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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이 꼽은 가장 힘든 시기는?[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292] 김환균 전국 언론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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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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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8  17:41:50
수정 2019.01.08  18: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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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을 이끌어온 김한균 언론노조 위원장이 2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 언론노조 MBC 본부 사무처장을 지낸 김 위원장은 8대(2015년 3월~2017년 2월)와 9대(2017년 3월~현재)를 연임하며 KBS와 MBC 등 공영방송 정상화를 이끌었다. 

4년은 인생 전체를 보더라도 짧은 시간은 아니다. 더구나 김 위원장이 재임하는 2015년부터의 시기는 박근혜 정부 중반기로 언론 탄압이 자행됐던 시기였다. 때문에 김 위원장이 취임할 당시 목표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이라는 간판을 내리지 않고 지키는 것이었다고 할 정도였다. 

4년이 흘러 퇴임을 앞둔 지금 4년에 대한 소회가 궁금해 지난 2일 서울 프레스센터 내의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환균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김환균 전국 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사진=이영광 기자>

“반동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강도도 강하게 시작됐다”

- 먼저 <GO발뉴스>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 부탁드려요.

“<GO발뉴스> 독자들은 사회 정의에 대해 다른 분들보다 관심 많은 분일 거로 생각해요. 모두 촛불 이후 대한민국이 얼마나 바뀌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하는 시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고 많은 개혁에 대한 계획을 제시했는데 개혁에 대한 저항 또한 만만치 않을 거라는 것은 누구나 생각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더 반동이 빨리 시작됐고, 강도도 강한 거 같아요.

반동이라는 건 앞으로 전진하려는 힘에 맞서서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거잖아요. ‘갑질’을 예로 들면 갑질하는 사람에 대해 적폐라 부르고 청산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쳐요. 그런데 새로운 누군가가 나서서 갑질을 한다면 그건 반동입니다. 갑질의 주체만 바뀐 거죠. 우리가 하려고 했던 건 갑질하는 문화를 바꿔내자는 것이었는데 새로운 누군가가 갑의 자리를 차지하고 갑질을 계속한다면요.

우리 사회는 이미 반동이 시작되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촛불을 들었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죠. ‘이게 나라냐?’고 탄식했었잖아요. 그때 우리가 꿈꾼 나라는 어떤 나라였는지를 다시 한번 떠올리고 그 방향으로 조금씩, 더디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방향 바꾸지 않고, 옮아갈 수 있도록 다시 힘을 모아야죠. <GO발뉴스> 독자 여러분께서도 예민하게 시대 상황을 고민하시고 우리 스스로를 채찍질할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해 됐으니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고자 하는 일 잘 되길 바랍니다.” 

- 2월이면 위원장 임기를 마치시잖아요. 연임으로 4년 동안 위원장을 하셔서 임기 마치는 소회가 있을 것 같은데.

“2015년 3월 2일 취임했습니다. 4년이라는 시간은 인생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짧은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언론노조 위원장에 취임하며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았어요. 아주 절박한 게 ‘전국언론노동조합’의 간판을 내리지 않고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2015년 민중총궐기 무렵 공안정국이 본격화됐는데, 언론노조도 존립 자체가 절박한 문제였어요. 그만큼 힘든 시기였죠. 언론노조뿐만 아니라 다른 노조도 굉장히 힘든 시기를 겪었고 노동 개악이라는 정권의 시도가 있었잖아요. 그걸 어떻게 저지하고 노동조합을 유지할 것인지가 큰 숙제였어요.

언론노조는 당시 팜플렛을 만들었는데 제목이 ‘노동이 무너지면 언론도 무너진다’였어요. 보통 다른 때 같으면 ‘언론이 무너지면 노동이 무너진다’라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악은 노동 자체를 무너뜨리고 그 토대 위에서 구축될 수 있는 언론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시기를 지나왔어요.

