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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재개발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강로 재개발지역의 한 건물 옥상에서 경찰의 강제 진압이 진행된 가운데 시위대가 옥상에 설치한 망루가 불에 타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
벌써 9년이다. 지난 20일로 9주기를 맞는 용산참사는 지난해 연말 문재인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다시 주목 받았다. 용산참사 이후 유죄가 확정됐던 철거민 25명이 이번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된 데 대해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피해 당사자들은 반가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표하기도 했다. 이미 형을 살고 나왔거나 2013년 MB정부 말기 특별 사면된 이들도 있는 반면, 이번 사면 대상에서 제외된 이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9년 간 용산참사와 그 피해자들을 완전히 외면하고 홀대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달리 촛불혁명을 거쳐 정권을 잡은 현 정부가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용산참사를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와 결부시켜 철저히 ‘관리’해 왔고, 박근혜 정부 역시 이러한 기조에서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진상규명과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 요구가 여전한 것도 그래서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피해자들의 고통과 시름은 더 깊어지고 있다. 지난 2일 ‘cpbc 가톨릭평화방송’과 인터뷰한 이충연 전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역시 “아직까지 진상규명이 요원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당연히 그 당시의 시대상을 보면 뉴타운 개발이다, 재개발 정책을 앞세웠던, 토건정책에 제일 선동에 섰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거든요. 이명박이 일반 시민들의 사행심들, 그런 투기 의혹들을 부추겨가지고 이런 일을 만들었던 일이에요. 그리고 그 앞에 행동대장 격으로 공권력을 움직였던 자가 지금 국회의원이 되어있는 김석기라는 자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과 김석기는 꼭 처벌해야 될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 9주기, 그리고 각계에서 주목받는 다큐멘터리 <공동정범>
이런 피해자들의 울분을 반영하듯, 지난 20일, 경찰청은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담당할 임기제 공무원 10명을 선발했다고 밝혔다. 지난 8월 발족한 진상조사위에 대해 이철성 경찰청장은 “조사 대상에는 성역이 없다”며 “필요시 위원회 위원을 포함한 경찰 지휘부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진상조사위는 경찰이 최우선으로 조사해야 할 사건으로 ‘용산참사’를 필두로 ▲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 밀양 송전탑·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관련 충돌 ▲ 평택 쌍용자동차 파업 등을 선정한 바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출범 이후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부딪힌 진상조사위는 ‘조사기관’에서 ‘자문기관’으로 성격이 격하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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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산 참사 9주기를 하루 앞둔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이명박 전 대통령 개인사무실 건물 앞에서 추모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그럼에도 진상조사위의 활동에 주목하고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촉구해야 하는 까닭은 자명하다. 진상조사위가 꼽은 위 대표적인 사건에서 보듯,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경찰이 자행했던 대다수의 ‘인권침해’ 사건들은 시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참사’와 ‘비극’으로 이어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피해 당사자들은 지금도 신음하고 있고, 책임자들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떵떵거리며 안온하게 살고 있다. 그렇다. 용산참사가 대표적이다.
“주모자는 아직도 벌을 받지 않았다. 그 주모자는 바로 이명박이다. 그는 이제 반드시 감옥에 가야 한다.”
지난 20일 오후 열린 용산참사 9주기 추모식과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 추모 상영회에 참석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발언이다. 위 발언이야말로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대상에 “성역은 없다”던 이철성 경찰청장이 새겨들어야 할 ‘진실’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진실’에 다가서는 영화 <공동정범>이 지난 25일 개봉했다. 이미 개봉 전부터 2018년의 포문을 여는 사회파 다큐멘터리로서, 또 9주기를 맞은 용산참사의 아픔을 재조명하는 영화로서 언론과 사회 각층, 영화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바 있다. 그리고, <공동정범>은 벌써부터 ‘올해의 다큐’로 손꼽히며 호평을 받는 중이다. 이 다큐,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지옥에 사는 이들"
“용산참사는 그야말로 ‘개발시대가 낳은 비극’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와 같은 비극을 겪은 분들의 과장되지 않고 진솔힌 그 이야기를 통해 사람의 가치, 인권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좋은영화라고 생각한다. 인권위원회로서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한다. 인권위원회 직원들과 단체관람도 추진하고 있다.”
신임 국가인권위원회 이성호 위원장은 지난 17일 열린 VIP 시사회에 참석, 인권위 직원들과의 단체관람을 약속했다. 신임 인권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이명박 정부 당시 현병철 위원장이 ‘용산참사’를 외면했다고 거센 비판을 받았던 그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니었던가. 최승호 체제의 첫 MBC 시사교양본부장인 이근행 PD도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바람을 적었다.
