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지역주의? 너무나 안이한 언론의 평가들

[신문읽기] “동서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선명하게 갈렸다”는 경향신문 사설 유감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지역 독점이 두드러졌다 …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의석수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영남 유일 진보정당 의원이던 경남 창원성산의 정의당 여영국 후보도 패했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압승했다. 광주·전남 18개 지역구는 민주당이 독차지했다. 보수당의 명맥을 잇던 2석도 사라졌다. 지난 총선의 국민의당 돌풍 같은 제3 정당의 약진도 없었다. 동서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선명하게 갈렸다.”

오늘(16일) 경향신문 사설 <되살아난 지역주의, 개탄스럽다> 가운데 일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경향신문이 너무 표피적으로 이번 선거 결과를 해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이미지 출처=경향신문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경향신문 홈페이지 캡처>

양당 체제 강화 현상은 두드러졌지만 지역주의가 강화됐다? 

물론 ‘동서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선명하게 갈린 건’ 분명하지만 그런 현상을 ‘지역주의 강화’라고 단정하는 건 섣부른 판단이라고 봅니다.  

경향신문이 예로 든 ‘사례’만 하더라도 각각의 패배 요인이 있을 거라고 보는데 경향은 ‘이 모든 걸’ 지역주의 강화로 연결시킵니다.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경향은 지역주의 강화를 언급하면서 ‘지난 총선의 국민의당 돌풍 같은 제3 정당의 약진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지적은 ‘무조건 제3정당이 약진을 해야 지역주의가 약화된다’는 얘긴데 논리적으로 이게 말이 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오히려 지난 총선에서 호남지역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이라는 이른바 ‘제3당’에 지지를 보냈는데 왜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는지를 먼저 분석하고 평가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 평가는 생략한 채 ‘동서로 갈라졌다. 지역주의 강화다’라고 얘기하는 건 표피적·반쪽짜리 평가에 불과합니다. 

경향신문 지적처럼 지역주의가 강화됐다면 이른바 천정배(광주 서구을), 박지원(전남 목포), 정동영(전북 전주병) 등 민생당 호남지역 현역 다선 의원들이 전멸하다시피 한 상황이 제대로 설명이 안 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호남 지역을 바탕으로 하는 정당도 아닐뿐더러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해 대전과 충청지역 등에서 압승하거나 선전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경향은 ‘영남 유일 진보정당 의원이던 경남 창원성산의 정의당 여영국 후보도 패했다’고 했습니다. 이게 되살아난 지역주의 결과 때문인가요? 지난 총선에서 여영국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후보 단일화’ 효과가 상당히 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습니다. 그 실패가 ‘누구 때문인가’에 대한 평가나 분석은 따로 해야겠지만 정의당 여영국 후보 패배를 ‘되살아난 지역주의’의 한 사례로 드는 건 온당치 못한 태도입니다. 

정의당 여영국 후보 패배가 지역주의 때문? 동의하기 어렵다 

오늘(16일) 경향신문 사설에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건 다음과 같은 대목입니다. 인용합니다. 

“전남 순천·곡성의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 이정현 후보는 13대 총선 이후 첫 보수당 후보의 광주·전남 당선이란 기록을 세웠다. 이번 총선에서는 그 흐름이 이어지지 못했다. 균열을 보이던 지역주의는 다시 공고해졌다. 지역주의 타파의 흐름을 이어가기는커녕 퇴행했다.” 

이정현 후보가 지난 총선에서 첫 보수당 후보로 당선되는 ‘기록’을 세우긴 했지만 이번에 ‘이정현 후보’가 당선됐으면 그게 지역주의에 균열을 내는 신호가 되는 걸까요? 이 후보는 아예 해당 지역에 출마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호남 지역에 ‘보수당 후보’가 당선되고, 영남 지역에 ‘진보·개혁적 후보’가 당선되는 걸 ‘지역주의 균열’로 해석하는 게 온당한 지도 의문입니다. 각각의 후보가 예상과 달리 당선됐다면 ‘나름의 이유와 요인’이 있을 터인데 뭉뚱그려 지역주의 타파나 지역주의 강화라고 단정하는 것이야말로 ‘낡은 잣대’ 아닐까요?