중국 고전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태행산(太行山)이란 험한 산이 있어요. 험한 인생길을 비유할 때 태행산이 자주 나옵니다.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데 험한 태행산길을 소금 수레 끌고 가는 비루먹은 늙은 말의 이야기입니다. 비루먹고 늙어서 한 몸 가누는 것도 힘든데 무거운 소금가마를 가득 실은 수레를 끌어야 합니다. 낑낑대고 비지땀을 흘리면서 용을 써보지만, 발걸음 옮기는 것도 힘에 버겁습니다. 언론노조 위원장으로서 제가 꼭 그랬습니다. 소금 수레를 끌고 가는 비루먹은 늙은 말처럼 굉장히 힘겨웠지만 응원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들 덕분에, 그들이 밀어주고 다녀줘서 이만큼까지 온 거 같아요.” 

- 연임하셨잖아요.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촛불이 시작되던 때였죠. 사실 2년 임기를 마치고 단임으로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KBS, MBC 정상화 싸움이나 국회에 계류 중인 방송법 개정 문제가 남아있었지요. 그 상황을 잘 알고 있고 지금까지 추진해 온 김환균 당신이 이 싸움을 끝내야지 않겠느냐는 만류가 있었고 그걸 뿌리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결국 위원장 연임에 도전한 거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도망가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 후회 안 하세요?

“왜 후회하죠? 누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늘 하는 말이 있는데 사람은 자주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이쪽 길을 갈 것인지 저쪽 길을 갈 것인지 선택하게 되죠. 보통 사람들은 힘든 길, 힘들 것 같아 보이는 길을 피하려고 해요. 그러나 누군가가 갈림길에서 힘든 길을 가야 한다면 왜 내가 가야 하냐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누가 가야 한다면 저도 예외일 수 없는 거죠.

후배가 상담해 와서 ‘그걸 선택하면 니 삶이 힘들어 질 거 같냐?’라고 했더니 힘들 거 같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그 힘든 걸 다른 사람에게 시키려고 하냐? 니가 해야지’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때 힘들 건지 아닌지가 반드시 결정적 이유가 되진 않아요. 오히려 힘들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요. 단지 두려운 건 저에게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낼 것인지 하는 것이지요.”

   
▲ 지난해 5월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 등 언론노조 관계자들이 방송법 개악 시도 저지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그럼 시간을 되돌린다면 같은 선택을 하실 건가요?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어떤 자리에 있든지 제가 업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저는 어떤 일을 할 때는 영원히 그 일을 할 것처럼, 그 일밖에는 할 줄 모르는 것처럼 하고, 떠날 때는 언제 그 일을 해봤냐는 듯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일을 피하지 않고 성실히 하는 것이 그 일을 맡은 사람이 취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업적이나 이름을 남기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 자리에서 그 자리가 원하는 만큼 성실하게 열정을 가지고 헌신하는지가 중요합니다.”

- 만족하세요?

“그런 질문이 어려운데……. 어떤 부분에서는 제가 생각했던 거만큼 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이유야 어쨌든 간에 제가 생각한 거만큼 안 됐어요. 아쉬운 점도 많지만, 우선 다른 분들이 성과로 말씀하시는 것은 KBS, MBC, YTN, 연합뉴스 등 공영적 언론의 정상화입니다. 이 싸움에서 제가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것은 KBS의 성재호 본부장, MBC의 김연국 본부장 등 리더들의 역할입니다. 지혜롭고 용기 있는 리더들이었습니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을 ‘언론은 본래 주인인 시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승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이들만 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KBS·MBC정상화시민행동’과 같은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이 없었다면 그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또 제가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언론노조에는 신문과 통신, 출판, 인쇄, 방송, 그리고 언론 유관 기관 등 다양한 사업장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관심 현안들이 다양하지요. 하나로 힘을 결집해 내는 것이 늘 숙제입니다. 그러나, 현재 9기 언론노조는 소속 사업장의 이해를 뛰어넘어 연대하고 함께 싸우고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눈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중앙집행위원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언론노조가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역사입니다.

아쉬운 점은, 공영방송의 정상화 등 주요한 싸움에서 승리했지만, 공영언론의 정치적 독립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언론노조가 존재하는 한 포기할 수 없는 숙제입니다. 또 언론노조 사상 최초로 지상파 4사와 산별협약을 맺었습니다만, 비정규직들의 노동조건 개선, 노동시간 단축 등의 문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KBS보다 MBC가 정상화가 늦는 것은 더 처참하게 망가졌기 때문”

- 가장 힘든 시간은 언제였어요?

