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진 시장, 중앙정부 지원, 국민들 성금·격려에 부응해 대처하고 있나
“권영진 대구시장이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에게 긴급명령권을 발동해서라도 3000병상을 구해달라고 말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3일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전한 국무회의 내용 중 일부다. 강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을 요약하면, 이날 화상통화로 진행된 국무회의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은 전날(2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가용자원을 모두 활용할 수 있도록 선제적이고 신속한 지원을 해 달라”며 긴급명령권 발동을 요청한데 대해 하루 만에 문 대통령에게 직접 사과했다.
보도를 종합하면, 이에 대해 강 대변인은 “대통령 긴급명령권은 헌법상 비상조치 중 하나로 중대한 교전사태에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에 집회가 불가능할 때를 요건으로 한다”며 “현재 교전상태에 있지 않고 국회도 열려있다. 권 시장은 ‘법적 검토가 부족한 채로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말해서 죄송하다. 상황이 긴급해서 올린 말씀임을 양해해 주십사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권 시장의 문 대통령에 대한 사과가 알려진 뒤, 권 시장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한층 거세졌다. 특히 권 시장이 헌법 76조 상 명시돼 있는 대통령 긴급명령권의 요건도 제대로 확인치 않고 ‘여론몰이’, ‘대정부 압박’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간 자체 방역 안전망과는 거리가 멀었던 대구시의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헌데,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촉구한 이가 권 시장뿐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3일 간담회에 나란히 참석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하루걸러 헛발질한 권영진과 황교안
“대통령은 현 상황을 준(準) 전시상태로 규정하고, 경증환자 집중 관리가 가능한 병리시설 확보와, 의료인력과 장비의 집중 투입을 위해 헌법과 감염병관리법상 긴급명령권을 즉각 발동하라.”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 임시회관에서 간담회 마친 황 대표와 최 회장이 내놓은 요구 사안이다. 권 시장이 문 대통령에 사과한 요청 내용과 대동소이한 주장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같은 날 오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권 시장은 문 대통령에게 사과를 했고, 이를 인식하지 못한 듯 같은 날 오후 황 대표와 최 회장이 무리한 요구를 반복한 셈이다.
이에 대해 의료전문매체인 메디게이트뉴스 한 의료자 관계자의 말을 빌려 “긴급명령권은 교전 상태에서 국회 집회가 불가능한 때 한한다고 돼있다. 같은 날 권영진 대구시장이 이를 검토하지 못한 상태로 긴급명령권을 요구해 사과하기도 했다”라며 “의협이 정치적인 행보라는 지적을 받지 않으려면 야당 대표 위주로 만나는 것은 둘째 치고 법적 검토를 거친 다음 주장해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실제로 황 대표와 최 회장의 이번 만남은 지난달 5일에 이어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성사됐다. 두 사람은 지난달에도 입을 모아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 없는 방역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주장한 바 있다. 이 같은 두 사람의 연이은 회동과 법률 검토도 거치지 않은 주장에 대해 4일 더불어민주당 이형석 최고위원은 이렇게 비꼬았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정쟁을 자제하자는 차원에서 그동안 말을 아껴왔지만, 황교안 대표가 과연 일국의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분이 맞는지 귀를 의심케 하고 있다. 국가적인 위기상황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만 하실 게 아니고, 보다 더 진정성 있는 자세로 머리를 맞대주실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국민 생명 볼모로 잡은 ‘그’ 정치
결국 권 시장과 황 대표, 두 사람에게 각각 쏟아진 비판을 요약하면 크게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첫째, 코로나 19 사태의 엄중함과 긴박함을 감안하더라도, 대구시가 과연 청와대를 향해 긴급명령권을 발동할 만한 자격을 보여주고 있는가. 즉, 권 시장이 과연 중앙정부의 지원과 쏟아지는 성금, 국민들과 의료인들의 격려와 행동에 부응하는 대처를 이어나가고 있느냐 하는 점 말이다.
5년 전 메르스 사태 당시 권 시장과 대구시가 공언했던 방역에 대한 다짐을 꼬집은 최근 대구 MBC의 보도를 보라. ‘우왕좌왕’이란 표현이 과연 정부에 어울리는지, 아니면 신천지를 감싸고도는 듯한 대응으로 국민 여론을 악화시키는 대구시장에게 어울리는지를.
둘째, 선행되어야 할 법적 검토를 건너 뛴 것 자체가 사태 초기부터 이어온 정치적 공세의 연장선상 아닌가. 법무부장관 출신인 황 대표가 긴급명령권 발동의 요건조차 확인하지 않은 것은 현 미래통합당의 무능력을 입증하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의료계보다 바이러스에 더 정통한 방역 전문가들조차 실효성에 의문을 표했던 ‘중국 전역 입국 금지’를 주장해 온 의협과 손발을 맞춘 듯한 ‘긴급명령권’ 발동 주장이야말로 코로나 사태를 정치적으로 활용코자하는 황 대표의 의도를 선명히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방역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방역이야말로 국민 생명과 직결된 만큼 모든 결정이 ‘정치’와 결합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 ‘정치’는 정치인 개인이나 정당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코로나 19 사태라는 이 엄중한 시기를 맞아 대정부 압박용 긴급명령권 발동 운운하는 미래통합당이, 권 시장과 황 대표가 보여주고 있는 정치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이 같은 물음 앞에 국민들이 내놓을 답은 자명하지 않겠는가.
하성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