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등신 취급하는 사회.. 침묵하지 말자” 성토
한 대학생의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외침에 “아니오, 안녕하지 못 합니다”라는 대학생 200여명의 함성이 고려대 후문을 가득 메웠다.
14일 오후 3시 서울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에 대학생 등 200여명은 각자 ‘안녕하지 못한 이유’가 적힌 피켓과 종이 등을 들고 모여 성토대회를 열었다.
이 대학 경영학과 주현우 학생이 지난 12일 ‘안녕들하십니까’라며 사회문제의 관심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이것이 일파만파로 번지며 오늘의 성토자리를 만들게 된 것.
성토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고려대 학생 뿐 아니라 서강대, 외대, 국민대 등 다양한 대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직장인과 60대 할어버지도 참여해 이들에게 응원의 말을 건넸다.
서강대 불문과 정다운 학생은 “학교에서 안녕하지 못하다는 대자보를 쓰고 나서 선배 뒤통수를 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전 대통령의 모교가 고려대니) 고대 학생들은 서강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가해자를 벌하지 않고 피해자를 등신 취급하는 이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안녕치 못하다. 침묵하지 말자”고 강조했다.
성공회대 조은혜 씨는 “현재 우리사회는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는 것도 잘못이지만 틀린 것을 다른 것으로 넘기는 것도 문제라도 생각한다. 적어도 상황이 잘못됐다는 것을 파악 했을 때 그것을 지적하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침묵하지 않고 이 자리에서 행동으로 하고 싶은 목소리를 내는 여러분과 함께 나도 내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겠다”며 “모두 안녕하시기 바란다”고 외쳤다.
또 지방에서 올라온 한 대학생은 “우리는 똑같은 고통을 받고 있다. 우리는 아프다 말하기 위해 모였다”라며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사회,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사회에 살고 있다. (아픔을) 말하지 못하게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고전 ‘멋진 신세계’를 일부 인용 발언해 학생들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최초로 대자보를 붙였던 주현우 학생은 성토대회 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목소리는 계속 나와야 한다. 대자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말 못한 답답함에 우리 스스로가 (말)하게 하는 순간이 온 것”이라며 “이틀도 안 되어 페이스북에 6만명이 ‘좋아요’를 눌러줬다. 곳곳에서 자기 자보를 보내주는데 이 상황을 다들 비슷하게 느낀다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주 학생은 대자보 작성에 다른 의미가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우리는 모두 정치를 하고 있다. ‘좋아요’ 누르는 행위도 정치, 내가 이곳에서 말하고 있는 것도 정치다”라며 “다만 정치가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하거나 외면했던 것 뿐 이라 생각한다. (다른 의도라고 말하는) 분들의 행위 역시 정치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우리 각자의 정치를 하면 된다”고 밝혔다.
성토대회에 함께한 학생들은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고려대역까지 행진한 뒤 시청역으로 이동, 밀양지역 송전탑 경과지 마을 주민인 故 유한숙 씨의 추모문화제에 참석했다. 이 과정에서 시청역 출구를 경찰이 막아서서 학생들과 5분여간 대치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뒤이어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제24차 범국민촛불대회에 합류했다.
한편, 주현우 학생이 던진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자보 열풍이 전국 대학가 및 사회로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서울대, 성균관대, 중앙대, 서강대 등에서도 학생들은 ‘응답’ 대자보를 써 붙이며 페이스북을 통해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파업 중인 김명환 전국철도노조 위원장도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경종을 울릴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며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내용이 담긴 자필 자보를 게재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