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권 회수가 가능한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자
-탄핵을 넘어 ‘12월혁명’ ‘겨울혁명’을 위하여
-여의도 귀족의회와 대척점에 서는 광화문을 비롯 전국에 광장민회를 건립하자
-주권 회수가 가능한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자
바야흐로 귀신권력이 퇴장을 서두르고 있다. 삼백 벌 한복과 백옥주사에 가려 있던 허물이 벗겨지면서 몰골을 드러낸 권력의 마지막을 지탱해줄 수 있는 힘은 소멸했다. 그는 아버지를 무덤에서 끄집어내서 흥했고 그 귀신을 끌고 암부로 사라지는 일만 남았다. 권력은 끝났다. 딸과 함께 박정희는 이제사 온전히 사망하고 있는 중이다. 단언하지만 다시 그가 관을 열고나올 일은 없다. 이는 국가로나 개인사로나 두루 비극이었다. 앵시엥 레짐은 마침내 막을 내리고 있다. 4년 혹은 18년 동안의 연극이 암전된 무대 뒤로 스러지고 있다. 그를 쓰러뜨린 대중권력의 약동하는 이름은 12월혁명 또는 겨울혁명이다.
“200만 촛불, 시민주권의 힘 권력에 입증”
11월26일 첫눈이 내리는 광장에 모인 2백 만 명 시민은 권력의 주인임을 거듭 선언했다. 12월3일을 기점으로 낡은 파시즘 세력 일부는 내부에서 무너지면서 대통령 탄핵 참여로 선회하는 고백으로 대중 앞에 무릎을 꿇었다. 6주 동안 주말마다 위임권력과 대의제는 무력했다. 대중의 직접적 의사참여와 결정은 역대 어떤 정치권력, 현장권력보다 창조적이었고 그들 스스로가 헌법 전문이었다. 매순간 헌법 조문은 생동했고 또 새롭게 생성되었다. 2백 만 명 넘는 대중 참여는 광장주권, 시민주권의 힘을 권력에게 또 스스로에게 입증했다. 광장은 직접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실제를 격동시켜냈다.
그에 따라 전제권력은 세금으로 지은 청색 밀실에 유폐되었고 의회권력은 비틀거리면서 가까스로 광장을 추수해왔다. 법원은 집권권력의 위기를 정교하게 숫자로 환산해냈다. 800, 400, 200, 100미터씩 그들은 권력의 핵심거처에 근접을 허용하면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대통령에 대한 항의와 책임 촉구’라는 표현을 기꺼이 주권자에게 헌사했다. 동시에 경찰은 시위진압과는 먼 거리로 물러나야 했다. 심심한 경찰 나리들에게 지리한 영광 있으라. 이러한 일련의 조처와 내용들은 주권재민의 재창조과정에서 파생한 성과물들이다.
비폭력 평화시위는 광장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벌써 승리한 대중이 선택한 지혜였다. 시위 참여자들은 집회현장 쓰레기까지 치우는 행위를 통해 광장주권의 윤리성이 통치권력이나 의회권력에 비길 수 없는 가치를 내장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부패와 무능 권력에 가름하는 대응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음을 일상행위를 통해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2백 만 명이 단일 주제로, 한 장소에서(또는 전국적으로 다른 공간에서) 정치적 의사 표현을 지속적으로 평화롭게 실행한 일은 한국사는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없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대중은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의 경계, 악마적으로 작동해온 지역을 일거에 허물어뜨렸다. 겨울혁명을 통해 대중은 스스로를 가르치는 거대한 스승으로 탄생했다. 요컨대 탄핵정국이라는 구 파시즘 세력 징벌을 통해 한국 주권자들은 새로운 체제를 창조해내고자 하는 혁명을 진행해가고 있는 참이다.
“12월혁명, 4‧19혁명과 6월항쟁 성취 넘어서야”
시장권력에 강제당한 채 노예 윤리(‘스펙’)에 갇혀 있던 청년세대들은 이미 촛불혁명 승리세대로 재탄생하고 있다. 장년, 노년세대들이라고 그닥 다르지 않다. 이 혁명의 주체는 4.19혁명과 6월시민항쟁과는 비길 수 없이 역사 이래 가장 폭이 넓다. 이 역동적 참여와 성과가 한낱 탄핵에 그치거나 여야를 막론하고 현재 권력으로 환원되는 일은 혁명을 다시금 기존세력에게 떠먹이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4.19보다도, 6월항쟁보다도 더 높은 성취를 얻어내야 하는 건 12월혁명의 마땅한 소임이 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란 간명하게 말해서 독재에 저지선을 구축한 독재방어 민주정부라고 할 수 있다. 엄정하게 봐서 온전한 민주체제 달성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촛불혁명의 열망은 단지 바리케이드를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본권 허용과 운영을 중심으로 지금껏 구분되어 온 진보집권과 보수집권이라는 변별법 따위는 이참에 아예 넘어서야 한다.
“광장민회, 여의도 귀족의회와 대척점에 서야”
진짜 혁명적 개혁은 지금부터다. 지금 변한 것은 광장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더 광장으로 끌고 나와야 한다. 진작부터 여의도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 아니라 귀족의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근대 시민권력의 핵심은 의회다. 이것이 봉건체제에서 진보한 핵심 요체다. 문제는 이게 회수 불능하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 주권 회수가 가능한 직접민주주의를 근본부터 강화해야 한다. 광장(주권자)민회는 그 한 형식이 될 수 있다. 한국사회가 민의를 조직하고 전달하고 실행하는 온전한 의회 민주주의 국가가 되려면 광장민회를 헌법 체제 안에 신설하는 걸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는 내각제라는 의회독재와는 전혀 다른 말이다. 광장민회는 여의도 귀족의회와 대척점에 서야 한다.
더불어 주권자의 뜻이 온전히 반영되는 비례민주주의, 연방제 수준의 지자체 독립성 강화 또한 뺄 수 없다. 제왕적 통치권력의 민주화, 검경 책임자의 선출, 부의 극단적 집중 해체는 그 핵심 의제들이다. 친일과 독재를 씻어내는 역사 청산 또한 상설화해야 한다. 대중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어떤 재벌귀신을 포함해서 적어도 귀신통치를 끝낼 것을 분명히 요구하고 있다. 11월에서 12월로 이어지고 있는 이 겨울혁명이 고작 대선 후보를 정하고자 거대한 대중참여를 일상화하고 있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몇몇 특정인물에게 이 상황과 의제를 의존케 하는 건 광장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역행이자 배신이다.
오늘 겨울 광장이 도모해야 하는 건 더 높은 혁명을 향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전망과 구상과 역동적 실행이다. 날마다 확인하고 있는 경이로운 승리의 경험에 기초한 대중의 상상력은 권력 징벌과 교체 뿐 아니라 새로운 민주사회를 향한 가치를 고양시켜내고 있다. 구체제의 완전한 청산을 통한 새 체제는 어떤 공화정 사회를 창조해낼 것인가. 광장은 미래를 어떻게 오늘, 여기로 가져올 것인가 묻고 있다. 12월혁명, 겨울혁명은 이에 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