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태의 와이드뷰] 후보 심사와 임명과정서 잡음·여야대립 의도 아닌가
“민주당 저 자들도 과거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에 개표조작이란 주장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김어준은 <더 플랜>이란 영화까지 만들었다. 우습게도 이번에 민경욱 의원 등이 개표 전산조작 가능성을 주장하는 논리 중 일부분은 <더 플랜> 영화 속에 그들이 주장했던 것과 상통한다.”
지난 5월 석동현 변호사가 본인 페이스북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총선 이후 ‘부정선거’ 소송을 이어가고 있는 민경욱 전 의원의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석 변호사는 그러면서 “부정규명에 용기 있게 나선 후보와 변호사들을 한심하게 바라보거나 험담하기보다 대법원 결론이 날 때까지 차분하게 지켜봐 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흥미롭다. 이미 <더 플랜> 속 개표조작 의혹은 개봉 이후 여타 언론이나 전문가들로부터 수차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검증’을 받은 바 있다. 민 전 의원의 법률 대리인이 그런 <더 플랜>을 끌고 들어온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주장을 법률 대리인이 나서서 떠들었다는 사실을 민 전 의원은 알고 있을까.
국민의힘마저 비판적인 민 전 의원의 소송전에 협력 중인 석 변호사는 지난해 8월 ‘문재인 하야’ 부산집회에 참석해 “요즘 일본의 수출규제, 한국을 배제하는 그런 사태가 있었습니다. 나라와 국민에게 반역하는 행위만 아니라면 저는 친일파가 되겠습니다”라고 주장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 자리는 전광훈 목사와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이 주도한 집회였다.
언론보도에 의해 비판이 쏟아지자, 석 변호사가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반박에 나섰다. 같은 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페이스북에 “국힘당의 친일파 공수처장 후보추천은 국민 조롱한 것”이라고 날을 세운데 대한 반발 형식이었다.
석 변호사의 기이한 자기 변명
“저가 ‘나라와 국민에게 반역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친일파가 되겠다’고 한 것 맞습니다. 즉 작년 봄에 모 정권실세가 무슨 죽창가를 거론하며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선동하는 상황에서, 그보다는 나라의 안보와 국민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일본과도 잘 지내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그리고 저가 공수처를 괴물이라 한 것은 작년에 현 정권과 여당이 제1야당을 도외시한 채 친여권 야당과 패스트트랙을 통한 야합으로, 헌법에도 안맞게 우격다짐으로 공수처법 통과시킨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헌법재판소가 공수처법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기도 전에 출범을 서두르는 저의가 무엇입니까.” (11일 석동현 변호사 페이스북 글 중에서)
공수처법 처리의 절차를 문제 삼은 석 변호사는 그에 앞서 ‘죽창가’ 운운하며 조 전 장관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공수처 설치에 ‘정치적 의도’를 덧씌우려는 의도 말이다. 석 변호사는 공수처장 임명 강행이 “오히려 국민에 대한 조롱이 될 것”이라며 이런 주장을 이어갔다.
“공수처가 생기면 과연 검찰 대신에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옵티머스-라임 펀드사건, 월성원전 같이 고위공직자가 연루될 수 있는 비리 의혹 수사를 과감하게 시작하고 제대로 파헤칠 수 있겠습니까? 반면에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조사는 시민단체 고발을 앞세워 얼마나 난리 치고 야단법석을 떨겠습니까?
따라서 공수처장은 친 정권성향 인사가 아니라 공수처의 도입이유, 존재목적에 대한 고뇌도 하면서 때로는 정권의 입장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는 담대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초대 공수처장에 ‘문재인 정권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을 앉히라’는 주문, 그 자체가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발언이라는 사실. 알면서 주장하면 ‘확신범’에 가깝다 할 수 있고, 몰라서 하는 주장이어도 자격 미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옵티머스-라임 펀드사건, 월성원전’을 콕 짚어 언급한 것 자체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고 볼 수 있다. 세 사건을 여권의 ‘고위공직자가 연루될 수 있는 비리 의혹’이란 프레임을 씌우려는 의도 말이다. 윤 총장이나 최 원장을 현 정권에 반하는 인물로 규정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미 공수처를 ‘괴물’이라 규정하며 물의를 빚은 석 변호사를 공수처장 후보로 추천한 국민의힘은 무슨 의도였을까. 석 변호사가 국민의힘의 전신인 정당 출신으로 2번이나 총선 예비후보에 출마했던 전력을 어여삐 여긴 걸까.
석 변호사와 국민의힘과의 끈끈한 관계는 이 뿐만이 아니다. 석 변호사의 부인인 박영아 전 의원이 한나라당 18대 국회의원(송파갑) 출신이다. 석 변호사를 세월호 특조위 위원으로 추천한 것 역시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이었다.
이쯤 되면, ‘수사를 위해 검사출신을 추천했다’던 국민의힘이 어깃장을 놓듯이 ‘자기 편’을 후보에 심어놓고 ‘진영논리, 정치적 차이로 핍박받는 야당 추천 후보’ 프레임을 완성, 공수처장 후보 심사와 임명 과정에 잡음을 일으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는지 의심해 봐야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석동현 변호사가 지난 6일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된 정진웅 차장 검사를 향해 “사직하세요”란 페이스북 글을 쓴 것도, 이를 <조선일보>가 기사화하며 추켜세운 것을 어찌 봐야 할까. 과연 이런 ‘언론플레이’ 직후 국민의힘이 석 변호사를 공수처장 후보로 추천한 것은 어쩌다 타임라인이 맞물린 우연인 걸까(☞관련 기사 : <<조선>이 추켜세운 ‘정진웅 사직’ 요구 석동현의 이력>)
시민들의 제1 요구는 ‘공정성’
“새롭게 출범하는 공수처는 독점하던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해 온 과거의 검찰과는 달라야 한다.”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수처장 임명 관련 시민 대상 온라인 조사 결과를 발표한 참여연대의 주장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시민 1천322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시민들은 공수처장에 필요한 자질로 공정성(32.7%)을 우선이었고, 이어 수사 능력(31.3%), 독립성(28.6%), 도덕성(5.8%)을 꼽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추천위는 시민들이 요구하는 공수처장 자질과 시대정신에 주목해야 한다”며 “시민들은 영웅이나 구원투수를 바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 법대로 하고, 특정 정치세력 입맛대로 수사하지 않을 사람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러한 시민들의 기준을 놓고 보면, 석 변호사는 자진 사퇴가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전략은 절반의 성공은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이미 12일 <여야, 공수처장 후보 놓고 서로 삿대질>이란 기사를 내놓은 <조선일보>를 필두로 대다수 언론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과정부터 ‘진영논리’와 ‘여야대립’을 부각시키는 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일(13일)까지 시민들의 눈높이에 걸맞은 공정성을 지닌 후보 2명이 공정하게 가려지기를 바란다.
하성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