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식 ‘삼성 방어’는 오히려 독이다

[신문읽기]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는 부분을 지적한 언론 거의 없어 

“삼성이 강력한 준법감시 체계 구축에 나선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전 계열사에 감시 체계를 일상화하겠다는 취지다.” 

오늘(18일) 동아일보 1면에 실린 기사 가운데 일부입니다. 제목이 <삼성, 강력한 준법감시 체계 만든다>입니다. 동아는 2면 <위법행위 원천 차단할 시스템… 이재용의 ‘준법 프로그램’ 준비>에서도 관련 내용을 비중 있게 관련 기사를 배치했습니다. 

‘강력한 준법감시 체계’를 만드는 건 좋은 일입니다만 삼성이 왜 이런 체계를 만들려고 하는가 – 이게 더 중요한 포인트겠지요. 동아일보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기사에 이런 부분이 반영돼 있거든요. 

▲ <이미지 출처=동아일보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동아일보 홈페이지 캡처>

법원 향한 ‘삼성의 제스처’ … 삼성 입장에서 충실히 전해준 동아일보 

굳이 제가 별도로 설명할 필요 없이 동아일보 기사 가운데 해당 부분을 인용합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심리를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6일 ‘정치권력자로부터 (뇌물을 달라는) 요구를 받더라도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변을 다음 재판 기일 전까지 제시해 달라’고 밝혔다. 내년 1월 17일이 다음 재판 기일이어서 삼성으로서는 한 달 정도밖에 여유가 없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삼성그룹의 10개 사업 분야별 대표 계열사 사장 10여 명이 모여 준법감시 체제 구축에 나섰다”는 얘기입니다. 

법원의 ‘주문’을 잘 따라야 하는 삼성 입장에선 당연히 해야 하는 ‘작업’이지만 이를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동아일보가 이런 ‘삼성발 기사’를 1면과 2면에 배치하는 게 온당한가 – 이런 의문이 듭니다. 

법원을 향한 ‘삼성의 제스처’를 삼성 입장에서 충실히 전해줄 필요가 있는가. 이 얘기입니다. “삼성이 새 준법감시 체제를 마련하면 다른 대기업들에도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까지 곁들여 가면서 말이죠. 

동아일보의 ‘이 기사’를 생뚱맞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정작 비중 있게 보도해야 할 기사는 뒤로 미루면서 이런 ‘삼성발 기사’를 주요하게 배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18일) 발행된 전국단위종합일간지가 주목한 ‘삼성 보도’는 어떤 걸까요? 일단 기사 제목만 추려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노조 탄압 ‘삼성 2인자’ 법정구속…‘노사 전략 문건’이 결정타> (경향신문 12면)
<노조와해 공작 혐의 삼성 임원 법정구속> (국민일보 17면)
<‘삼성 노조 와해’ 전현직 임원 7명 실형> (동아일보 14면) 
<법원 “노조 방해 몰랐어도 면책 안 돼”… ‘삼성 2인자’ 법정구속> (서울신문 12면)
<‘삼성 노조 와해’ 이상훈 1년 6개월刑 법정구속> (세계일보 11면)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법정구속> (조선일보 1면)
<노조와해 혐의 이상훈 법정구속, 삼성 이사회 중심 경영 차질> (중앙일보 6면)
<삼성전자 내부 “예상못한 판결” 50년 ‘무노조 경영’ 변화 불가피> (중앙일보 6면)
<‘삼성 노조 와해’ 이재용 최측근 등 7명 법정구속> (한겨레 1면)
<삼성그룹-전자-서비스 조직적 ‘노조와해’ 단죄> (한겨레 4면)
<노조 탄압 ‘외부 조력자들’도 실형 또는 벌금> (한겨레 4면)
<‘삼성 노조 와해’ 이상훈 의장ㆍ강경훈 부사장 법정구속> (한국일보 10면)

물론 ‘삼성노조 와해와 관련해 삼성 임원 구속’을 9개 전국단위종합일간지가 모두 비중 있게 처리한 건 아닙니다. 국민일보나 세계일보 등도 기사를 사회면에 작게 보도했고, 중앙일보는 삼성과의 특수관계 때문인지 ‘삼성 측의 입장’에 무게중심을 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동아일보처럼 <삼성, 강력한 준법감시 체계 만든다>와 같은 기사를 1면에 배치하진 않았습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기사 배치를 하면 요즘은 독자들로부터 오히려 반감을 사게 된다는 걸 동아일보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의 방어는 오히려 삼성과 동아일보 모두에게 독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정작 해설이 필요한 ‘삼성노조 와해 판결’은 두리뭉실하게 보도한 동아일보

이번 판결이 주목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겨레 등이 주요하게 보도한 내용이지만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한 조직적인 노조 와해 행위에 대해 2013년 첫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6년 만에 나온 법원 판단이라는 점 △삼성 경영진이 노조 운영에 개입해 노조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노조 탈퇴를 종용해 불이익을 준 혐의를 재판부가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는 점 등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대목입니다. 

하지만 동아일보 기사에는 이런 부분이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지 않습니다. <삼성, 강력한 준법감시 체계 만든다>에서는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준법감시 체계’를 해외 사례까지 소개하며 자세히 언급해 주면서 정작 ‘해설’이 필요한 ‘삼성노조 와해’와 관련한 판결에선 추상적인 표현과 두리뭉실한 내용으로 일관합니다. 

사실 저는 이번에 ‘노조 와해’와 관련해 삼성 임원이 구속된 것 자체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지만 형량이 ‘죄’에 비해 너무 작은 게 아닌가 –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재판부 판결 직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그룹 수뇌부에 대한 형량은 범죄의 중대성에 비추어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했는데 저 역시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부당노동행위가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범죄”라는 게 이번 판결을 통해 확인이 됐는데 그런 점을 감안하면 형량이 너무 낮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형량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은 별로 없더군요. 오늘(18일) 오후 삼성그룹이 200자 원고지 1장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입장문을 발표했는데 상당히 많은 언론이 일제히 입장문을 포털에 전송하기 바쁩니다. 

판결문의 의미와 평가는 애써 축소보도하면서 ‘200자 원고지 1장’도 되지 않는 입장문은 열심히 쓰고 있네요. 그래 봤자 똑같은 내용인데 말이죠. 

민동기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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