“가장 힘들었을 때는 촛불 초기였습니다. 2016년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 사람들이 청계광장에 모여 ‘이게 나라냐?’며 탄식했습니다. 시민들의 분노와 절망감은 박근혜 정부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데 모아졌습니다. 언론노조는 나라를 다시 바로 세우기 위해서 반드시 언론에 대한 책임도 함께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언론노조,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언론이 결국 국정 농단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언론이 제대로 역할 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촛불 시민의 반응은 언론에 대해 엄청나가 냉소적이었어요. 맞아요. 국정농단 세력과 한패였다는 것에 할 말 없잖아요? ‘기레기’라는 말을 넘어서 ‘개비에스’, ‘청와데스크’라고 조롱받았고 리포트 하려면 방송사 태그 다 떼고 했어요. 때로는 욕설과 위협 때문에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몰랐어요. 무릎 꿇고라도 ‘이제부터라도 잘하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 그 당시 시민들은 기자들에게 짖어보라고 했잖아요. 어떠셨어요?

“뭐라고 말 못 해요. 말할 수가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시민들과 계속 접촉하면서 우리 주장을 알려 나갔죠. 사실 시민들 같은 경우엔 KBS, MBC, YTN 등 많은 언론사에 제대로 해보겠다고 맘먹고 싸운 사람들이 징계나 유배, 해고당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일부 알았더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쓰레기 아니냐’는 비판이 시민들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양심적인 언론노동자들이 어떻게 싸웠는가를 알리는 것이 매를 맞으면서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2016년 12월이었을 겁니다.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인 날이었습니다. 언론노조는 8톤 트럭에 음향 장비 싣고서 호소했습니다. 그날 분위기가 달랐어요. 그전에 언론노조라고 말하면 시끄럽다는 반응이었는데 그땐 박수치고 격려해줬어요. 밤 10시쯤 우리가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일이 일어납니다. 종로 2가였습니다. 방송 차량을 철수시켜야 했는데, 거리는 온통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차량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언론노조입니다. 이제 차량이 철수해야 합니다. 다음 집회에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라고 방송했는데, 정말 모세의 기적처럼 차량 앞이 갈라지면서 길이 만들어졌어요. 그러면서 ‘언론노조, 잘해라! 파이팅!’이라는 목소리들이 들렸습니다. 그때 시민들과 함께라면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민들이 언론이 왜 중요한지, 언론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국정농단이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언론에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잘해야죠.”

   
▲ <사진출처=미디어몽구 영상 화면캡처>

- 보람도 있었을 거 같아요.

“그 순간에는 기쁨이나 보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산봉우리 하나 넘고 나면, 넘어야 할 다른 봉우리가 또 앞에 있었습니다. 방문진 앞에서 고영주 이사장과 김장겸 사장을 해임한 날이었습니다. MBC 조합원들은 칼바람 속에 있다가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저는 눈물 안 났어요. ‘큰일 났다. KBS 어떻게 하지?’란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KBS 고대영 사장이 해임된 날 KBS 조합원들 난리 났어요. 그러나 전 ‘YTN 어쩌지?’ 하고 생각했어요. 한고비 넘으면 다음 언덕이 또 나타나요. 언론노조가 2012년 이후 패배의 길을 걸어왔는데 패배도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제가 언론노조 위원장일 때 그 흐름이 바뀌었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 MBC와 KBS가 정상화를 시작한 지 10~12개월 정도 됐어요. 그럼에도 시청자 평가는 싸늘한 것 같은데.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정상화가 뭔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는데 적폐 인사들을 다 정리하고 적폐라고 불리는 요소를 쓸어내면 되는가 하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방 안에 있는 지저분한 물건 다 버렸어요. 그러면 빈 공간이 남는 거지요. 그것으로 끝인가요? 아니죠. 벽지 새로 바르고, 가구도 새로 놓아야죠. 시청자들이 느끼기엔 이른바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 잘 됐느냐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청소한다는데 쓰레기는 여전히 널려 있는 것 같고, 장롱 들여놓는다는데 사람 사는 방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대로 프로그램 제작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거고요, 그런 만큼 더디게 느껴질 거라는 겁니다.

