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 진솔한 고민 담긴 <슈퍼맨이 돌아왔다>
서구와 달리 한국의 육아는 그동안 아니 지금도 줄곧 엄마의 몫이다. 엄마가 전업주부이건 혹은 맞벌이를 하건 상관없이 그렇다. 그것은 유교영향을 받은 동양의 많은 나라 역시 다르지 않다. 간혹 사회면 기획기사로 이런 문제가 다뤄지기는 하지만 남자들로서는 굳이 변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엄마 품에 자란 아이가 정서적으로 더 안정적으로 성장할 거라는 믿음이 그 무관심의 배후에 있음도 놓칠 수 없다.
이런 배경 속에서 <아빠 어디 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티비 프로그램이 탄생할 수 있었다. 공동육아가 보편적이라면 거기에 어떻게 관심을 줄 수 있겠는가. 어쨌든 육아 예능은 재미와 감동도 주었지만 적잖이 사회 분위기도 바꿔주었다. 새학기를 맞아 자녀들의 등교를 위한 준비에 아빠들의 관심과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보도가 그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작은 변화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공익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프로그램들이라 할지라도 뜻과 달리 실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육아예능은 딱히 캠페인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시청자들이 변화하도록 자극한 면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좋은 아빠 콤플렉스’를 많은 아빠들에게 심어준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예능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이며, 최대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시청자에게 좋은 아빠가 되는 일은 의무나 분담이 아니라 그 자체로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사실 육아와 함께 너무도 당연한 가사 분담의 문제도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것이 보통의 남자들인데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육아의 고통과 행복에 아빠들이 직접 가담하려고 한다는 것은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성가정부가 수십 년을 해도 못할 것을 예능 프로그램 몇 개가 순식간에 이룬 쾌거다.
한국이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GDP로 따질 문제는 아니다. 경제적 측면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은 그 삶의 질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서의 모성이란 희생의 다른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보다 더 교육받고, 더 깨친 여성들에게 더 이상 희생은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출산이 줄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출산을 장려하려는 것은 희생의 강요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출산과 육아가 여성의 희생이 되도록 강요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많은 개선이 필요하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작점은 가정이어야 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육아 예능을 통해서 그것이 환상이건 각성이건 아빠들이 조금이라도 변화한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아예능은 무한도전만큼이나 장수해야 할 프로그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략 일 년쯤 된 육아예능에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출연진에 대한 논란은 일단 지엽적인 것이니 제외하기로 하자. 그 고민의 솔직함을 드러낸 것은 <슈퍼맨이 돌아왔다>다. 최근 들어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빠 혼자서 하던 자녀 돌보기를 탈피하고 있다. 설을 맞아 네 가족 모두를 모이게 한 것부터 시작해서 그 후로는 추성훈과 장현성 가족을 서울과 도쿄를 오가는 교환방문을 시도하고 있으며, 타블로도 계속해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프로그램 내 시청률 편차를 줄여보겠다는 의지를 먼저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아빠 혼자서 하기에는 콘텐츠가 고갈되어간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하필이면 타이틀을 ‘좋은 아빠 콤플렉스’라고 붙였다. 비록 타이틀만큼 정직한 고백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지만 아빠들과 제작진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단서였다. 매주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고 일상 속에서 더 이상 예능으로서의 콘텐츠를 만들기도 어렵지만, 정말 아빠들이 소질도 없는 육아를 하면서 지금껏 티비에 비쳐왔던 것처럼 항상 좋은 아빠일 수 있냐는 리얼리티의 의문과 고민이 엿보였다.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물론 제작진의 몫이겠지만 이번 주 타이틀을 통해 때로는 나쁜 아빠여도 괜찮겠냐고 묻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좋은 아빠 콤플렉스는 이미 만들어졌고, 그것으 깨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위험한 시도일 수 있지만 그 고민에는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슈퍼맨>은 제목처럼 환상에 가깝다. 좋은 아빠 콤플렉스를 이겨내고 진짜 육아를 보여주면서도 지금까지의 재미와 감동을 유지하기 위한 기술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 환상을 깨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부터는 환상이 아닌 각성된 아빠의 모습으로 진화할 때도 된 것 같다. (☞ 국민리포터 ‘탁발’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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