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줏간 건너편 기우제]
-청량리 588에서

푸줏간 앞에 비가 내린다
임질 걸린 오줌줄기 같은
골반 뼈 찌뿌둥한 정오
살코기에 불빛 벌겋게 충혈된
전농오거리
허벅지에서 비계 한 점 오려내 불판 위에 올려놓을 때
복권가게를 끼고 돌아오는 일수쟁이 여자를 보고
하루가 시계를 맞춘다
생활은 늘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불운은 태엽을 감고 있다가 빚을 갚듯 일상을 파고 들면서 톱니를 물렸다
삶이란 누군가 함부로 낙서해버린 낡은 치부책 한 장 같은 것
백주에 유행가 가락을 흥얼거리는 사내가
미닫이 문을 열자
푸줏간이 횟집 옆으로 게걸음을 치면서
술을 마신다
통닭집 주인은 주인 없는 흰 강아지를 내쫓고
산부인과 앞 
약국 아가씨는 오늘도 무심히 아스피린을 빻을 뿐
낮에 취한 것들은 안다
허리 굵은 뚜쟁이 팸프 같은 희망에게 또 속아본 자들이 빨리 취한다는 걸
아무리 때가 타도 더는 더러워질 것 같지 않은
꾸무럭한 하늘 아래
낮에도 붉은 등을 켠 인간 푸줏간 
통유리 쇼케이스 건너편
새로 올린 삼겹살 한 점이 파지직 파지직 타고 오른다
석 달 만에 비가 내려도
사막 같은 정오
등 쩍쩍 갈라진 하루의 틈새로 후줄근한 빗줄기를 따라 소주를 붓는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참이슬 같은 처음처럼
누군가는 쓸 것이다
소주를 묽은 먹으로 삼아
클라미디아 번져오는 보균생활 같은 날들을 
처음처럼 참이슬로
멸균된 흰 표정으로 
보건소 직원이 위생검사를 하는 동안
잠시 그친 하늘 사이로 
캄캄한 태양이 낫 한 자루를 끄집어내
물 밑 용궁 같은 이층 슬라브집 간판을 베고 있다
저기 목을 드리우면
이 미지근한 비가 피를 씻어줄까
간짓대 끝에 매달린 점집 깃발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 이슬비에 젖어가면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아무 것도 기다리지 마라
십자가 높은 나사렛 예배당 밑
여기가 태양이 낙태하는 곳
병든 낙원
백년을 살아도 하루가 같은
이곳이 지구 끝의 정오다
복채 대신 
불판 뜨겁게 비가 퍼붓는다

▲ 서울의 대표적인 집창촌 중 하나인 ‘청량리 588’ 재개발 사업이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다. ‘청량리588’ 도시환경정비사업은 1996년 결정됐지만 성매매 업소 및 주변 상인들의 반대로 20년간 미뤄지다 지난 4월 이주 공고가 나면서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며칠 전 인권 현장 조사를 위해 ‘청량리 588’을 다녀왔다.
쓴다는 것 자체가 유죄인 줄 알지만 몇 줄을 남긴다. 이 낙원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