지상파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도 장애지요. 뉴미디어 발달로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시기를 앞당긴 건 KBS, MBC 스스로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예전과 같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 노력이 필요합니다.” 

- MBC는 KBS보다 빨리 정상화 작업에 들어갔는데 더 늦는 거 같거든요.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KBS보다 MBC가 더 처참히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김재철은 ‘MBC의 DNA를 바꾸겠다’고 했잖아요. 그러나 KBS는 DNA, 즉 문화를 뜯어고치겠다고 한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어요. MBC는 시용 기자와 PD를 뽑았잖아요. KBS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적어도 KBS에는 금도가 있었습니다. MBC에는 없었어요. 2014년 10월 기자 PD 포함 120명 학살 인사해요. 대부분 유배였어요. 하지만 KBS는 그렇지 않았어요. 물론 전혀 없던 건 아니지만 한두 명이었지요. 100명 가까운 숫자를 유배 보낸다는 건 MBC를 완전히 파산시키거나 전복시키겠다는 생각이 아니면 그렇게 하지 못해요.” 

- 그럼 현 경영진 문제는 아니라고 보세요?

“누가 경영을 맡더라도 어려운 상황일 거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죠. 사실 최승호 사장 체제가 들어선 것 자체만으로도 정상화의 단초가 마련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체가 엄청난 변화예요. 우린 가끔 그걸 잊는 거죠. 김장겸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최승호 사장이 온 거예요. 이건 엄청난 거고 변화가 이미 시작된 거예요.

MBC가 지난해 적자라고 합디다. 그건 각오한 거예요. 콘텐츠를 바로 세우자는 거죠. 그동안 너무 망가졌기 때문에 그걸 바로 세우는 게 MBC의 미래를 위한 일이죠. 그러나 적자낸 걸 가지고 뭐라고 한다면, 글쎄요. 근근이 먹고 살며 구성원들 임금 깎아서 오래 버티자? 그럴 수는 없다고 최승호 사장은 판단하고 결단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 김재철 전 MBC 사장 <자료사진=뉴시스>

- 지난주 MBC는 파업 때 들어온 대체 인력에 대해 고용유지 하겠다고 해서 노조가 반발하는데.

“경영진의 고민이 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뭔가 잘못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책임을 물으면 됩니다. 그러나 MBC 입사한 거 자체가 그 사람들 잘못인가에 대해서는 달리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경영진은 책임을 물으려면 당시 경영진에게 물어야 하는데 법적으로 책임 물을 시간이 지났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물론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지요. 대체 인력을 인정한다는 이야기는 노동자는 언제든 회사에 의해 쫓겨나도 되고 회사는 그 공백을 대체 인력으로 메꾸면 된다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대체 인력에 관용을 베푼다는 건 나는 쫓겨나도 좋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MBC 본부가 강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지요.”

- 임기 마치시면 MBC로 복귀하실 텐데 계획 생각하신 게 있나요?

“MBC로 복귀한다는 것 외에 무슨 계획이 있지 않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어떤 일을 할 때는 영원히 그 일을 할 것처럼 하고, 임기 끝나면 그 일을 해 본 적 있냐는 듯이 떠나는 것이 일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2월 말이면 아직 많이 남았어요. MBC 사규에 의하면 파견자는 파견 기간이 끝나면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저의 경우에는 시사교양본부죠. 그다음 저에게 어떤 일을 줄지는 제가 고민할 문제가 아닙니다. 경영진과 시사교양본부장이 고민할 문제입니다. 임기 마지막까지 언론노조 위원장으로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영광 기자 

#이상호의_뉴스비평 https://goo.gl/czqu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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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언석 “손혜원 목포 쪽지예산”…회의자료 보니 평화당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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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골프’가 있는 신문과 없는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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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文정부가 일본 자극”…전우용 “1909년 일진회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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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개성공단이 국내 일자리 없앤다고?.. “공부 좀 하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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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내 조선일보 ‘왕릉’ 최초 확인.. “미군 떠나면 돈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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