“운동으로써의 영화가 아니라, 세상과 인간의 진실을 바닥까지 천착한, 힘있고 울림 있으며, 그리하여 진정한 운동성을 획득한, 진정한 다큐영화이다. <두 개의 문>보다 백배의 완성도를 갖는, 역사적 작품이다. 아 세상은, 그리고 인간은, 그래 아무도 모르게 이러한 것이구나. 아픈 자들은 다시 아파야, 더 아파야, 온전히 이렇게 세상의 불의와 진실을 드러내는구나. 이 영화. 보는 인간을 정화시킬 것이다. 세상을 껴안고자 하는 100만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여름 개봉한 최승호 현 MBC 사장의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이 26만을 동원하며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은 만큼, 용산참사를 재조명하는 <공동정범> 역시 7만 넘게 동원한 전작 <두 개의 문>을 넘어 한국사회에 더 큰 파장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이 반영된 글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MBC 역시 2009년 사건 당시 청와대와 경찰청 지침을 충실히 따르며, 용산참사 보도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각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공동정범>은 용산참사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생존자와 피해자들을 “살아남았기 때문에 지옥에 사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법정은 이들에게 ‘공동정범’이란 멍에를 씌었고, 감옥에 갔거나 가지 않았던 이들은 모두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각기 다른 시선들에 영향을 받는 ‘지옥’ 속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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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공동정범' 스틸 컷 <사진출처=시네마달> |
아버지를 잃은 생존자는 향후 투쟁 방향에 골몰한다. 어머니와 아내 때문에 결국 자살을 포기한 그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나와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죄책감을 덜고, 억울함과 분노를 억누를 수 있다. 아버지를 버리고 불타던 망루를 먼저 빠져나왔다는 자책과 죄책감 말이다. 그가 바로 이충연 전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다.
그 반대편에 ‘연대’ 투쟁을 용산의 망루에 올라갔다가 ‘공동정범’이 되어 버린 4명의 다른 지역 철거민들이 자리한다. 이들은 참사 이후 구속과 불구속으로 운명이 갈렸다. 고통의 외향도 달랐다. 누구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누구는 동료를 원망하며, 또 누구는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자책을, 딸 앞에서 범죄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다 그날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았을 뿐 더러, 책임자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은, 아직 끝나지 않은 참사의 잔상이라 할 만 하다. 이혁상 감독은 전작 <두 개의 문>이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했었던 경찰 특공대들의 증언이라든가 재판 기록, 뉴스라든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용산참사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반해 <공동정범>의 핵심은 사건이 아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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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공동정범' 스틸 컷 <사진출처=시네마달> |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 현실의 해피엔딩을 위하여
“네, 용산참사 당시에 계속해서 구호가 되었던 것은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말이었거든요. 국가를 구성하는 건 당연히 국민이죠. 그런데 국민 이전에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인간의 존엄이라고 하는 것을 지키고 그걸 생명을 지키고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인데,
이 용산참사를 보면 진짜 그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들이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기 때문에 정말 스스로 자책하면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이분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다 보니까 사람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런 식의 고민까지 좀 이르게 되더라고요.”
지난 22일 MBC라디오 <양지열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김일란 감독은 이렇게 <공동정범>이 결국 ‘사람’에 초점을 맞췄음을 분명히 했다. 전편이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려는 노력이라면, 5년 만에 선보인 <공동정범>은 그 사건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얼굴에 오롯이 카메라를 가져다댄다.
하지만 그들의 슬픔과 아픔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다. 시시각각 서로에게 반목하는 이들의 심리는 어디서 연원하는지를 냉철하게 반영하는 ‘용기’도 지녔다. 수년에 걸쳐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담고, 그들의 삶을 쫒아간 카메라는 힘들지만 굳건히 그들의 내면을 담아내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러한 <공동정범>의 의도를 좆아 가는 일은 꽤나 강력한 심리적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용산참사의 진상에 관심을 두고, 그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던 이들이라면 더더욱. 다행인 것은 서로 반목하던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사정을 두루 살피던 영화가 어떤 계기로 그들의 화해와 연대의 가능성을 품어낸다는 사실이다. 결코 순진하거나 값싼 형태의 화해가 아닌, 과거를 딛고 내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말이다.
용산참사를 하루 앞뒀던 지난 19일, ‘용산참사 9주기 추모위원회’와 <공동정범> 속 주인공들은 서울 강남구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개인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용산참사의 주범 이 전 대통령과 공동정범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당시 서울경찰청장) 등 진짜 책임자들을 진실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영화 <공동정범>의 초대장을 발송하기도 했다.
이 장면이 감동적인 것은 죄책감과 물리적, 심리적 고통 속에서 반목하던 이들이 다시금 뭉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당당하게 외쳤기 때문이리라. <공동정범>을 관람한 관객들이라면 더더욱 이 장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게 되새기게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가능성을 표현한 그 ‘해피엔딩’이 현실에서 이뤄지길 바라는 이혁상 감독의 바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냉철하게, 그리고 이성적으로 ‘사람’을, ‘사람이 여기 있다’를 외치는 <공동정범>은 분명 ‘올해의 다큐’ 1순위 후보다.
“저는 만일 <공동정범>의 속편이 나온다면 그건 영화관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또 저희 주인공분들, 참사의 피해자, 희생자 분들의 트라우마가 그래도 조금은 사라질 수 있는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서 해피엔딩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공동정범>을 공동연출한 이혁상 감독,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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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공동정범> 포스터 <사진출처=시네마달> |
하성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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