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유체이탈화법에 책임 떠넘기기.. “국민 속터져”

“돈 없어 병원 못간 이에게 진료기록 달라는 정부”

안 그래도 부족한 복지제도를 더 망가뜨리는 정부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3월 4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통해 세 모녀 자살 사건을 얘기했다. 곧장 수많은 언론 기사에서 인용됐듯이 박근혜는 “있는 복지제도도 이렇게 국민이 몰라서 이용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없는 제도나 마찬가지”이고, “진정한 새정치는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우리 정치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대통령이 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게 다행이고, 전체적인 발언의 의도 역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그녀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청와대 홈페이지에 가면 누구나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모두발언을 대통령이 직접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내용 자체는 이해하고 있어야 할 텐데, 과연 ‘수첩공주’라고 불리는 박근혜의 모두발언 내용이 전부 참일까? 세 모녀는 정말 ‘있는 복지제도’를 몰라서 이용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후반부에 ‘복지 3법’과 ‘새정치’를 언급하며 정치권을 비판한 건 과연 틀림없는 사실일까? 이번 글에서는 바로 어제 있었던 박근혜의 청와대 발언을 한번 곱씹어 보도록 하자.

[이미지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동영상 갈무리] ⓒ ‘Arthur Jung’ 블로그
[이미지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동영상 갈무리] ⓒ ‘Arthur Jung’ 블로그

세 모녀는 설사 알았더라도 지원 받기 어려웠을 거라는 사실!

- 2010년 10월,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장애가 있는 아들의 병원비를 해결하지 못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 신청을 했다가, 근로 능력이 있는 본인 때문에 수급을 못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며 자살함.

- 2011년 4월, 폐결핵을 앓던 김 씨 할머니는 부양 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에서 탈락했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병원과 보건소를 8시간 동안 오가다 지하철역에서 객사함.

- 같은 해 7월, 경남 남해에 있는 노인요양시설에서 생활하던 70대 노인 역시 부양 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 탈락 통보를 받은 후 자살함.

- 2012년 8월, 수급자에서 탈락한 할머니가 ‘법도 사람이 만드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유서를 남기고 경남 거제시청 앞에서 자살함.

- 같은 해 11월, 전남 고흥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되지 못한 할머니와 손주가 한전의 전류 제한 조치로 전기가 끊겨 촛불로 생활하다 화재로 목숨을 잃음.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이런 곳이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있는 복지제도도 국민이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얘기하지만, 진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기 마련이고, 한국 사회에서 그런 노력의 결과는 위와 같다. 국가가 정해놓은 빌어먹을 ‘기준’ 때문에, 불에 타죽고 객사하고 자살한다. 저 분들이 복지제도를 몰라서 죽은 게 아니다. 신청해봤자 안 되기 때문에 절망한 것이다. ‘부양 의무자’니 ‘근로능력’이니, 노숙자에게는 ‘주소’를 요구하고 돈이 없어서 병원에도 못 간 사람에게 ‘진료기록’을 요구한다.

[이미지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동영상 갈무리] ⓒ ‘Arthur Jung’ 블로그
[이미지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동영상 갈무리] ⓒ ‘Arthur Jung’ 블로그

이런 현실에서 세 모녀가 과연 죽기 전에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박근혜가 말하듯이,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다면 세 모녀는 살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못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세 모녀의 한 달 수입은 어머니가 식당일로 벌어오는 15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3인 가구 최저생계비 132만 원을 상회하기 때문에, (50만 원의 월세를 내고 나면 실제 최저생계비에 미달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가 없단다.

게다가 어머니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고혈압과 당뇨가 있는 첫째 딸이 병원을 1년이 넘게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만성질환으로 인정받기도 어려울 뿐더러, 둘째 딸은 일반적으로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기 때문에 만약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면, 세 모녀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은 겨우 월세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에서 성인 여자 세 사람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돈으로 굶어죽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나? 어쩌면 이들 세 모녀는 알고도 기초수급자 신청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차피 안 되니까..

[이미지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동영상 갈무리] ⓒ ‘Arthur Jung’ 블로그
[이미지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동영상 갈무리] ⓒ ‘Arthur Jung’ 블로그

복지 3법이 처리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다는 사실!

어제 박근혜는 세 모녀가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한 다음에, 2월 임시국회에서 ‘복지 3법’이 처리되지 못한 것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복지 3법이란, 기초연금법·장애인연금법·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말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복지 3법이 처리되지 못한 건 단순히 정쟁 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물론 ‘기초연금법’은 국민연금을 기초연금에 연계하는 문제가 정치적으로 쟁점이 됐고, ‘장애인연금법’은 대선공약과 관련해 지급 범위에 대한 여야 사이의 이견이 있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때문이었다.