경향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될 정도로 특정 정당의 패권이 계속된다면 그 정당은 오만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지역주의를 되살린 책임은 대결정치로 일관한 거대 양당에 있다. 미래통합당이 시작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꼼수는 극단적 진영대결을 불렀고, 이것이 지역주의 강화로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이번 총선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될 정도로 특정 정당의 패권이 계속된” 선거인가요? 초접전 양상이 빚어진 지역구가 수십 곳에 달했습니다. 

경향의 이 사설은 같은 지면에 실린 다른 사설과도 배치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경향은 <여당의 단독 과반, 민심은 국정 안정을 택했다>라는 사설에서 “야당의 공세를 해외에서도 호평받은 코로나19 방역으로 반전시켰고, 시민들은 국난 극복을 앞세운 여당에 힘을 모아줬다. 121석을 다툰 서울·경기·인천에서 9 대 3으로 대승하고, 충청·강원에서의 선전도 그렇게 해석된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런 평가를 내린 경향이 같은 지면에서 이번 총선을 <되살아난 지역주의, 개탄스럽다>고 평가합니다. 

“여당 승리로 매듭된 총선은 민심이 얼마나 까다롭고 무서운지를 보여줬다. 여야는 차선·차악까지 고민하며 투표를 포기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직시하고, 민의 앞에 겸허해야 한다”고 평가한 경향이 ‘다른 사설’에선 “동서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선명하게 갈렸다. 되살아난 지역주의가 개탄스럽다”고 합니다. 

▲ 21대 총선 전국 선거구별 당선현황 (개표완료). <그래픽 제공=뉴시스>
▲ 21대 총선 전국 선거구별 당선현황 (개표완료). <그래픽 제공=뉴시스>

같은 지면에서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린 경향신문 

대체 어떤 게 경향신문의 진심일까요? 최소한 총선에 대한 평가를 내보내는 사설이라면 논설위원들끼리라도 ‘논조’에 대해 토론을 하고 ‘정리된 내용’을 지면에 게재하는 게 온당한 태도 아닐까요? 

저는 이번 총선이 거대 양당 독점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런 결과’에 대해 보완하는 책임이 21대 국회 앞에 숙제로 남겨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주의가 되살아나 지역주의는 다시 공고해지면서 퇴행했다’고 보진 않습니다. 지도상에 나타난 ‘동서 갈림’을 지역주의 공고화로 보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건 표심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언론의 ‘표피적 해석’일 뿐입니다. 

오히려 저는 오늘(16일) 한겨레 사설 <양당 독점 강화한 선거법, 21대 국회서 손봐야>에 훨씬 더 공감을 표하고 싶습니다. 여러 요인 때문에 ‘이상한 형태’의 선거를 치르긴 했지만, 저 역시 한겨레 지적처럼 “투표의 비례성을 높이고 작은 정당의 의회 진출을 돕기 위해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대표 제도’가 되레 거대 정당 쏠림을 심화한 건 매우 유감스럽게”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21대 국회가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인 건 분명합니다. 해당 부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이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는 비례 위성정당을 만든 건 헌정사에 남을 부끄러운 일이다. 더욱이 ‘의원 꿔주기’ ‘1+1 패키지 선거운동’ 등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유권자를 혼돈에 빠뜨렸다. 두 거대 정당의 이런 행태 때문에 작은 정당의 지역구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 선택이 사표가 되는 현행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하려 도입한 ‘1인 2표제’도 사실상 무력화했다 … 21대 국회는 즉각 선거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다양한 색깔의 작은 정당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를 만드는 데 앞장서길 바란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저작권자 © 고발뉴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