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 1당을 미래통합당에 빼앗겨서 문재인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민주당의 패배주의적 발상에 불과합니다. 최근 민주당의 연이은 실책으로부터 빚어지는 초조함과 불안함의 반영일 뿐입니다. 지난 박근혜 대통령 탄핵상황을 회고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때 민주당이 1당이어서 탄핵을 시킨 것입니까? 그래서 새누리당 의원들을 견인했습니까? 민주당이 지금 비례민주당을 만들면 개헌선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아니, 지금까지 정당이 앞장서서 성공한 혁명이 헌정사에 있기라도 하다는 말입니까? 정말 정신 차려야 합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 모두 발언 중 일부다. 심 대표는 “단언컨대 탄핵은 해도 국민이 하고, 막아도 국민이 막는 것”이라며 “미래통합당 대표의 탄핵발언 한마디에 민주당이 흔들리는 것은 특권수구 꼼수세력의 망동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 2월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 회의실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정의당이 가진 의기의식을 발로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최근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4.15 총선 후 문재인 대통령 탄핵’ 발언을 재차 이어가면서, 일각에서 미래한국당에 대항할 ‘비례’ 진보연합의 필요성이 연일 제기되자 심상정 대표가 정의당 차원에서 확산 금지에 나선 것이다. 또 심 대표는 “정의당은 선거제도 개혁의 대의와 민주주의의 뿌리를 굳건히 지켜갈 것”이라며 “문제는 민주당”이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바로 이렇게. 

“문제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지금 시대가 안내하고 연동형비례제가 목적하고 있는 바처럼 이제는 단독 국정운영이 아니라 여러 정당들 간의 협력정치를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로 삼는다면 저는 진보개혁세력의 승리를 확신한다. 그렇다면 일각에서 수구세력들이 이야기하는 문재인 대통령 탄핵이라는 망동도 저지할 수 있고 과감한 개혁도 추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원칙론과 현실론 사이 

과연 그럴까. 심 대표의 모두발언과 일문일답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선거제도 개혁의 대의와 민주주의의 뿌리”였다. 이른바 ‘원칙론’ 말이다. 이를 위해 정의당은 최근 미래한국당의 해체를 위해서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 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이 역시 위헌이라 지적받는 미래한국당을 향한 원칙론에 가까운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유권자들은, 그리고 미래통합당은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 국면에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릴 여유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4+1 선거법 개정’을 불법이라 규정한 미래통합당이 만든 미래한국당에 비례표를 주겠다는 보수야권 지지층은 갈수록 결집하고 있는 모양새다. 각종 여론조사 지표가 그러하다. 

이러한 국면에서 유권자들에게 ‘4+1’ 협상 내내 진통을 겪었던 “여러 정당들 간의 협력정치”라는 대의와 원칙만 믿고 따르라는 자세가 과연 현실적일까. 또 이런 과정에서 협상의 여러 주체 중 하나였고 일정정도 연동형 비례 몫을 포기한 ‘여당 탓’만 하는 것은 온당할까. 구체적으로 심 대표가 내세운 ‘비례위성정당 창당론의 전략적 오류’ 세 가지는 현실적인가. 

“첫째, 비례민주당의 출현은 진보개혁세력의 위상과 역할을 약화시킬 것, 둘째, 민주당의 지역구 선거 참패를 초래하게 될 것, 셋째, 범진보 개혁비례정당도 일부 군소 정당후보를 앞세운다 해도 꼼수로 인한 진보개혁의 분열과 중도층의 이반을 피해갈 수 없을 것.”

비례민주당 출범을 막고자하는 정의당의 절박함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원칙론은 그저 원칙론일 뿐이다. 위 세 가지 역시 그러한 대의와 원칙론에 입각한 전망 섞인 ‘경고’라 할 수 있다. 위헌정당까지 대놓고 출범시킨 것도 모자라 ‘총선 후 탄핵’을 공언한 세력 앞에서 ‘여당 탓’만 하고 있는 정의당이 지역구 선거 참패 운운하는 것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정치공학적의 발로는 아닌지 되돌아 볼 때다. 

