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순위 강요하는 교육부.. 보도자료 베끼는 언론
오로지 순위와 점수에만 관심 있는 한국 교육부와 보도자료를 베끼기만 하는 한국 언론.
이번 주에 교육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은 뉴스가 하나 있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수학·읽기·과학에서 학업성취도가 최상위권이라는 보도였는데, 며칠 동안 신문과 방송 뉴스를 막론하고 여러 언론에 오르내리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언제나 그렇듯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상당히 긍정적인 헤드라인을 주로 뽑았고, 개인적으로도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해외뉴스를 번역해서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이상한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The Atlantic'이라는 미국 평론지의 12월 3일 보도였는데, 기사 내용 중에 이런 문장이 눈에 띄었다.
“Korea, for example, boasts the best math scores in the world, but also has the least-happy students(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수학 성적을 자랑하지만 학생들의 행복도 조사에서 가장 불행한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원문 출처: The Atlantic, 번역문 출처: 뉴스페퍼민트
[애틀란틱] 역시 OECD 학력 평가를 다룬 뉴스를 내보낸 것인데, 이 조사에 참여한 수십 개국 중에 하필이면 한국의 예를 든 것이다. 그리고 이 저명한 평론지는 한국 학생들의 수학 성적과 함께 ‘행복도’를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 처음엔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기일까?’ 하고 의아했는데, 그 내막을 살펴본 뒤에는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이번 포스트에서는 과연 이번 주에 교육부와 언론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낱낱이 밝혀보고자 한다.
원래 출처는 OECD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 연구(PISA 2012)
우선, ‘학업성취도 최상위권’이라는 보도의 출처부터 알아보자. 한국에서 이 뉴스의 시작은 교육부 보도자료이고, 교육부의 보도자료가 말하고 있는 ‘만 15세 대상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라는 건 OECD에서 3년 주기로 실시하는 국제 비교 연구 중 하나다. 즉 ‘PISA 2012’ 결과에 따라 보도자료를 낸 것인데, OECD가 한국시각으로 2013년 12월 3일 18:00에 공식 발표한 자료다.
“PISA 2012는 총 65개국(OECD 34개국, 비회원국 31개국)에서 약 51만 명을 대상으로 시행되었으며, 우리나라는 비례층화표집방법에 의해 표집된 총 5,201명(고등학교 140개교, 중학교 16개교)이 참여하였다.”- 출처: 교육부 공식 보도자료
결국 ‘OECD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 연구(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PISA)’의 2012년 결과가 이 보도의 원래 근거이고, 이와 관련해서 대한민국 교육부는 문서 파일로는 상당한 용량의 보도자료까지 첨부했다(교육부 홈페이지의 첨부파일 용량이 10메가도 넘는다). 그리고 교육부 보도자료의 헤드라인은 <OECD 국가 중 수학 1위, 읽기 1∼2위, 과학 2∼4위>이며, 다수 언론 보도의 제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OECD의 공식 발표자료를 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직접 교육부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아서 읽어 보면 알겠지만, 해외 언론이 언급한 학생들의 ‘행복도’와 관련된 부분을 교육부 보도자료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대부분의 한국 언론 기사에서도 ‘행복도’에 관한 내용을 찾기가 어렵다). 그저 점수나 순위에 대한 것만 있을 뿐, 한국어로 된 보도자료나 기사에서는 ‘행복도’라는 표현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OECD 공식 발표자료와 교육부 공식 보도자료의 비교
포털사이트에서 ‘OECD’를 검색해서 경제협력개발기구 홈페이지의 학업성취도 평가(PISA) 관련 웹페이지에 들어가면, 누구나 전체 보고서를 직접 읽어볼 수 있다. 굳이 믿을 수 없는 한국 정부나 한국 언론에 기대지 않고도, 본인이 의지만 있으면 스스로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인터넷을 통해 OECD 공식 발표자료와 교육부 공식 보도자료 그리고 각종 한국 언론의 기사를 다 비교 가능한데, 어차피 교육부 자료와 한국 기사는 별로 차이가 없으니 경제협력개발기구와 교육부의 공식 자료만 좀 살펴보자.
