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꾼만 웃고 새정치는 실종된 신당 발표”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궁색한 명분과 비민주적 통합, 한국 정치의 수많은 가능성 사라져.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 창당준비위 중앙운영위원장이 공동 신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 시간이 임박해서야 당 대표로부터 단체 메시지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새정치연합은 윤여준이나 김성식 같은 공동위원장조차 “기자들하고 같이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양당 관계자들이 모두 놀란 무척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그러니 일요일이라 집에서 쉬고 있던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당원과 지지자들은 그 충격이 오죽했으랴.
이런 통합의 근본적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쨌든 김한길과 안철수가 신당 창당의 표면적인 명분으로 내세운 건 바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인데, 과연 이것만으로 국민들에게 충분한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무슨 기업 합병도 아니고 민주주의 정당이 합쳐지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비밀리에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합의한 걸, 도대체 무슨 근거를 들어 정당화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계속 입에 달고 살았던 ‘새정치’라는 게 고작 이런 것이었나? 이번 포스트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과연 통합의 명분으로 합당한가?
간단하게 말해서, ‘기초선거 공천 폐지’는 정당이 시군구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에서 공천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사안은 ‘정당 중심의 책임정치 구현’이라는 밝은 면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앙정치 예속’이라는 어두운 면이 공존하는 문제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도입된 이후 매번 기초 선거 때마다 공천 비리가 폐해로 지적되어 왔고, 지난해 안철수가 정당개혁 과제로 가장 먼저 제안했다. 이 문제 역시 구태정치의 기득권 때문이며, 새정치를 위해서는 기초 공천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 이후 지지부진하던 공천 폐지 논란은 올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2월 28일 오후 민주당이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확정하면서 결국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통합 논의에까지 이르게 된다(관련 보도에 따르면, 이때 김한길이 안철수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고, 이에 대해 안철수는 “기초선거 공천 폐지라는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큰 결단을 평가하고 싶다”라고 화답했단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양당의 공동 신당 창당과 관련한 직접적인 논의 기간은 2~3일이 채 안 되는 셈이다.
자 그렇다면, 기초선거 공천 폐지가 과연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통합의 명분으로 합당한가를 한 번 따져 보자. 그런데 이 얘기를 하기에 앞서, 안철수에 대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바로 지난 대선 때 정치개혁 방안으로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자고 제안한 것인데,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과연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는 게 ‘새정치’와 근본적으로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말도 안 되게 그 숫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우리가 정치개혁을 말하는 이유는 국회의원의 수가 많고 적음 같이 단순한 이유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정치선진국처럼 국회의원들이 고액의 연봉과 특권을 다 포기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닐 게 아니라면, 국회의원 수가 200명이든 400명이든 그게 그렇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아니란 말이다.
어쩌면, 똑같이 안철수가 제안한 기초선거 공천 폐지 문제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기초선거의 선출직 공무원들이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지금처럼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과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무조건 정당이 공천을 하지 않는다고만 해서 과연 지역정치가 발전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요즘 지방토호들의 기초의회 장악이 심상치 않은데, 새누리당이 정당공천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야권만 공천 폐지를 한다고 특별히 뭔가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정당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조차 6월 지방선거에서 ‘합법적으로 지지 후보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숙고 중’이라고 하니, 이런 일시적인 공천 폐지 약속이 도대체 얼마나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상당한 의문으로 남는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기초선거 공천 폐지보다 근원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사안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다당제 국가인 한국에서 양당제 고착을 가장 확실하게 해소할 수 있고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인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 있고, 선출직 공무원들의 특권 폐지와 관련한 다양한 방안들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명확한 명분이 있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장단점이 있으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단 하나만으로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통합한다는 건 솔직히 좀 궁색한 느낌이 강하다. 그냥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서(‘공동신당은 대선공약을 지켰고, 새누리당은 지키지 않았다’), 단지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 서두른 게 아니라면, 이보다 더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갑작스러운 통합 선언과 그 과정의 비민주성은 어떻게 정당화할 텐가?
