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트위터’는 외면-‘조세피난처’는 장사진…언론노조 “‘조중동’ 나가달라”
‘뜨거운 취재열기’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현장이었다. <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취재한 이른바 ‘조세피난처 프로젝트’의 1차 명단을 발표한 22일, 기자회견이 열린 언론노조 대회의실은 각 언론사에서 모여든 취재진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번에 공개된 사안에 쏠린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장면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장은 각 언론사의 취재진들로 인해 회견 시작 40여분 전부터 발디딜틈 없이 가득찼다. 현장을 촬영하기 위해 설치된 카메라에는 공중파 방송사들의 로고도 찍혀있었다. 다소 협소한 장소임에도 기자들은 점점 모여들었다. 의자가 모자라 바닥에 앉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는 지난 17일 <뉴스타파>가 ‘국정원 트위터’ 관련 보도를 했을 당시의 관심을 감안하면 불과 며칠만에 ‘격세지감’을 느낄만한 대목이었다. 해당 보도를 외면한 상당수의 메이저 언론사들이 이번 ‘조세피난처’ 기자회견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취재 경쟁도 대단했다. 기자회견이 시작되고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와 최승호 앵커가 등장하자 사진 기자들은 플래시 세례를 터뜨렸다. 최 앵커가 명단을 공개할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진기자들의 촬영이 이어지는 동안 한 영상기자는 여러차례 “비켜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심지어 최 앵커와 김 대표는 기자회견이 끝난 후 보도자료를 들고 사진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포토타임’까지 가졌다. 마치 한류스타의 기자회견을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더구나 ‘언론’이 ‘언론’을 상대로 한 취재현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진풍경이었다.
배포된 보도자료가 모자라는 상황이 벌어지자 취재기자 사이에서는 자료요청이 이어졌다. 주최 측이 서둘러 자료를 추가 복사해왔지만 몇몇 기자들의 손을 거치자 곧 동이 나 버렸다. 미처 자료를 받지 못한 기자들은 기자회견이 끝나자 언론노조 사무실에 위치한 복사기 앞으로 몰려갔다. 자료를 받기위해 순번을 정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복사기는 쉴새 없이 돌아갔고 이메일을 통해 자료를 받기위해 명함을 건네는 손길이 이어졌다. “언론노조 생기고 나서 이렇게 기자들이 많이 온 적 있느냐”는 이상호 기자의 질문에 복사에 열중하던 언론노조 관계자는 “처음이라고 봐야되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같은 열띤 취재현장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초대받지 못했다. MBN을 제외한 종편채널 3사도 마찬가지였다.
또다른 언론노조 관계자는 이날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 “언론노조가 오랫동안 견지해온 입장과 원칙에 따라 너무나 죄송스럽지만 종편 취재진과 <조선>, <중앙>, <동아> 3개 일간지 취재진은 언론노조 사무실 밖으로 퇴장해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드린다”고 공지했다.
이 관계자는 “언론노조 산하 조직 언론사에서 오신 취재진들은 그 이유에 대해 충분히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며 “종편채널의 탄생과정에 많은 논란이 있었고 그런 것들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언론노조의) 입장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기자회견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언론노조의 입장을 분명히 나타내듯 이날 기자회견이 열린 언론노조 대회의실 입구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TV조선, JTBC, 채널A의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1차 명단이 발표된 후 기자들의 질문세례도 이어졌다. 이날 몇 명의 이름만 공개한 것과 관련, 김용진 대표는 “본인확인에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린다”며 “현재까지 법인설립신고서에 주소가 있는 사람들은 저희가 다각적 확인을 통해 본인여부를 확인한게 20여명이 되는데 실제 확인 작업을 벌이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간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재차 “순차적으로 하는 이유는 확인작업이 필요하다. 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는지 사유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며 “시인한 경우도 있고 사전에 답을 달라고 이야기 했지만 계속 답이 없는 상황도 있다. 그런 것을 감안해달라”고 강조했다.
명단공개조건과 관련, 김 대표는 “저희가 ICIJ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일종의 협약을 맺은 것이 있는데 보도대상에 포함시킬 명단은 ICIJ와 사전협의를 하도록 했다”며 “그들이 이걸 (공개)한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사회 지도층 인사나 공개할 때 공공이익에 부합되는 인물에 국한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마 개인사업자들도 꽤 있을 거라고 보는데 그런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공공이익에 크게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자료에는 많은 개인정보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공개대상으로 추린 것 외에는 보안을 유지하라는 사전협의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ICIJ에서 써온 기사를 보면 알텐데 PTL과 CTL이라는 조세피난처 법인 설립 대행회사의 내부 정보 기록자료다. 이 내부정보들이 직접적으로 계좌와 연결된 정보가 나타난 것은 좀 드물다”며 “조세피난처에 비밀계좌를 만들었다는 것은 약간 잘못된 표현”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국세청 등과의 자료공유 여부에 대해서는 “ICIJ의 입장은 정부기관과는 자료 협조를 안한다는 방침이다. 저희도 마찬가지”라고 선을 그었다. “분야를 특정해달라”는 질문에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특정 대기업 인사의 명단 포함 유무에 대해서는 “(기자) 여러분들이 딱 떠올리는 이름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이 나올지는 좀 더 확인해봐야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김 대표는 “다음주 월요일(27일) 두 번째 명단을 발표할 것이다. 그때도 재계인사들로 (공개를) 예정하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벌그룹들이 포함돼 있다”고 예고했다. “매주 한 두차례 씩 자료를 공유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뉴스타파>의 ‘조세피난처 프로젝트’가 앞으로 어떤 파장을 몰고올 지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