위 그래프 형태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듯이, 교육부의 보도자료란 게 단지 영어를 한글로 바꾸고 모양이나 색깔을 약간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다 (물론 세부적인 텍스트는 국내용에 맞게 약간씩 다른 부분들이 있다). 본래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 연구’니까 당연히 수학·읽기·과학의 국가별 성취 수준이 주요 내용이고, 세 과목에 대한 발표 자료의 형식은 다 비슷하다. 그리고 핵심적인 결과 그래프뿐만 아니라 하위 조사 결과 그래프도 교육부 보도자료에서 그대로 여러 개를 찾아볼 수 있다.
위 그래프 형태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듯이, 교육부의 보도자료란 게 단지 영어를 한글로 바꾸고 모양이나 색깔을 약간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다 (물론 세부적인 텍스트는 국내용에 맞게 약간씩 다른 부분들이 있다). 본래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 연구’니까 당연히 수학·읽기·과학의 국가별 성취 수준이 주요 내용이고, 세 과목에 대한 발표 자료의 형식은 다 비슷하다. 그리고 핵심적인 결과 그래프뿐만 아니라 하위 조사 결과 그래프도 교육부 보도자료에서 그대로 여러 개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의문은 경제협력개발기구가 학력 평가와 함께 공식 발표한 학생들의 행복도 조사 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 풀리는 듯싶다. 60개가 넘는 조사 대상 국가 중에 ‘학교에서 행복하다고 답한 학생들의 비율’은 대한민국이 최하위권이다. OECD 평균보다도 20퍼센트나 낮은데, 우리나라 주변국인 일본이나 중국은 평균보다 높다(그냥 대충 봐도, 대만이나 홍콩보다는 25% 이상 낮은 걸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문화적 차이도 있을 테고, 경제적인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당연히 어느 한 가지 이유로 단정 지을 순 없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과연 교육부가 한국 학생들의 행복도가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가장 낮다는 조사 결과를 보지 못했을까? 일반인도 단숨에 찾아낼 수 있는 걸, 특히 그냥 하위권도 아니고 완전히 꼴지인데 말이다.
설마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OECD 국가 중 수학 1위, 읽기 1∼2위, 과학 2∼4위>라는 보도자료 메인타이틀을 뽑기에, 학생들의 행복도 결과는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오로지 높은 순위와 점수에만 관심이 있는데, 우리 아이들의 행복도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있나? 어차피 OECD 공식 발표 내용을 전부 다 보도자료로 만들 수는 없으니, 그냥 빼버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만약 그렇다면, 언론이라도 제구실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교육부야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행복도 최하위’라는 헤드라인이 좀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언론은 도대체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제대로 된 언론인이라면 원래 출처인 OECD의 평가 결과를 꼼꼼히 살펴보고, 교육부 발표에 문제는 없는지 또 조사 내용 중에 대중이 진짜 주목해야 할 게 뭔지 분석해서 관련 기사를 써야지, 그냥 교육부가 뿌리는 보도자료만 베끼면 끝이 아니지 않나?
어째서 대한민국의 교육부와 언론은 다른 나라 언론조차 주목하는 한국 학생들의 행복도를 끝까지 외면하고 있을까? (최근에 한국의 교육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전세계 곳곳에서 몇 차례 나오기도 했다) 학력 평가의 점수와 순위보다 아이들의 행복도가 덜 중요한 것인가? 수학·읽기·과학에서 최상위권이면 뭐하나, 행복도가 최하위권인데.. 현재 우리나라 1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데, 이런 상황이라면 순위나 점수보다 오히려 행복도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닐까?
무슨 사립학교나 사설학원도 아니고, 그래도 교육부와 언론인데 최소한 행복도에 대한 언급이라도 있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여기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원인들이 있겠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어떻게 교육부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보도자료를 만들고 또 그걸 언론이 그대로 받아쓸 수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단순히 자랑질이나 할 게 아니라, 이런 문제의 발생 이유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것이 바로 교육부와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 Arthur Jung 개인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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