 “담배의 결함과 담배회사의 위법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해 왔다.
복지부 역시 승소 가능성이 낮다며 시큰둥한 표정이다. 소송에 앞서 건강보험공단이 넘어야 할 관계부처의 벽이 흡연자들의 패소로 더 높아진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