최근 참여연대가 내놓은 ‘의석수 계산기’를 접한 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미래한국당이 가진 파괴력을. 이러한 눈에 확 다가오는 시뮬레이션을 접한 유권자들이 과연 대의와 원칙론만 고수하는 정당을 반길 수 있을까. 오히려 미래한국당에 속수무책으로 의석수를 헌납한다고 느끼지 않을까. 

▲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2일 서울 영등포구 미래통합당사 앞에서 당사 현판식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무엇보다 정의당이 정봉주 전 의원이나 손혜원 무소속 의원 등이 제기한 비례민주당 시나리오에 훨씬 더 큰 무게를 두고 “진보개혁세력의 위상과 역할 약화”나 “민주당의 지역구 선거 참패”를 공언한 것은 의아한 대목 중 하나다. 

더 큰 상상력과 실천력, 현실성이 요구되는 때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미 제기된 범진보 선거연합정당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정의당 입장에서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하는 게 먼저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선 ‘미래한국당 저지와 정치개혁완수를 위한 정치개혁연합(가칭) 창당 제안’에 참여 중인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긴급제안한 안을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위헌정당에 의석수를 헌납할 텐가 

“민주당 입장에서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첫째는, 그냥 이 상태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그럴 경우에 민주당은 4-5석 정도의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하게 되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친민주당 비례정당들은 표가 쪼개져서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반면에 미래한국당은 보수성향 표를 결집시켜 준연동형에서 20석 정도를 차지하고 전체 비례의석에서도 25석 이상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선거연합정당에 참여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진보적인 소수정당들과 함께, 선거연합정당에 참여해서, 연합 비례대표 명부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과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고, 선거연합정당만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과 진보적인 소수정당들의 지지를 합쳐서 미래한국당을 능가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의석을 가져가게 된다.”

하 위원장 주장의 중심은 단연 전자가 아닌 후자로 쏠린다. 요는 여당인 민주당이 정의당을 포함한 범진보 소수정당과 함께 비례 연합정당을 만들어 진보진영 비례의석을 싹쓸이하라는 것. 전자로 선거를 치를 경우 예상되는 사표를 줄이는 것은 물론 미래한국당 의석수를 대폭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바로 범진보 선거연합정당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전제될 것은 민주당의 현실적인 양보다. 선거연합정당 창당을 3월 중순까지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통 큰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지역구와 기존 비례에 주력하는 대신 선거연합에 소수 정당 몫을 최대한 반영하는 결단 말이다. 

미래통합당의 원내 1당 저지와 탄핵 저지가 목표라면, 선거연합을 통해 실리를 취하는 동시에 통 큰 양보를 통한 대의와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정의당 또한 마찬가지다. 미래한국당에게 의석수를 헌납한다면, 총선 이후 대의와 원칙만을 고수한 정의당의 설 자리 또한 협소해질 것이 명약관화해 보인다. 

▲ '미래한국당 저지와 정치개혁 완수를 위한 정치개혁연합(가칭) 창당 제안'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2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하승수(오른쪽) 변호사가 민주화 운동 원로들과 시민사회 인사 등과 함께 제안발언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전날 심 대표의 ‘탄핵’ 발언 이후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비례는 정의당’이란 기존 표심 역시 흔들리는 형국이다. 위헌정당에 의석수를 헌납하고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유권자들만을 보고 정치를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어불성설 아니겠는가. 

요 몇 년 유행했던 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정도는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미래통합당의 위헌정당을 저지하기 위한 현실적인 유권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받아들일 때다. 하 위원장이 정의당에게 제안한 고언에 귀 기울일 때다. 그의 말마따나,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그리고 정의당에게도 좋은 일이다. 정의당은 앞서 본 것처럼, 미래한국당이 있는 이상 비례대표의석에서 10석 이상을 받기가 쉽지 않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당연히 어렵다. 그렇다면 정의당이 선택을 해야 한다. 이 상태로 선거를 치러서 미래한국당에게 이득을 주고 정의당은 원내교섭단체가 되지 못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선거연합정당을 통해 비례의석을 충분히 확보하고, 그 의석들을 다른 진보적인 소수정당들과 나눌 것인가? 정의당이 단독으로 원내교섭단체가 되기 어렵다면, 이렇게 해서 원내로 진입할 다른 작은 소수정당들과 합쳐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시간이 없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결단이 필요하다.”

하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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