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위 첫 성과? 여전히 홍보만 하는 언론

[신문읽기] 불온단체로 규정됐던 시민단체 ‘입장’ 한 마디 반영하지 않은 언론

<삼성 준법위 첫 성과… 삼성 ‘임직원 시민단체 후원내역 무단열람’ 사과>

오늘(29일) 한국일보 10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부제는 <“재발방지책 이행해 내부 체질 바꾸겠다” 위원회 요구 수용>입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17개 계열사가 과거 그룹 미래전략실이 임직원의 시민단체 기부금 후원 내역을 무단 열람한 것에 대해 28일 해당 임직원과 시민단체에게 공식 사과했다”는 내용입니다. 삼성그룹은 이번 조치가 주요 계열사의 준법경영 감시기구인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이미지 출처=한국일보 온라인판 캡처>
▲ <이미지 출처=한국일보 온라인판 캡처>

‘삼성 발표’ 열심히 받아쓰고 ‘삼성의 변화 의지’ 홍보에 나선 언론 

한국일보의 ‘삼성 준법감시위’ 기사는 특이한 게 아닙니다. 다른 신문도 비슷한 태도를 보입니다. 

가령 동아일보도 오늘(29일) 10면에서 <삼성, 준법위 권고 수용… “임직원 기부내역 무단열람 사과”>라는 제목으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는데 한국일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간 긍정 평가’를 내놓습니다. 

“삼성이 2013년에 이뤄졌던 임직원의 시민단체 후원내역 열람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달 초 출범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내놓은 첫 조치다. 삼성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변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지는 ‘조금 더 삼성 쪽으로’ 다가갑니다. 오늘(29일) 매일경제는 13면 <삼성 ‘임직원 기부내역 무단 열람’ 사과>에서 삼성 측의 이번 조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삼성이 2013년 임직원들의 시민단체 후원 내역을 무단으로 열람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2017년 해체된 그룹미래전략실(미전실)이 진행한 것이지만 삼성 계열사들의 준법경영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외부 독립기구인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사과와 재발 방지’를 권고하자 현 경영진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특히 올 2월 초 출범한 준법감시위의 첫 요청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향후 이 기구의 실효성과 삼성의 변화 의지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재계에서 나온다.”

매일경제는 “준법감시위가 사과를 권고하자 현 경영진이 이를 적극 수용하고 실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면서 “향후 삼성이 준법감시위 의견을 충분히 경영에 반영해 변화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고도 했습니다. 

전경련이 대주주로 있는 한국경제는 가장 ‘친삼성적인’ 보도를 선보입니다. 1면에 관련 기사를 배치한 한국경제는 <준법委 요구에…‘7년전 사건’ 사과한 삼성>이라는 제목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합니다. 

▲ <이미지 출처=한국경제 온라인 기사 캡처>
▲ <이미지 출처=한국경제 온라인 기사 캡처>

삼성의 변화 노력이 얼마나 강한지 강조하고 나선 경제지들 

“삼성이 28일 임직원의 시민단체 후원 내역을 무단 열람한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한 것은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옛 미래전략실이 임직원의 후원 내역을 무단으로 들여다본 것은 7년 전인 2013년의 일이다. 미래전략실은 2017년 2월 해체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과거를 확실하게 정리하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는 “(준법감시위) 출범 이전에 발생한 사건은 엄밀히 따지면 준법감시위가 판단할 대상은 아니다. 이미 책임자에 대한 사법절차도 이뤄지고 있다”면서 삼성 경영진이 준법감시위 의견을 받아들인 점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준법감시위가 첫 성과를 내면서 삼성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삼성준법감시위’는 출범할 때부터 ‘이재용 부회장 감형을 위한 차원’에서 만든 조직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제가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은 앞서 보도를 소개한 언론들이 ‘이 대목은 거의 언급을 안 하고 있다’는 겁니다. 

저라면 최소한의 형평성을 기하는 차원에서라도 언급은 할 텐데 ‘삼성 앞에만 서면’ 한국 언론의 태도는 ‘저자세·전투의지 박탈’ 모드로 변합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했을 당시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했을 당시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제가 봤을 때 오늘(29일) 발행된 전국단위종합일간지와 경제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문제의식을 표방한 곳은 한겨레 뿐이었습니다. 한겨레는 1면 <시민단체를 ‘불온단체’ 규정한 삼성 “직원 후원내역 열람 사과”>에서 삼성 측의 사과 수용을 다루면서도 “피해 단체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양형에 영향을 주기 위한 위장 사과’라며 반발했다”는 부분을 비중 있게 조명했습니다. 

사실 저는 한겨레의 보도가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킨’ 보도라고 봅니다. 삼성 측의 사과와 함께 불온단체로 규정됐던 시민단체들 역시 입장문을 내놓았지만 한겨레 등 극히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거의 다루지를 않았습니다. 

불온단체로 규정됐던 시민단체 ‘입장’ 한 마디 반영하지 않은 언론 

백 번을 양보해 해당 시민단체들이 공식 입장문을 내놓지 않았다 해도 언론이라면 피해 단체에 대해 취재를 하고 기사에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건 기본입니다. 그런데 피해 시민단체 ‘입장’ 한 마디 반영하지 않은 언론이 대다수입니다. 

물론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만 피해 단체가 삼성의 사과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놓았는지 확인하려고 해도 기성 언론을 통해선 거의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한겨레가 보도한 피해 시민단체들 입장입니다. 

“불온단체로 지목된 시민단체들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삼성의 꼼수 사과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삼성 불법 사찰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응은 ‘불법 사찰은 수년간 지속됐고, 단순히 후원 내역을 열람한 게 아니라 불온단체 명단을 만들어 문제인력의 연말정산 자료를 뒤진 뒤 미전실 주도로 밀착 감시를 한 것’이라며 ‘한 번의 열람만 있었다며 사과문이라고 발표한 것은 임직원 등에 대한 기만’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 같은 점 외에도 제가 보기에 ‘삼성 측의 사과수용’과 함께 반드시 언급돼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삼성준법감시위 활동이 ‘총수 양형을 깎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 △그리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부회장 관련’ 재판부가 편향적 재판을 하고 있다며 법원에 재판부 기피신청을 한 상태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겨레와 경향신문 정도를 제외하곤 상당수 언론이 ‘삼성 홍보실 보도자료’로 의심되는 기사를 일제히 실었습니다. 이럴 거면 아예 삼성에 취업을 하는 게 어떨지 싶습니다.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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