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행방]

오후 다섯 시는 주사바늘을 좋아한다. 팔오금 정맥에 꽂힌 안지오카데터(angiocatheter) 바늘 굵기는 26G(게이지). 요오드 화합물 150cc가 혈관을 타고 빠르게 퍼진다. 뇌압이 뜨겁게 조여 오르고 혈관이 팽창하면서 항문 속까지 열기가 뜨끈하다. 조영제는 투명한 액체라기보다 아무래도 불의 일종이다. 물로 된 불이 심장에 모여서 조금 전에 투입한 알러지 억제제와 만나 악수를 하고 있을 게다. 뜨거움을 잊기 위하여 주문을 왼다. 오줌을 누어라. 오줌을 누어라. 조영제를 제 때 배출하려면 부러 물을 마시고 소변을 보라는 간호사의 지시사항을 뇌리에 각인시킨다. 간호사는 신기 없는 화학적 주술사다. 의사는 검사실 근처에 당최 보이질 않는 게 필시 은밀한 곳에서 영검함을 더 단련시키고 있는 중일 게다. 주문을 몇 번이나 외었을까. 과학도 입 속으로 천 몇 번쯤 되뇌다보면 주술이 된다. 오줌을 누어라. 오줌을 누어라. 등짝을 타고 생식기를 훑고 지나간 불이 발바닥 오목한 자리에서 문득 가뭇없이 휘발한다. 불이 몸을 떠난다. 문을 열고 들어온 간호사는 팔오금에 푸른 지혈대를 고정한다. 거기가 불의 입구다. 이제 오줌을 누어야 한다. 오줌을 누어라. 식어가는 오줌줄기를 따라 주문이 변기를 타고 연건동 병원 수채로 내려간다. 막혀가는 핏줄을 사진으로 찍어낸 뒤 몸을 빠져나간 그림자 약물들은 이 저녁 어디서 서성거리고 있을까. 겨우내 내쫓기고 두근거리던 갈비뼈 밑 혈관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애국충정으로 타버렸을까. 혹시 국기에 대한 경례로 곧게 뻗게 되었을까. 아니면, 의심으로 더 구부러졌을까. 다만 그림자의 주민번호를 만들어 병원을 떠난다. 주사바늘은 하오 일곱 시 삼십 분을 옆으로 좋아한다.

주석: CT 검사실 침상에 누워서 보아야 하는 천장 장식은 어설픈 자연 풍광 사진 네 조각. 그 천장 장식이야말로 시각 고문을 하는 병실이었다.