앞서 지적했듯이,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창당·통합 선언은 무척 서두른 기색이 역력하다. 아무도 모르게 단 이틀 만에 김한길과 안철수의 합의로 성사된 것인데, 이 과정에서 지지자들의 양해는 고사하고 같은 배를 탄 동료 정치인들에게도 사전에 별다른 안내가 없었다. 부정적으로 나쁘게 보면 소위 말하는 ‘밀실 야합’에 가까운데, 양당이 어쩔 수 없이 그랬다면 이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단순히 ‘외부에 알려지는 순간 성사가 될 수 없는 사안’이라는 뜬구름 잡는 변명으로는 정당화가 될 수 없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갑작스러운 통합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상세히 설명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일단은 6월 지방선거를 핑계로 대는 것 같은데, 사실 이건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왜냐 하면 이제까지 강조해온 ‘새정치’의 기본 정신에도 어긋나고, 이미 기초선거 무공천을 약속한 상태에서는 합리적인 근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그 동안 계속 “무원칙한 선거 연대, 정치공학적 연대는 없다”고 말해왔는데, 그냥 연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통합신당 창당이라는 엄청난 사안에 고작 지방선거를 들이미는 게 말이 되는가? 그리고 공동 신당의 가장 큰 명분 자체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이고,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 최재천 의원이 말했듯이 “기초공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당의 업무가 어마어마하게 줄”었는데, 어떻게 지방선거 때문에 비민주적인 통합 논의를 서둘러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 정당의 정상적인 통합 과정이라고 한다면, 우선 6월 지방선거 무공천 원칙을 밝힌 이후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기초공천을 하지 않으면 당의 업무가 어마어마하게 줄어든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정식 논의 기구를 함께 만들어서 합당 또는 공동 신당 창당 논의를 시작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시간을 두고, 진지하게, 다방면으로.. 이 과정에서 당원들이나 지지자들을 향해 직접 통합 이유를 설명하고, 어떤 식으로든 결정 단계를 거친 결과 만약 지지자들이나 당원들이 원하지 않으면 그렇게 안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안철수와 김한길은 밀실에 둘이 앉아서 마음대로 통합을 결정했는가? 이렇게 비민주적인 과정을 거쳐서 신당을 창당해도, 당원들이나 지지자들은 무조건 따라가야만 하는 걸까? 한마디로, 지방선거를 변명의 구실로 삼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한꺼번에 사라진 한국 정치의 수많은 가능성들
새정치연합 안철수 창당준비위 중앙운영위원장과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공동 신당 창당 발표에, 그들이 그토록 부르짖었던 ‘새정치’는 전혀 없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부터가 너무나 궁색한 명분이었고, 설사 이걸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비민주적으로 갑작스럽게 통합을 결정한 건 사실상 정당화되기 어렵다. 벌써부터 새정치연합 김성식이나 윤여준 같은 공동위원장들의 불편한 심기가 노출되고 있으며, 어쩌면 민주당의 텃밭인 전라도 지역 토착 세력들은 ‘새정치’라는 구호를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심지어는 새누리당 관계자들마저 몰래 웃고 있을 수도 있다. 어차피 새누리당은 지방선거 공천을 그대로 할 가능성이 높고, 제3세력을 거의 신경쓸 필요 없이 그냥 이제까지 계속 해오던 대로 선거를 치르면 되기 때문이다. 주적과 불분명한 적 이렇게 두 대상과 싸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1:1로 싸우는 게 새누리당으로서 오히려 더 편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번 통합으로 인해 21세기 한국 정치의 수많은 가능성들도 같이 사라졌다. 정당 독재를 막고 국회내에서 다양한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여러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며 양당 구도를 탈피하는 게 필수적인데,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공동 신당 창당으로 양당제는 더욱 더 고착화되게 생겼다. 앞으로는 새누리당과 공동 신당에 대한 편중 현상이 보다 심각하게 벌어질 것이며, ‘그놈이 그놈’인 상태가 훨씬 더 자주 보일 테고, 우리 유권자들 앞에는 선택지가 둘밖에 없는 상황이 여러모로 빈번해질 것이다. 잠깐 과거를 한 번 돌아보라.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과연 많이 달랐는가? 아마 양당은 여기서 더 나아가 기득권 유지와 특권 확대에 더 골몰할 테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같은 근본적인 정치 혁신은 꿈꾸기조차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제 많은 유권자들에게는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이 왔고, 이 선택에서 어느 쪽이 다수가 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일단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철수에게 남겨뒀던 관심을 앞으로는 거둬들여도 될 듯싶다. 민주당과 합쳐진 안철수는 별로 매력이 없지 않나? 그리고 민주당 당원들과 새정치연합 지지자들은 당장 선택을 해야만 한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남는다면 양당 구도 하에서 꽤 오랫동안 아무런 고민 없이 통합 신당에 표를 던지면 될 테고, 떠난다면 자신의 인생에서 소위 말하는 보수와 진보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 할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새누리당은 사라져야 할 정당이며, 민주당으로도 안 되고, 새정치연합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고 있으며, 다른 진보정당들은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실 이번 통합 선언으로 가장 큰 고민을 하게 된 이들이다. 향후 꽤 긴 세월동안 선거 때마다 (특히 대통령선거 때마다) 깊은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는 유권자들이고, 양당 정치 하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제일 높은 국민들이다. 물론 이들에게도 선택지는 있다.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공동 신당에 투항하거나 또는 아예 정치 무관심과 혐오로 남은 인생을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면, 그냥 당당히 비주류 1%의 삶을 굳건히 지켜나갈 수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해적당’도 만드는데, 우리도 ‘사민당’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국민리포터 ‘Arthur Jung’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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