지금 박근혜 정권은 ‘최저 생계비’를 ‘최저 보장 수준’으로 변경하려고 하는데, 이는 현행 권리성 급여 수급을 “소득 인정액이 장관이 정하는 기준 이하인 사람”으로 전환하는 걸 뜻한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될 경우, 현재의 최저 생계비를 정부가 예산이나 경기 상황에 따라 임의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결국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지원이, 그저 정부의 재정적인 여건에 따라 축소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공공 부채를 줄이겠다며 복지 사각지대 발굴보다는 부정 수급자 색출에 더 혈안이 되어 있는 정부에게 과연 이런 재량권을 줘도 괜찮을까?
[현재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는 사람은 전체 인구에서 겨우 3%에 불과하고,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은 무려 103만 명에 달한다]

지난 2월 중순에 30개 시민단체들이 모인 ‘기초보장 연석회의’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에 대해 “기초생활보장제도 해체시도”라며 강력히 반발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의 개정안은 현행 ‘통합형 급여’를 ‘개별 급여’로 전환하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정부의 어이 없는 ‘꼼수’가 있다. 이렇게 되면 개별 급여 하나만 받아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취합되기에, 일단 통계상으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가 늘어나게 되어 있다. 실제로는 최저생계비가 계속 후퇴를 거듭하고 있으며 전체 예산 규모도 확대되지 않았는데, 겉보기에 수급자 수만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권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절박한 사람들을 앞에 두고 공약과 치적에 눈이 멀어, 이렇게 치사하고 속이 시커먼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자살하고 객사하고 불에 타죽는 사람들을 도대체 어떻게 책임질 건가?

복지 사각지대를 말한 박근혜, 그 책임 떠넘기기와 안일함의 비극

“얼마 전 세 모녀가 생활고로 자살하는 가슴 아픈 사건이 일어났습니다”로 시작하는 대통령의 어제 발언은 언뜻 보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당연한 얘기 같지만, 좀 더 그 이면을 파고 들어가 보면 굉장히 한심한 소리다. 지금 박근혜는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일까? 세 모녀 사건의 실상을 정확히 알았다면 차마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어야 한다는 소리는 못했을 테고, 복지 3법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분명히 알았다면 이게 처리되지 못한 걸 이 시점에서 들먹이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도대체가 뭘 아는지 모르는지도 불명확한 유체이탈 화법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안일한 인식과 책임 떠넘기기만 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속이 터질 수밖에..

[출처: 역사학자 전우용 트위터(@histopian)] ⓒ ‘Arthur Jung’ 블로그
[출처: 역사학자 전우용 트위터(@histopian)] ⓒ ‘Arthur Jung’ 블로그

그런데 또 솔직히 생각해 보면, 이걸 박근혜 정권에게만 뭐라고 하기도 어렵다. 예전부터 복지 얘기만 나오면 ‘포퓰리즘’이 어떻고 ‘빨갱이’가 어떻고 하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복지제도를 가져본 역사가 없고, 비슷한 경제규모의 다른 나라들이 다 하는 복지제도도 그대로 시행하지 못하면서,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복지 포퓰리즘’을 운운한다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뻔뻔스럽게 이따위 주둥이를 놀리는 인간들에게 정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세계 최저 출산율과 최고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제도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이대로 가면, 단언컨대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세 모녀가 삶의 마지막에 남긴 말이다. 짧은 문장 속에 죄송하다는 말이 두 번이나 들어갔다. 이들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생명을 포기했다. 2010년 10월에도 일용직 아버지가 자살했고, 2011년 4월에도 폐결핵을 앓던 할머니가 치료도 못 받고 객사했다. 같은 해 7월에도, 그리고 2012년 8월에도.. 우리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이 전기가 끊겨 촛불로 생활하다가 불에 타죽는 국가에 산다. 그런데도 가난하기 때문에 죄송한 나라. 분명히, 대한민국은 복지 후진국이고 우리 사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복지를 확대해야만 한다. 단순히 잠깐 슬퍼하고 말 일이 절대 아니다. 이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언제까지 복지 포퓰리즘 같은 새빨간 거짓말에 속으며 살 텐가.. (☞ 국민리포터 ‘Arthur Jung’ 블로그 바로가기)

[편집자註] 이 글은 외부 필진(블로거)의 작성 기사로 ‘go발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go발뉴스’는 다양한 블로거와 함께 하는 열린 플랫홈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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