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시/서해성] 웃음 체포

- 감정테러방지법

 [웃음 체포]
- 감정테러방지법

너의 웃음을 체포한다.
입술 모양으로 봤을 때 너의 웃음이 수상하다.
(너는 웃음을 통해 불신을 퍼뜨리고자 예비음모했다.)

너의 눈물에 수갑을 채운다.
낙하 각도로 예단컨대 눈물 성분이 특이한 것이 분명하다.
(이 같은 눈물은 안방과 카페 구석구석을 오염시킬 위험이 있다.)

너의 고독을 수사한다.
너는 쓸쓸한 불안을 야기시켜 대중의 근로 의욕을 꺾고 술집으로 이끌었다.
(너의 고독은 감정테러로 볼 수 있고, 따라서 당연히 반노동적이고 반국가적이다.)

너의 가슴을 영장없이 압수 수색한다.
슬픔과 허무, 또 까닭없이 분노가 샘솟는 거처를 방치하는 건 테러 요소를 기르는 것과 같다.
(애국이 입증되지 않는 가슴은 감정테러의 양성소다.)

감정 소요죄에 해당하는 이들을 감정테러방지법에 의거하여 국정 웃음학교, 국가 울음학교, 유신 가슴학교에 입교와 강제교화, 치유를 명한다.
줄에 묶인 웃음, 눈물, 고독, 가슴에게 국가 깃발을 이불로 하사하고, 국가國歌만을 유행가로 부르게 하며, 국부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용할 것을 아울러 하달하노니,
인사말은 한 가지 뿐이다. 반인반신! 이상.

* 웃음을 체포하고, 눈물에 수갑을 채우고, 고독을 수사하고, 가슴을 압수 수색하는 ‘감정테러방지법’을 시로 써야 하는 시대에 상상력은 그 자체로 불행하다. 감정과 정서를 의심 받는 나날들을 여기 남긴다. 불온한 날들이여, 어쩌다 여기 와서 봄이 되고 하물며 시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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